꿈이 무어냐? 무엇을 하고싶으냐는 질문이 놓치고 있는 것에 대한 고찰, 그리고 깨우침이 갖고 있는 오류에 대하여(지적 깨우침의 환원성에 대해... ...)
1. 운영할 때 머리만, 가슴만으로 이끌뿐 몸의 동선에 대해 눈여겨보는 것인지? 오히려 머리만, 시각만 비대하거나 단맛만 느끼려고 해 청각과 촉각, 쓴맛-신맛들을 숨죽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그 깨우침이 다른 분들이 [해온 것]과 [하고싶은 것]의 마음을 통과한 것인지? 그것이 가슴으로 몸으로 전달되어 우러나오는 것인지?
2. (도시에서) 농사짓는활동 (또는 귀농) - (농사를 짓자는) 대안에 대한 고민의 결(하고싶은 것)이 삶으로 스며들게 하기(할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인가 곡선이 있을 것 같습니다. 선언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몇몇이 농사짓는다고 귀농과 다른 대안의 모습이겠지만 뭔가 다른 것 같습니다. 단순화의 오류? 표준말처럼 표준적인 전형을 설정해놓고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요? 능력이 부족한 장삼이사의 사회적 약자가 취할 수 있는 것? 관심도가 떨어지는 사람이 해볼 수 있는 것들은 없을까요? 선택의 폭을 둘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계층이나 아비투스, 나이 차이에 따라 접근경로가 달라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삶의 결을 세세하게 선택할 수 있는 생각의 영역조차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기에 농사 한번 지어보지 않는 사람이 농사짓는다는 말과 행동을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의 도시사람들이 별반 신뢰하지 않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머리로서야 당위성이야 선전처럼 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 더 낫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논의되지 않거나 실제 해보지 않을 때, 생기는 성원들의 실천무력감이나 예상되는 무기력, 숙의되지 않았으므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예민해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 말입니다.
2.1 개인적으로 대안을 만들어나가고 실천하는 것에 대해 존경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자체로라도 그 어려움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입니다. 활동하거나 운동하는 분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면 부모님 세대들의 경험, 선택의 폭에 대한 논의들, 그 쓴소리들, 단소리들이 섞일 수 있는 결이 전혀없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나는 이렇게 산다. 이렇게 간다라는 선명성도 좋겠지만, 그 선명성으로 인해, 그 직선으로 인해, 나-너는 이렇게 갈 수도 있다. 나-너-나가 이렇게 가보면 해볼만 하다. 그것도 한번 해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봐도 괜찮겠구나. 그 삶의 결은 전혀 사회적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대학졸업 지식인, 활동해본 사람만의 독자적인 선택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므로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런저런 조건이 충족된다면 시도해볼 수 있다. 단계적으로 과정의 오아시스를 만든다면 한 십년이면 아쉽지만 시도해볼 수 있겠다 는 같지만 다른 생각과 고민의 영역이 도마위에, 안주거리로 회자되면 좋겠다 싶군요.
3. 꿈을 꾸어야 한다는 말. 이제 무엇을 해야한다는 고민을 담는 말 역시 처세-자기개발서 같이 근거없는 꿈과 나는 로또가 될 수 있다는 착각의 영역만 키우는 것처럼, 행여 간접적인 폭력...결혼적령기인데 결혼하지 않느냐는 말처럼 들린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요? [가],[나],[다] 라는 소질과 하고자하는 [마]가 있고, [라],[사],[아]에 배움을 더하거나 연결되면 이런 것을 더 잘할 수 있으므로 , 이런 저런 취미를 하거나...a-b-c라는 사람의 네트워크, 이런저런 고생을 해보면 이런저런 아픔을 느낄 수 있으므로...[a]라는 모임에 이러저런한 것을 만들거나 도움주게 되면 모임과 교집합이 증폭될 수 있다.....라는 이상적 상황사이 예스나 노라는 극단의 선택이 아니라 가능한 과정의 경로를 많이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좀더 세밀하게 들어가 같은 시선에서 생각의 높이, 배려의 높이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3.1
4. 여러사람들이 조금씩 서로 나눠 만들고 있는 모임이라면, 나는 깨우쳤어, 이렇게 하면 될 것이야? 라는 깨우침이나 느낌을 숙성시킬 생각의 결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군요. 모임의 방향이 흔들린다면, 가슴과 몸의 동선을 고려하지 않는 속도. 그 속력으로 생기는 위험에 대해서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깨우침과 현실의 간극, 간격에 대해서 머리만의 기울기로, 열정만의 기울기로 이전하려하지말고, 이미 해왔던 무수한 능력에 대해 곰곰, 알게 된 것, 느끼게 된 것을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지혜로 만드는 과정에 대해 더 고민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천천히 몸을 끌며왔으므로 더디 간다고 달라질 것도 별반 없으므로... ...
뱀발.
1. 뒤풀이 자리 090220, 090228 스친생각들을 이제서야 남깁니다. 말하는 재주도 하고싶은 재주도 없으니 손발이 고생입니다. 날 것이기에 행여 마음 다치지 마시구요. 제 생각역시 다듬고 넓힐 필요가 있는 것이겠죠.
2. 어젠 박화성작가의 <추석전야>와 <하수도공사>의 단편,중편을 봤습니다. 이곳의 행간에 비친 것이 남자작가인 줄 알았는데, 여류작가이고 처음으로 문학관이 생긴 곳이 이곳이네요. 20권의 전집이 나와있고, 80년전쯤으로 돌아가 유달산 아래 전경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