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평

더 신경쓰고 더 공부시키란다 따돌림을 시킨 아이에게 향하거나 책임지우지 않고 약하고 힘없는자에겐 늘 형평이 없다. 못나서 그러니 잘나도록하라는 핀잔만 있다. 힘있는자의 시선엔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은 더 기운다. 공부잘하고 이쁜것만 우위에 세우는 복제품은 그렇지 않은 것에 냉소를 보내서 더 가치를 올리려는 얕은 습속만 유통시킨다.

멸공

사회단체에 연락이 왔단다. 한 노친네는 영화단체에 전화를 걸어 너희들 빨갱이지라고 하지 않나, 또 다른단체엔 대표자가 가입한 정당을 알려달라는 황당한 전화를 걸기에 그 서기관을 이래저래 알아보니 극우꼴통인 모양이다. 밑바닥을 점거해 들어오는 저들의 수법이란 가관이 아니다. 기업체에 대한 생각도 없다. 오로지 자기의 울타리에 대한 잇속만이 정답일뿐 묵묵히 칼질하는 모습이, 엇그제 본 [추격자]의 모습을 닮는다. 그 살인의 하루하루를 보고 있노라니 이런 엽기는 더 없다.

탈선

지식인사회는 용도폐기 된 것은 아닐까? 학교의 그늘에 갖힌 전문가의 천박함이란 늘 학교밖의 전문가에 의해 용도폐기 되었다. 울타리안의 한계는 늘 포위되는지도 모르고 포위되었다. 경제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도 그러하리라. 철학도 인문도 문학도, 학교와 경력을 갖고 밀어부치는 권력의 몰골은 더욱 추해지는 것은 아닌지? 선밖과 소통하지도 이해하지도 통지하지도 못하는 아둔함이란, 나만 모르고 다 알고 있다는 사실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노파심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황당함이 파시즘의 지류와 맛닿은 적도 있다는 사실은 위험과도 선이 닿을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대화

일터출장, 업종이 업종이다보니 실물 침체에 대한 반작용이 가관이다. 몇가지 정보는 세계실물경기 침체로 두바이도 맛이갔는지 오래다. 그리고 슬그머니 나오는 이야기도 음모론이구.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모든 수단이 협박의 끈을 먼저 건드린다는 점이다. 쑤시면 안나오는 곳이 없다는 철칙 속에 그것을 빌미로 정책아닌 정책을 들이대는 것이 천양 양아치다. 여기저기서 퇴짜맞고 있는 2mb의 난봉짓에 혹시 자신감이 붙은 것은 아닌지? 끔직하다. 애써 금밖에 있는 열외자를 추스리려는 것이 위한다는 입장이 아니라 당할지도 모르는 불안감때문이라는 것을 보고받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이정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평화가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르시즘

생각이 거듭할수록 생각은 안을 향한다. 생각밖슬픔이나아픔에 물들지 못하는 생각속에 안주란. 거품으로 크는 세상은 생각보다 빠른 몸의 연결망을 낳는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빠른 다른 것들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 거품을 영양분으로 자란 우리들을 거침없이 저밖으로 내동댕이칠지 모른다. 생각밖의 연결망을 눈치채야한다. 겨우존재하거나 열외자들의 몸의 네트워크와 생각보다 빨랐던 진화를 배우지 못하며, 어쩌면 거품이라는 각질을 벗겨버릴 기회를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부여잡지 못할수도 있다는 불안감이다.

뱀발.

지난 달포 바쁘게 흐르다. 열외가 된 아이와 엄마의 아픔에 마음선이 닿지 않아 아프다. 세상의 포위 속도는 늘 보듬고 챙기는 것을 넘어선다. 더욱더 내아이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세상으로 흐르고, 그것을 놓칠세라 힘없는자에 마음줄 능력도 퇴화된다. 스스로 너무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도 그러하며, 자꾸 뒤돌아보려는 연민이 별반 쓸모없다는 것을 느낀다. 무르춤하다. 생각대로 밀고 나가기만 하는 이곳 회색톤 일기가 그렇다. 그렇다고 빨간색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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