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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반성될 때 철학적 사유는 시작된다. 슬픔은 철학을 낳는 어머니이다. 슬픔은 생각보다 더 크다. 빛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빠져있는 어둠의 깊이를 이야기해야 한다. 말하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묻는 것, 듣는 것,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우월감을 전제로 깔고 있는 긍지, 나홀로주체가 아니라 없음으로 나, 돌아갈 곳이 없는 나, 남일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리가 아니라 타자를 통해 생겨난 거리를 매울 수 밖에 없는 너가 필요하다. 이것이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이다.
그리이스철학은 본질적으로 시학인 호메로스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는 철학에서부터 나온 중국철학과 신으로부터 사유하는 유대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시에서 나온 철학의 뿌리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자유를 전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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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문 시류에 대한 고찰
- 철학을 바탕으로 선 학문들은 어떻게 자리매김하여야 하는가? 전제의 흔들림으로 인한 요동은 어디까지 인가?
2. 관계에 대한 고찰
- 나와 자아에 대한 강박, 원자화된 개개인은 사유가 자신밖을 넘지 못한다.
- 일상으로 스며든 논의가 없는 것 같다. 관계의 확장. 서술이 아니라 다른 신선한 생각고리임에도 논의가 확장되지 못하는 것은 무슨연유일까? 너와 그것의 구별은 가능한가? 너-나의 인식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토론회의 흔적을 더 보아야겠다)
3. 일상의 계층적 계급적 차이에 대한 고찰(엘리트 위주의 생산구조라면?)
- 지식인의 말과 생산구조, 나홀로시스템이 유독강한 엘리트의 악순환구조는 계급, 계층적 차이가 있는 몸말을 감지하지도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은 아닐까? 너-나의 붙임살이나 구조가 그럴 수 밖에 없음에도 이론-성명-대응구조는 (나)의 표현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몸말과 머리말을 섞을 수도 없는 구조인 것은 아닐까? 모자랄 것이 없는 사람들의 패턴들로 모임들이 이어지거나 연결되지 않아 더 풍성해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앎으로만 판단하거나 앎이 판단잣대가 되어 움직여 더 이상 풍부해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4. 논의의 확장을 위한 철학자들의 다양한 접목과 시도의 문제
- 서양철학에 대한 유사한 지적들(김영민,김진석...)이 있는 것 같은데 더 진도는 나가지 못하는 것일까? 접목지점과 확장되는 부분은 없는 것일까?
5. 혼자에게 되묻는 문제
뱀발. 지난 목요일 보다나니 논의의 확장이 궁금해 인터넷을 보다. 그 이유 논쟁과 토론회가 있다. 얕게 읽으면서 훑어보는데 자세히 보지 않아서인지? 별로 인 것 같고, 논의를 증폭시키기엔 미흡하다는 느낌이다. 생각틀을 이것저것에 옮겨 사유해보면 어떨까 싶다. 그래서 진전된 것이 있다면 하는 느낌이 든다. 메모를 얕게 남겨둔다.

선물로 받은 책.
과 인근 서점에 아이들과 들렀는데 책들이 빈약하다 못해 없다. 맴돌다 몇권 사들고 나오다.
[동양철학]은 볼 필요가 없구요. 고미숙님의 [근대..]는 2001년에 나온 책인데, 유사하게 나타나는 증상이긴 한데 마지막 결론부분이 오버가 보여요. 한 5%쯤 오버가 늘 걸립니다. 저자님은 늘 5년전 글들을 되돌아보시면 무슨 이야기인지 느낄 수 있으려나.... 그것만 자중하시면 좋을텐데. 싶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