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화론, 기독교,파시즘,지식인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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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가미 망언의 몸통들 |
한승동의 동서횡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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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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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가미 도시오 전 자위대 항공막료장 논리대로라면, 임진왜란은 중국에 빌붙은 간교한 선조 때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말려들어간 전쟁이고 이순신 장군 때문에 7년이나 계속됐다. 조선 강제합병은 안중근 의사와 의병들의 끔찍한 테러활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행해야 했던 고역이었다. 침략이라니 억울하다, 말도 안 되는 누명이야!
다모가미 논리로, 일본군의 중국 대륙 점령은 청-일·러-일전쟁에서 이겼으니 당연한 것이었고, 중-일 전쟁은 그걸 장제스(장개석)군이 자꾸 문제삼으며 공격해 오니까(그는 이것을 불법적인 ‘테러’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반격하다 보니 그리된 것이며, 알고 보면 일본은 피해자다. (그는 여기서 만일 주일 미군기지를 일본 자위대가 공격하면 미국인들이 가만있겠느냐는 기상천외한 비유를 꺼내든다.) 거기엔 장제스군과 일본군을 싸우게 해 마오쩌둥 공산당에게 중국 대륙을 넘겨주려는 국제공산당(코민테른) 음모가 작용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과 태평양전쟁도 루스벨트의 간교한 유인작전에 일본이 말려든 결과이고, 그런 루스벨트를 뒤에서 조종한 것 역시 미국 정부 내에 스파이를 침투시킨 코민테른이었다. 모든 게 공산당(빨갱이) 때문이야!
일본은 이런 역경 속에서도 의연하게 중국과 조선을 전제군주의 압정에서 해방시키고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구해내서 잘먹고 잘살게 해 주었는데, 오히려 미국 등 서방 열강이 자신들의 죄업을 일본에 떠넘기고 전리품을 독점해 버렸다. 2차대전 이후 일본은 이 거꾸로 된 역사관을 주입받아 모든 걸 일본 탓으로 돌리는 ‘자학사관’이라는 심리조작(마인드컨트롤)에 희롱당해 왔다. 일본이 주변 나라들을 침략해 큰 손실과 고통을 안겨주는 죄를 지었다고 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는 그 전형이다. 이를 거부해야 한다. 일본이여, 일어서라!
이것이 다모가미 주장의 핵심이다. 하마다 야스카즈 방위상은 “정부 견해와 명백히 다른 의견을 공표하는 것은 항공막료장으로서 부적절하다”고 경질 이유를 밝혔고, 아소 다로 총리도 “사견이었다 하더라도 지금 입장이 입장이니만큼(공인이니까), 적절하진 않았다”고 했다. 주장 자체가 잘못됐다는 얘긴 하지 않았다. 극우 <산케이>의 11월2일치 ‘역사관 봉쇄해선 안 돼’라는 제목의 ‘주장’이 그 이유를 말해준다. 한마디로 무라야마 담화는 정부의 ‘견해’일 뿐 ‘정책’이 아니며, 그것도 “면밀한 사실 검증이나 논의를 거친 게 아니라 주변 제국 처지를 고려한 지극히 정치적인 조처”라는 것이고, 거기에 반대한다고 경질하는 건 문제라는 것이다. 이게 아소 정권의 본심에 가깝다. 한국에도 <산케이> 신봉자들이 의외로 많다.
다모가미는 지난 5월 도쿄대 야스다 강당에서 도쿄대생 1000여명 앞에서 ‘극동의 군사정세와 21세기의 우리나라 침로’에 대해 떠들었고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의 논문에 최우수상을 준 아파그룹의 대표이사 모토야 도시오는 아소의 정치적 동반자인 아베 신조 전 총리 후원회 아신카이(安晋會)의 유력 회원이다. 아닌 게 아니라 다모가미의 논문은 아베의 책 <아름다운 나라로>와 상당히 닮았다. 아파그룹이 내건 ‘진정한 근현대사관’ 논문 현상모집엔 다모가미 외에 자위대 장교 여럿이 응모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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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 감춘 채 계속 사귀자는 일본 |
디아스포라의 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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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정부는 항상 중국, 한국과의 “전략적 호혜관계”를 강조한다. 이것은 곧 본심을 감춘 채 장사를 위해 계속 사귀겠다는 의미다. 본심을 드러내면 반발하니까, 장사하는 데 지장이 있으니까 그걸 억누르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런 이중기준, 면종복배적 태도가 전후 일본정치를 관통해 왔다.
어제(11월1일)는 일본에선 ‘문화의 날’이라는 축일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서는 지금 축제가 한창이다. 아름다운 가을의 쾌청한 날씨 속에 캠퍼스에는 학생들의 모의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어슬렁어슬렁 걷고 있는데 한 가게에서 “안녕하세요”라는 조선말이 들려왔다. 발을 멈추고 말을 걸어 보니 한국인 유학생이었다. 잠시 조선어로 얘기를 나눴는데 그 여학생은 무척 기뻐했다. “환율이 많이 올라서 생활하기 힘들지요?” 했더니 표정을 흐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대학에는 중국인 유학생도 많다. 그러나 일상의 대학생활에서 그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축제 때도 중국인 유학생의 존재를 보여주는 기획은커녕 모의가게 하나 없다. 중국인 학생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 얘기로는, 중국 여학생들은 내향적이어서 좀체 일본인 학생들과 사귀지 못한다고 한다. 의외였다. 내가 지니고 있던 선입관으로는 중국인 학생은 항상 당당하고 실리적이며 외향적이라는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실정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소중한 유학생활인데 일본인, 한국인, 중국인 학생들은 서로 여간해선 섞이지 못하고 상호 대화도 빈약한 게 현실이다. 그 이유야 여러가지 있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일본인 학생들에게 큰 문제가 있다. 그들 대부분은 외국인과 소통하는 데 매우 서투르다.
그들 일본인 학생 다수는 자신들끼리의 대화에서조차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지 못하고 타자의 의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친구 소식 따위 무던하고 가벼운 화젯거리를 주고받을 뿐이다. 그런 가벼운 화제를 공유할 수 있는 자들끼리만 친해질 수 있는 것이다. 정치나 역사에 관한 무거운 얘기를 끄집어냈다가는 경원당하고 고립된다. 그런 경향은 학생들이 만든 축제 프로그램에서도 드러난다. 사흘간 이어지는 기획에 코미디언의 토크쇼는 있지만 정치적 문제를 주제로 한 강연회나 전시 등의 기획은 전무하다. 학생들은 즐거운 듯 보이지만 즐거워져야 한다는 강박관념, 무겁고 심각한 문제는 철저히 회피하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그런 그들에게 언어와 문화의 벽을 넘어 역사나 정치 문제에서 서로 입장 차이를 검증하면서 한국인이나 중국인과 우호적으로 대화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과제다. 그런 일본인 학생들 속에 던져진 한국인이나 중국인 학생이 의지할 데 없는 고립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어제 신문에 ‘항공자위대 우두머리 경질’ 뉴스가 크게 보도됐다. 이 뉴스를 관심을 갖고 읽은 학생이 얼마나 될까? 유감스럽게도 그 수는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항공막료장인 다모가미 도시오가 “우리나라가 침략국가였다는 건 억울한 누명”이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써서 민간기업이 주최한 논문 현상모집에 응모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일본은 조선반도나 중국 대륙에 일방적으로 군대를 보낸 적이 없다. 청-일 전쟁, 러-일 전쟁 등에 따라 국제법상 합법적으로 중국 대륙에 권익을 확보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배치했다.” “우리나라는 장제스(장개석) 때문에 중-일 전쟁에 휘말려들어간 피해자다.” “일본 정부와 일본군의 노력으로 (만주와 조선반도의) 현지 주민들은 압정에서 해방되고 생활수준도 현격하게 높아졌다.”
1995년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고 한 무라야마 총리 담화를 공표했다. 아소 총리도 이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그 정부 견해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을 항공자위대 우두머리가 발표한 것이다. 중국, 한국, 기타 아시아 제국의 신경을 거스르는 행위다. 그가 곧바로 경질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됐다고 할 순 없다. 그것은 다모가미의 주장에 내심 공감하는 층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아소 총리 자신이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바라던 것”이라고 발언했고, 국가(공식) 답변에서 “대동아전쟁”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총리 자신이 본심을 다모가미와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경질 이유에 대해서도 다모가미의 발언 내용이 사실에 반하기 때문이 아니라 항공막료장이라는 공인의 발언으로는 “부적절”하다는 것이었다. 올해 4월 나고야 고등재판소는 항공자위대가 이라크에 파병돼 활동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다모가미는 그때 코미디언의 말을 끌어와 “그런 거 상관없슈”라고 기자회견에서 발설했다가 문제가 됐으나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 다모가미는 정부의 본심을 대변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나고야 고등재판소 판결에 불복한 채 이라크 내 자위대의 활동을 합헌이라 주장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는 항상 중국, 한국과의 “전략적 호혜관계”를 강조한다. 이것은 곧 본심을 감춘 채 장사를 위해 계속 사귀겠다는 의미다. 본심을 드러내면 반발하니까, 장사하는 데 지장이 있으니까 그걸 억누르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런 이중기준, 면종복배적 태도가 전후 일본 정치를 관통해 왔다.
따라서 다모가미 자신도 말하자면 확신범으로서 이런 이중기준에 반항하는 자세를 드러내 보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모가미가 본심을 드러내 보인 것을 두고 어리석다고 생각할 사람은 많겠지만, 그의 본심 자체에 대한 판단은 보류해둔 채로다. 따라서 틀림없이, 다모가미가 굳이 본심을 얘기한 것을 두고 순수하고 훌륭한 행위였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여러 요인에 의해 장차 이 비율이 역전될 수도 있다.
이런 정부, 이런 사회에서 자란 젊은이들은 어떻게 될까? 중국이나 한국의 젊은이들과 솔직하게 얘기를 나누고, 자신들을 위한 평화로운 미래를 쌓아갈 수 있을까? 아름다운 가을날 학생들은 축제를 즐기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정신 차려! 위험해!”라고 외치고 있다.
서경식/도쿄경제대학 교수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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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들이 손에 제대로 잡히질 않느다. 금요일 저녁들이 바람숭숭 들어서 그런지? 온전한 주말을 갖지 못해서인지? 들쭉날쭉한 생활패턴도 일정하지 않은 이유일까? 마음들도 제자리를 하지 못하고 들쑥해서 보리밟듯 밟아주지 않으면 되지 않는 것일까? 여하튼 쉽지도 않거니와 출장 오고가는 길도 갈증이 많지 않다 싶다. 지난 금요일 근대사 산책모임도 말미 서울 출장끝머리에 참석하구 밀린 마음들을 나누다보니 금새 밤이 깊다. 주말. 이런 기분처럼 산만하던 책들을 한 곳에 모아 참*로 향해 자원학생을 보내고도 읽히질 않는다. 하루가 또 온전히 지나고 깊은 잠으로 충천이 되고, 계족산의 단풍과 바람, 온몸에 땀을 내고서야 이런저런 느낌들이 평온해진다 싶다.
그렇게 저녁을 마주하고서야 눈길이 간다. 읽다가 중동난 흔적들이 있는 책이다. 허동현-박노자의 갑신정변으로부터, 대원군, 백년에 대한 생각, 양계초-퀑유웨이-모택동과 유교. 사회진화론에 얽히다가 강준만의 요약문으로 접어든다. 친미에 대한 연원도, 기독교에 대한 맹종이 간혹 유교에 대한 반대급부로 요구되기도 하구. 신채호를 비롯하여 20년대 전반까지 환원하여 사고하는 지식인들의 습속. 그리고 일본-유럽-미국의 경험으로 여지없이 무너지는 사대나 환원이란 가치의 몽매가 드러나고, 급속히 분화하는 지식인들. 기독교에서 불교도, 다변화되는 이념은 급속히 확산된다. 한국의 근대를 읽는 일은 여전히 일본이 和화로 그렇지 않다라고 하는데, 화전양면의 굴곡은 유사한 듯 싶다. 오히려 일찍 한지방에서 번성한 크리스트교에 대한 대단위의 보복이 17세기에 이미 있었던 이유로 잠잠했던 것은 아닐까? 논쟁들 사이로 많이 엇갈린다. 건강한 보수를 자임하는 허동현도, 주제를 두고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려는 박노자도, 강준만의 주장하지 않는 요약문들로 인해 아직도 관점이 적어 사실들을 입체적 맥락에서 더 생생하게 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고혈을 짜낼대로 짜내고, 극한까지 내몰고 씨앗까지 말리는 역사와 힘의 잔혹함. 어김없이 그 민란과 어려움을 빌미로 가진자들이 거침없이 거세하는 역사의 순환구조는 피비린내가 난다. 가진 것을 더가지려하고 더 배를 불린 뒤에 순환하는 구조. 일본의 현재를 이전의 다이묘가 기업관료로 전화한 것에 불과하고, 부시(무사계급, 사무라이)가 여전히 아무말 하지 않는 일본 기업의 회사원으로 현신했다는 지적이 외려 맞게 들린다. 전쟁의 와중이란 국면이 일직선이 아니라 무한의 굴곡으로 여러 줄기들이 생기지만, 여전히 씨앗까지 말려버리는 거세의 국면이 나타난다. 미국발 경제공황의 여파로 더욱 더 어려워지는 곤궁과 삶은 파시즘의 자양분으로 겹치고, 또 유사한 박자로 구조가 현신한다.
아마추어로, 뿔뿔이 분열된 아마추어 지식인과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지 못하거나 이리 저리 끌고다니려고만 하는 누적되지 않은 활동. 사대의 끈질긴 유혹과 끊임없이 남에게서 나를 찾는 집착들. 역사의 수레바퀴는 끊임없는 기복과 흥건한 핏빛 자욱들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