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가 없었다면 우리의 가을날 창가는 참으로 초라할 뻔했다. 가을에 피어나 씨앗을 맺는 국화는 그래서 열매도 만들지 않는다. 가을이면 바람은 얼마나 달콤한 방랑자인가. 국화는 흰 솜털 풀풀 날리는 씨앗을 바람에 부탁한다. 가을 서정의 극치이다.”
식물학자 차윤정의 <꽃과 이야기하는 여자>에서
꽃시장서 국화 사기
비닐하우스 화훼재배가 일반화한 덕에 우리는 이제 원하는 꽃을 사시사철 만날 수 있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가을의 상징인 국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국화를 보는 맛은 역시 가을이 제격이다. 가을이 되면 꽃시장에서도 국화는 ‘꽃의 여왕’ 장미를 제치고 가게 맨 앞에 내걸린다. 서울 양재동 화훼단지 꽃도매시장 안 ‘꽃나라’의 황순연(50) 사장은 “최근 경기가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가을 국화는 이틀에 150단 정도 나간다”고 말했다.
꽃시장에서 인기 있는 국화 품종은 화려한 색상의 아르고스, 델몬트, 포드 등 주로 외래종들이다. 국화는 값이 저렴하다. 양재동 꽃시장에서 한 주먹에 쥐어지는 한 단이 1500원에 불과하다. 1만원 정도면 성인 여성 한 사람이 들기 힘들 만큼 큰 국화다발을 품에 안을 수 있다. 선물용은 비닐에 싸주는데, 심심하다 싶으면 부자재상가에서 리본을 사서 달면 된다. 화려한 리본들은 한 개에 1천원 정도. 화분상가의 미니국화는 화분당 2500원이다.
국화를 오랫동안 즐기려면 꽃병의 물을 날마다 갈아주는 게 좋다. 관리만 잘하면 열흘에서 2주 동안은 국화 향을 즐길 수 있다.
들국화는 농원으로
화려한 외래종 대신 시골길의 들국화가 그립다면, 좀더 발품을 팔아 보자. 경기 용인의 한택식물원(031-333-3558)은 다음달 9일까지 국화축제를 연다. 단풍나무 사이로 다양한 자생 들국화들을 볼 수 있다. 들국화 축제로 유명한 경기 포천의 평강식물원(031-531-7751)에서는 구절초·쑥부쟁이 등 100여종 1만여송이가 장관을 이룬다. 이곳 원창오 과장은 바닷가에 자라는 ‘해전국화’를 권한다. 해풍을 받고 크기 때문에 생명력이 강하고 꽃도 커서 관상용으로 적당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자생 들국화의 뿌리나 씨앗을 일반 꽃집에서 구하기는 쉽지 않다. 국야농원(kugya.com)은 야생화 동호인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들국화 아빠’ 이재경 대표가 운영하는 전문농장이다. 꽃시장에서 찾기 힘든 해국들과 벌개미취, 쑥부쟁이 종류를 모종당 1천~3천원에 구할 수 있다.
이씨가 일반인에게 주로 권하는 종류는 차나 술 등 쓰임새가 많은 감국. 야국(野菊), 황국(黃菊), 정국화(正菊花)라고도 하고 약명은 고의(苦薏)라 한다. 노란색과 흰색의 감국은 전국의 산과 들에 흔하게 자생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집에 한번 들이면 몇 년이 지나도록 꽃이 피고 진다. 이 대표는 “들국화는 햇볕과 바람을 좋아하는 양지식물이어서 실내에서 꽃피우기가 쉽지는 않다”고 한다. 일단 바깥에서 길렀다가 꽃이 피면 안으로 들이는 것이 좋다.
음식에서 약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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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화차(위)와 국화 비누. 제품협조 정우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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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국화는 다양하게 이용됐다. 새싹은 봄나물로 데치고 무쳐서 먹고, 가을에 꽃이 피면 술·차·떡·채 등을 만든다. 꽃과 줄기는 잘 말려 썰어넣어 베개로 쓸 수도 있다. 베개는 땀 등이 밸 수 있으므로 장롱 등에 보관하지 말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보관하는 것이 좋다. 국화차는 한 번에 2~5송이의 꽃을 넣고 여러 번 우려 마실 수 있다. 우려먹고 난 꽃잎을 다시 전이나 죽으로 이용해도 된다.
말린 국화 줄기나 잎은 물에 넣어 끓인 뒤 목욕을 하거나 머리를 감기도 한다. 국화 추출물을 이용한 국화비누나 오일 등은 인터넷으로 살 수 있다. 식용과 약용으로 쓰이는 것은 주로 감국인데, 중국 의약학서 <신농본초경> <본초강목>에는 두통 증상이나 눈이 빠질 것 같고 눈물이 흐르는 증상을 완화하며, 장기간 복용하면 혈기가 좋아진다고 기록하고 있다.
민간요법에서는 감기와 피부염 등에도 쓴다. 국화베개와 비누 등을 제조·판매하는 ‘들꽃잠’(dulgotzam.com)의 박희연 대표는 아이들의 아토피를 고치려고 구절초 제품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박 대표는 “국화차를 먹이면 몸이 따뜻해진다”며 “아이들이 감기에 걸렸을 때 주로 차를 달여 먹인다”고 했다. 국화차는 설탕에 절여 말리는 것과 그냥 꽃만 말리는 것으로 나뉘는데, 꽃만 말린 것도 단맛이 난다. 국산 자생종보다 중국산이 많다고 하니 원산지를 꼼꼼히 따져보고 사야 한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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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실쑥부쟁이(왼쪽), 키큰 산국(오른쪽). 사진 국야농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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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아는 것 같긴 한데…
요즘 들국화가 산과 들을 화사하게 수놓고 있지만 정작 식물도감을 펴 보면 그런 이름의 꽃은 없다. 들국화란 원예종으로 개량한 국화가 아닌 야생의 국화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국화과는 가장 성공한 식물 집단이다. 전세계에 2만5천여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380여종이 산다. 흔히 보는 코스모스, 해바라기, 쑥, 민들레 등이 모두 국화과에 속한다.
국화과 식물의 특징은 독특한 꽃 모양이다. 국화 한 송이는 실제로 수십~수백 송이의 꽃으로 이뤄졌다. 우리가 꽃잎으로 알고 있는 한 장 한 장이 별개의 꽃이다. 벌·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꽃잎을 혀 모양으로 키웠고 암술과 수술은 퇴화했다. 노란 중심부에는 꽃잎은 없고 암술과 수술만 있는 관 모양의 꽃들이 밀집해 있다. 혀꽃은 곤충을 유인하는 노릇을 전담하고 가운데 관꽃은 수정 전문으로 일을 분담하는 얼개다.
들국화라고 하면 보통 구절초, 쑥부쟁이, 산국, 감국을 꼽는다. 주로 높은 산 바위틈에서 자라는 구절초는 줄기 끝에 흰색 꽃을 하나씩 매단다. 기품 있고 우아한 모습 때문에 원예용으로 활발하게 개발·증식되고 있다. 5월 단오 때는 다섯 마디, 음력 9월9일이 되면 아홉 마디가 된다고 해서 구절초라 불린다. 이때 채취한 것이 약효가 가장 좋다고 하는데, 친정어머니가 말린 구절초를 출산한 딸에게 주는 풍습이 있을 정도로 부인병에 좋다.
작고 노란 꽃을 잔뜩 매단 산국과 감국은 초가을부터 늦가을까지 피는 향기로운 들국화이다. 둘의 모습이 비슷하지만 구별은 어렵지 않다. 감국의 꽃송이가 산국보다 조금 더 크지만, 산국에는 더 많은 송이가 촘촘하게 달린다. 산국은 혀꽃이 관꽃보다 짧아, 꽃잎이 중심부보다 작아 보인다. 산국의 줄기가 녹색인 데 견줘 감국의 줄기는 검고, 바닷가에 감국이 많다는 점도 가리는 포인트다. 구절초, 산국, 감국의 잎 모양은 원예용 국화와 비슷하지만 쑥부쟁이 종류는 길쭉하다. 쑥부쟁이는 한 포기에서 한 달 넘게 수많은 연보랏빛 꽃을 피워 대표적으로 가을의 정취를 돋우는 들국화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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