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서로주체) --- 김지하의 글에 동의를 하면서도(마당굿..) 할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필요이상의 강한 자아에 대한 인상이다. 그로 인해 여러 고리들이 이어져 이해된다고 하더라도 자아를 따라가다보면 내세우는 것들이 고스란히 시원을 찾는 일과 맞닿아있다. 어쩌면 자기중심성이 향한 곳이 마치 독일처럼 민족주의를 따지는 것과 유사성은 없는가? 만약 이 머리를 갖고 움직이는 몸통에 다들 동의한다면 국수주의와 결합하여 파시즘?적 냄새로 치달을 가능성을 함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들은 이런 이유로 서로를 불편하게 하고, 서로에게 녹아있을 확율이 지극히 작다. 아마 그래서 무척이나 외롭지 않나 싶다. 그 생각의 절반은 나 김지하가 아니라 타인의 몫으로 연유된 이유는 아닐까.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의 또 다른 한쪽일 수 있다싶다. 홀로주체가 몸에 배인 이상, 그의 융합을 말하는 이론들은 오로지 그의 소유일 뿐일 것이다. 99%가 맞다고 하더라도, 1%로 언제나 위험할 수 있다. 자기의 주체를 나라는 강박에서 벗어나보면 어떨까? 그의 글이 달라질까? 동이족이나 시원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의 시 한편대로, 그릇은 중심이 없다. 없는 중심으로 인해 그 그릇은 있다. 그의 글은 낮추지 못한다. 재주에 비해 남이 흘러들어갈 곳이 없다. 그의 모순이다. 그가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자아, 원자론의 변형이 위험하고 위태한 것을 아닐까? 그것으로 올려놓은 탑들이, 학문들이 위태로운 것은 아닐까? 깊숙이 빨려들어간 자아가 단수라는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은 아닐까? 니체도 푸코도, 들뢰즈도 자신을 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나]만의 학문이란 실험들, [나-너]의 학문은 대체 있었기나 한 것일까? 그러면 도대체 어쩌자는 이야긴가?

찾아간 시민과학교육 080823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68027&PAGE_CD=&BLCK_NO=&CMPT_CD=S0334&NEW_GB=
- 강연이란 것이 앎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느낌이나 열정, 리듬이 서로 스며드는 것이 아닌가 한다. 대상에 따라, 특히 도입 10-20분에 호흡이 끊긴다면 다시 잇는 것이 쉽지 않은 듯 싶다. 따라서 이성적 전달이 교수법이 아니라 감성적 전달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듯하다.
- 문자세대가 아닌 아이들에겐 텍스트가 아니라 그림, 플래시와 적절한 강도의 완급이 있지 않으면 역시 이 또한 호흡을 끊는다. 60분 1회가 아니라 [15분*5분휴식]* 3회가 더 나을 듯하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초고] 강의안을 대상별로 재설계하고, (예비군훈련시 정신교육시간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인 일인지?) [0x 나 퀴즈] 필요
조류독감과 원더걸스-소녀시대-ss501과 같은 점과 다른 점은?
전쟁으로 인한 사망과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
조류독감으로 인한 사망이 젊은이가 높은가?
조류/광우병/사람 - --> 항생제나 약물, 호르몬이 수명을 연장시키기는 하지만 종의 건강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닭을 몰살하든가 소를 몰살하는 것, 그 틈을 비집고 나오는 것은 공존을 거부하는 종들에게, 약물복용으로 건강하다고 하지만 전혀 건강하지 않는 종에 대한 거부. 바이러스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에 일정한 개체수를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 기본 생존방법은 아니었을까? 주기성을 갖는다는 것도 그렇고...40-50년이란 짧은 시간내에 흐름을 과학지식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
전*조 역사교과모임 - 이**선생님, 김** 선생님과 함께 080824 임용교사 - 선생님이란 지식전달자가 아니라 느끼고 섞이고 함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홀로족들은 그 점들이 무척 부족하고, 이로 인한 문제로 중도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 인문강좌 -- 아카데미, 청소년잡지 미루, 송승훈교사 학생들의 글이 섞이고 뿌리내린다면? 그 방법은?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
자유를 주창하는 시인들의 공화주의 관점부족. 작가적 관점이나 깊이 부족.
남쪽으로 튀어...사이길을 만들지 않으면, 피해가도 피해갈 수 없다. 천박하기 이를 때 없는 공간들이란? 공간을 부풀려 터뜨려 전혀다른 시공간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엇박자와 그 틈을 비집고 다른 리듬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아주 작은 자본의 수혈로도 가능한 삶의 공간들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그 수혈의 샘이 자본일지라도, 그것을 감싸고 넘을......080823 김*신

뱀발.
1. 나에게 전자우편을 보내본다. 그리고 그 편지를 받게 되면, 이상할 정도로 낯선 경우가 많다. 혼자 생각으로 품은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는 늘 타인의 교류된 몫이 있다. 그리고 그 타인의 몫이 낯설게 다가서는 연유겠다. 그래서 늘 생각도 혼자몫이 아닌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늘 나 혼자라는 착각이 일상을 지배한다. 내가 쓴 글흔적도 낯설고, 생각줄기를 따라가다보니 어떨 때는 그 글마저 몇년 전과 흡사함을 발견하곤 한다.
2. 토욜 친구와 한잔하다. 삐뚤빼뚤 이야기가 겹치고 섞이고 하다가 취했다. 이야기에 취한 것인지? 중동난 생각에 배여버렸는지? 이어지는 긴장때문이었는지 담날 하루종일 잠에 취하다.
3. 약속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잔차로 미리 나서 여기저기 구경하다. 전*조 샘들을 만나 교사와 시민-주민과 접점에 마음길이 간다. 왜? 학교는 갇혀있고, 주민들은 손길조차 못내밀고, 잡혀있는 아이들의 퇴행구조에 대해 이야기내내 생각이 스며든다. 자전거 찾으러 가야하는데.
4. 시맨틱 웹(뜻살린 웹)은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블로그와 정보에 대해 굶주린 분들은 제대로 살펴보는 것도 꽤나 유용할 듯 싶다. 찬이한테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