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다시 생각을 잇는다. 서걱거리는 생각들은 새벽녘으로 이어지고 노루잠끝에도 묻어있다. 다듬고 완만해지지만 깨어나면 흐릿한 안개처럼 부유하여 쉽게 잡히지 않는다. 일터에 일들은 흐른다. 흐르다가 일이 일과 만나면 일을 낳고, 커진다. 그렇게 몸의 공간과 여유의 공간을 불쑥 침범해 뒤섞이다보면 어느새 일만 배회하고 일에 치이거나 일의 차도 옆으로 몰려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회색포도를 배회하는 일의 신호등만 깜박거리고 그 시공간에 소외된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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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과 나, 순환하기만 하는 정해진 일과 나의 도로와 방향없는 동선의 무한궤도 공간에 다른 여유는 둘 수 없는 것일까? 생각이나 고민이나 새로운 꺼리들이 자라게 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어떻게 평면적이고 회색빛톤의 일방의 전달은 아홉빛깔의 무지개톤으로 진화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일은 늘 밀려서 오거나 쓰나미처럼 오기만 하는 것일까? 나라는 존재는 넘쳐오는 일의 경로를 아주 작은 노력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 작은 제방을 미리 쌓아둘 수는 없는 것일까?
지난 금욜, 일터 동료들과 회의를 하다가 매화를 그렸다. 올해-내년-그후년. 우리가 하는 일이 이렇게 올해는 씨앗을 내지만 한해 보듬고 신경쓰고 제대로 자라게 하면 매화도 가지가 쭉쭉커버리고 화려한 화목으로 크는 것이라고 말이다. 매화프로젝트. 한편, 그런 생각도 같이 들었다. 일들이 다가오는 것,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지는 것이라는 피해의식들이 뚝뚝 묻어있다고 가정해본다. 끊임없는 설득의 시선이 튕겨져 나오는 이유의 절반은 그럴 것이라고, 일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자는 제안도 당장의 일범벅엔 투사될 수 없는 말잔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느낌도 같이 오른다.
아마, 아마 대부분의 일상이 이럴지도 모른다. 일은 모두 회색빛톤에다가 절망과 피곤이 함께 섞여 일은 더욱더 검은색 톤으로 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쁨의 핑계로 무한의 반복패턴이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자각이나 아픔마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하냐고, 왜 사느냐고, ???? 되돌아오는 물음표는 살아지는 것이지, 살아가는 것이냐는 되문답만 있다. 없다.
기계와 생명의 차이, 기계와 나무의 차이, 선형과 비선형의 차이, 단순과 복잡의 차이. 이런 기계적인 나열은 별로 영양가가 없어보인다. 나무라고 이야기해도 그 울림은 공명되지 않는다. 더구나 딱딱한 이성의 맞대면은 기계주의자와 나무주의자의 선명성만 강하게 할 뿐 섞이게 할 수 없다. 기계주의자와 일중독은 섹스욕과 권력욕처럼 맞닿아 있다. 삶의 결이 아픔이나 상처로 비집고 들어갈 수 없다면 아무런 울림도 내지 못할지 모른다.
2.
그래서 푸념을 해본다. 울지도 못할 선문답을 해보자. 울리지도 못한 허소리를 해본다. 작은 공원을 가정해본다. 파크다. 알 앤 디. 연구라는 공원을 가정해보자. 일은 걷는 보도일뿐이고 작은 공원 얕은 공원에 손수 심은 나무들이 있다고 해보자. 과제의 수많큼, 지금과 다르게 키우고자하는 과실나무들을 심었다고 해보자. 혼자의 정원이 아니라 함께 키우고 나누고 관상하고 먹고 마실 정원수라고 해보자. 쉼없이 매듭과 켜를 만들면서 자라는 정원이라고 해보자.
나는 관심이 있는가? 자라나는 과수에 관심이 있는가? 누군가 키워주고 따주는 과실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정원 가꾸는 일은 정원수가 하면 될 것이고, 그 몫은 당연히 잘 아는 사람의 몫이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소통이 아니라 유통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의 자치가 아니라 생각의 중앙집중제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닐까? 일의 쓰나미에 생각이 숨쉴 곳이 없다면, 지금의 삼분의 일을 줄일 수 없다고 한다면, 지금의 절반이 회색빛 단조의 일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노란색, 빨간색, 풀색을 도통 찾아볼 수 없다면 만약 당신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해지는 것이라면... ...
새로운 색깔의 일들. 회색-검은색 일의 아스팔트에 묻혀있는 다른 일들을 찾아내고 보듬을 수 없을까? 그 일씨앗들을 보듬을 수 없을까? 그 일들을 자판기나 부화기에 넣은 것이 아니라 서로의 품, 아픔의 품으로 껴안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그것들을 자라나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앞으로 세상의 팔할은 전혀 다른 일들이 채울지 모르는데, 우리는 너무 수구보수주의자들은 아닌가? 당신에 누리고 있는 팔할의 물건들이 10년전 20년전에는 없던 것처럼 세상의 새로운 것은 늘 다른 것으로 충만하다는 사실을 애써 보지 않으려는 것은 아닌가?
3.
무수한 고민이나 아픔이 배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진보든 진보를 열망하는 사람들이든, 사회단체활동가든 실무자이든. 그리고 여전히 상처난 상처들은 아물지도 않고 현재에 찬비를 맞고 있는지 모른다. 상처와 아픔은 필연적으로 다른 방향과 방법을 가슴에 심장에 품고 있다. 함께 삶의 결에서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많은 경우 아픔마저 느끼지 못하다가 그냥 먹고 싸고 그뿐일 경우가 많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다. 효수되어 걸려있는 저 상처들과 아픔을 외면하는 것도 아닐텐데. 그저 비를 맞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 말이다.
그 상처와 아픔도 누가 처리하는 것인가? 홀연히 누가 나타나 교통정리하고 대행보험처럼 의탁하는 것인가? 비정규직과 정규직도 그러하며, 풀뿌리 운동도 그러하며, 민주노동당의 지역에서 활로도 그러하며, 진보신당의 진보도 그러하며, 서로 교차하는 쟁점도 그러하며 활동가의 누적된 피로도도 그러하며, 괴물이 되어가는 공*노조도 그러하며 그렇게 전투적이며 비타협적인 사람들이 논쟁을 만들지 않는다. 숙성시킬 용기를 내지 않는다. 방향이나 방법을 공론화하지 않는다. 그 나무들을 자라나게 하지 않는다. 방관과 수수조차 유통되지 않는다.
톤이 격해 미안한 일이지만, 이렇게 생각한다. 방(향)방(법) 뜨는 생각을 주제넘게 해본다. 자칭 진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정치행위도 그렇지만, 실무도 그렇지만 정작 만들어야 할 문화의 분위기(아우라)조차 섞이지 않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새로운 일들에, 새로운 방향에 방법에 눈길도 주지 않으며, 논의되었던 일들은 지혜로서가 아니라, 저 낡은 창고 구석에 쳐박혀 있다. 지혜의 창고로 끊임없이 소통되고 새로운 의견으로 샘솟는 공간이 아니라 방향과 방법과 아이디어는 드라이아이스로 꽁꽁 얼려져 폐기되어 있다. 그러다가 불쑥 간헐적으로(아마 늘 유통기간이 지나 잊어버릴쯤해서) 냉동창고에서 꺼내 비참할 정도로 누더기가 된 채 다시 얼려지곤 한다.
진보는 문화도 없고 정치적 수사만 가득한 뼈가 부딪치거나 건성피부 같다. 생각의 길을, 아픔의 길을, 일의 내용이 아니라 일의 질을, 혼자가 아니라 함께 풀어가는 습속을 만들어내지 못할 때, 아무도 당신들에게 일을 맡기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달라져야 한다. 뼛속까지. 방향이나 방법을 늘 몇몇 엘리트 지식인들에게 의탁하지 말고, 함께 있는 사람들과 지혜창고를 만들고 끊임없이 흥~ 되나바라의 힐난과 조소까지 함께 숙성시킬 각오로 새로운 일들에 관대해지고 열어두어야 한다. 그래야 거름도 되고 볕도 되고, 그렇게 해야만 과실나무가 큰다. 내 일만 제발 열심히 하지 말고, 뭍혀 있는 일들, 새로와 질 일들에 몸도 마음도 흠뻑 주는 연습을 해보자.
4.
혼자 생각하는 촛불의 지역에서 성과는 최소한의 접촉점이 생겼다는 것일뿐이다. 생각의 접촉점. 고민의 접촉점. 그 그물망들의 점선을 실선으로 만드는 몫은 전적으로 우리 몫이다. 늘 해오던 대로 하면 늘 해오던대로 실망과,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패배감만 있을 뿐이다. 제발 늘 하던 일들은 줄여라. 내 색깔만 최고라고 어이없는 선명성만 휘두르지 말고 무지개의 경계가 얼마나 많은 색깔들이 끊임없이 섞이는지? 생각과 고민이 얼마나 섞여야 되는지? 그래야만 접촉점이 그나마 접촉선으로 공진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지역으로 사고 지역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서울로만 향하는 당신의 마음에도 안티를 걸어라. 생각의 눈높이도 주변으로 얕아지고, 중앙중독된 당신의 생각들도 자치와 연대로 눈길을 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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