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강연회가 있었습니다. 세분 강사의 죽비소리는 크고 묵직합니다. 생명은 공학이 아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예측가능하지 않다. 교육이라는 것도 예측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가? 더 이상 잘 살 수 있는 시대는 없다. 비정규직의 일상도 네로황제의 수준보다 높다. 네트워크 산업의 민영화가 가장 큰 문제다. 수의학 생물학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을 만드는 정권은 오래가지 못했다. 세계화나 민영화를 선진화로 만드는 것이 어이가 없을 정도다. 어느 경제학용어에도 선진화는 없다.
강연자를 모셔 듣는 것의 보다 나은 점은 무엇일까요? 문서 활자의 여기저기를 탐색하는 것보다 한번 듣는다는 것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직접 대면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쵸. 요점과 하고자 하는 바의 울림을 정확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겠죠. 여기저기 흩어진 느낌들이나 사실들이 아니라 응축되고, 렌즈로 한 곳에 모은 살갗이 뜨거워져 데일 듯한 느낌이죠. 잔잔하고 어눌한 말들 속에 이렇게 깊숙히 다가서는 말씨들이 있습니다.
뒤풀이에서 조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박병상선생님과 근래 읽는 책들이 유사하더군요. 마이클 데이비스의 삼종 세트를 읽고 있었고, 저도 순서만 달리할 뿐 역순으로 읽고 있습니다. 박승옥 선생님과 정태인 선생님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크고 작고, 추상과 구체. 내공과 노력에 주춤해집니다. 그쵸. 묵묵히 달리고 가는 수밖에 없겠죠. 가다보면 어느새 거기까지 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치지 말고...봉우리에서 쉬다 또 가면 되는 것이겠죠. 2에 자승의 네트워크는 의외로 간단하지요. 산술의 힘이 아니라 마음의 힘이죠.




뱀발.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이 오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새벽은 어느새 순식간에 다가섭니다. 너무 어둡다고 하는 순간, 이미 날은 밝더군요. 이야기가 증폭되고, 생일잔치에, 참*의 돌맞이 의례가 그러하듯 날밤을 새었습니다. 강연자분도 이곳의 분위기가 뭔가 다른지 자리를 뜨지 않으시고 드뎌 막차시간까지 함께하시게 되었군요. ㅎㅎ. 폭우에 장소변경까지 겹쳐 내내 아쉬움이 많은 강연과 토론이었지만 끝까지 함께 한 분들에게 남다른 느낌들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또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명함을 건네 아***로 끈을 이어놓습니다. 사진 몇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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