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의 생각을 이어간다. 어제 관저동으로 친구를 찾아가 몇 분을 더 불러내어 한참이나 수다를 떤다. 어설픈 술은 늘 문제다. 잠도 오지 않고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기때문이다. 물론 조금 넘어섰다. 이야기와 고민에 넘어선다. 불쾌하지 않은 오버다.

[이명박정권 퇴진]에 대해서 생각이 반반이다. 그래서 물끄러미 [퇴진]만 가져온다. 이 일이 무엇일까? 응축점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과연 살리는 일인가 꺼지게 하는 일인가?  - 살리다/ 꺼지다, 성밖으로 나가다/ 들어오게 하다/ 나가지 못하게 하다 - 괜한 고민일까? 그래도 한번 해보자.  먹다죽은 귀신 땟깔도 좋다는데. 한번 해 본 생각도 밑져야 본전 아닌가?

퇴진! 물러가라!

물러갔다면 어이할 것인가? 굿판에 애들은 물러가고 어른들만 모였다. 굿판이 재미가 있을까? 없을까? 그림 1, 2처럼 [지금]을 단순화해보자.  [내새끼-내가족-일]의 동선에 갇혀사는 우리가, 우리의 성안만 응시하고 산 것은 아닐까? 여기에 똑같은 레퍼토리의 이야기만 하는 친구를 보태도 여전히 [일의 성]안에 갇혀 살았던 것은 아닐까? 그 성안에 갇혀 살던 사람들이 저 멀리 [삶의 성]이 해일?처럼 밀려오는 것을 감지했다고 하자. [삶의 성]은 더욱 좁혀지고 위기 일촉즉발임을 눈치챘다고 하자.

[그림 1 눈치채다]


[그림 2 城 과 木]




단 한번 갇힌 눈들이 모여 밖의 상황을 인식했다고 해보자. 그래서 몇몇 친구들은 [일의 성] 밖을 서성이고 마실다니기도 한다고 하자. 아주 미력한 동선을 긋고, 사회와 삶에 대해 다른 공기를 숨쉬었다고 하자 1)

여기에 퇴진이라는 구호를 가져와 보자.  불을 살릴까?  죽일까? 정확한 호명은 무엇일까? 이름을 잘 짓는 일은 이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안해가 바람났다고 해보자. 먹고사는 문제가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라고 눈치챘다고 하자.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틀어박혀 어떻게 사는 지도 모르는 안해들이 삶의 전선을 느끼고 바람났다고 해보자. 아니 뿔났다고 해보자.

당신은 바람난 안해에게 바람을 부채질하기 위해 무어라고 할 것인가? 물러나라~ 고 할 것인가?


평론하거나 추상화하거나 단순화하는 일은 맹점이 많고 잘난 체 하는 일이다. 그래서 손쉬운 평론은 경계해야 한다. 어떤 국면으로 정리하고 싶은 욕망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환원하는 평론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 사람도 한 사람을 보고 절경을 논한다.2) 높은 계곡도 있고 저 계곡 아래 깊은 못도 있다. 이 숱한 촛불 절경을 보고 제멋대로 평론하는 것 역시 전유하고 편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는 나도 지금 그짓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에 앞서 관전평이 입체적일 수 있다면, 아름다움을 느낄 숱한 꺼리로 격려하고 고무하는 일로, 이 열정을 정확하게 호명하는 일로 여러 장벽을 열어놓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일의 성]에 갇힌 [생각-열정-희망] 범벅들이 성밖으로 가지가 자라도록 하는 일들에 신경을 더 써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의 중앙병 3), 서울병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자유롭게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이유로 역시 [ 퇴진 ] 이란 꼬리표에 똥침을 놓아본다. 그래서 너는 어쩔건데라고 되물어오면 나 역시 [너는 어쩔건데]로 되묻고 싶다. 네 생각은 뭐냐고, 기식하지 않은 바로 네 생각은 무어냐고? 묻는다. 누구누구가 해주는 버전이 아니라 [내]가 [나-너]가 [나-너-우리]가 무엇무엇을 한다로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다음은 이야기를 나누다 생각이 밀고 나온 것이다. 내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인 셈이다.

갑. 연애에 대한 생각 - 낭만을 사는 일. 축하할 일이나 잘 이용할 일, 사랑에 잡혀먹거나 소유당하거나 잡아야 한다는 심보와 동시에 [나]는 사라져버리는 일. 관계의 합은 성숙이지만, [나-너]는 실패만으로 수렴하고 상처를 잘 타넘는 일에 미숙하다. 무의식적인 과잉의 자본주의 사랑독이 많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나의 확장에 염두를 두어야 한다. 광장만 있는 세계에 밀실이지만 광장으로 나가려하지 않는 밀실은 늘 실패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도 그래서 [성과 나무]와 같다.
 

을. 아름다움이나 미(학)에 대한 생각 - 미는 평론하거나 해석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여기에서 밀고나가는 것이다. 잔뿌리는 알고도 잊어버리는 것. 여기에서 더 아름다워지는 것. 그 풍요로움을 가지고 노는 잔치같은 것은 아닐까? 아름다운 모임이 아름다움을 죽이는 행위를 반복해서 한다면...아마 어처구니 없는 일이겠지??? 이러면 미학모임에 대한 쓴 생각과 쓴 뒷담화인가? 5)



병. 청소년을 표현하게 하는 것 - 가지고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는 것. 칠판에 글씨를 쓴다면 분필을 잡거나 쓰게하는 방법만 가르쳐줄 것. 시라는 것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넘치는 생각들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 창작이라는 것 역시 한가지다 한다. 꿈틀거리는 것을 그렇게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 창작을 설명하는 일이나 평론하거나 해석하는 일은 역시 하지 못하게 거스르는 일이다. 그런면에서 일의 성으로 사람을 자꾸 들이미는 일과 같다. 4)

정. 어제 스며든 말, 오늘 흔적을 남기다 생각난 말 - 다른 공기를 숨쉬다/아내가 바람나다/ 맛보다/눈치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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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주)

1) 나무 김유신의 말 080612 관저동 싸지만 맛있는 호프집에서

2) 아카데미 김영화의 말 080611 미학모임 세미나 뒤풀이 도큐하우스에서

3) 강준만 교수가 중독된 우리현실을 빗대어 잘 쓰는 말.

4) 대전 민작 사무처장 이*섭님의 관점  5) 대전 독협 송*호님의 관점 * 김유신님의 관

5) 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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