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즈의 이해
리차드 턱 외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3월


뱀발. 0.1 서울 출장길 교보문고에 들러 싸고 낡지만 알찬 책들로 고르다. 대한민국 헌법 1조에 대해 시의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아*** 주제는 지난번 공화주의에 이어 홉스-로크-루소이다. [민주공화국]에 대해 시류에 편승한? 세미나!!! 하지만 훨씬..1년전쯤 논의되고 세미나 중이라는 사실. 관심있는 분들은 오시면 좋겠네요. 요즘 젊은 세대나 친구들은 역사를 늘 지금의 나로 편취하려고 해서 탈이죠. 그 시대의 담론이나 문화의 장이나, 지금과 얼마나 다른가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듯합니다. 그래서 늘 이해도 못하면서 책읽기가 끝나지 않나합니다.
0.2 *박이 때문에 이리저리 쏘다니다보니 책을 보거나 고를 겨를도 없던 것 같네요. 이래서 싫군요. ㅎㅎ 가벼운 시집으로 니클라스루만의 사랑을 아마 편취 전유한 듯한 책으로 읽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잔뜩 그림책들로 행간에 넣어야 속이 개운하겠다는 느낌이네요. 너무 쉬어서 갈증나는 나날입니다.
** 각주를 달면서 이야기는 이어나가기로 하죠. ㅎㅎ

1) 고독한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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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한국인은 고독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 같다. 모든 일을 빨리빨리 해내느라 정신이 없고, 사람에 치인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각종 연고․정실 문화에 죽고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줄서기와 쏠림에도 능한 사람들이 고독하다니 그게 어디 말이 되는가.
그러나 자세히 살펴볼 일이다. 이 지구상에서 한국인만큼 고독한 국민도 드물다. ‘고독’은 주관적 심리상태인 반면, 고립은 홀로 있는 객관적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사교활동이 매우 활발한 마당발도 얼마든지 고독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홀로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긴 하지만, 한국인은 유별나다. 그런 두려움을 회피하려는 게 생존본능으로 자리잡았다. 반도국가라는 지정학적 특성, 좁은 국토에다 산지가 많은 탓에 생겨난 초밀집 주거 형태, 인구의 사회문화적 동질성, 그리고 이런 특성에 맞게 권력행사가 이루어져온 오랜 역사 등이 만든 결과이리라.
한국인의 중앙지향성이 ‘중앙병’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매우 강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늘 중앙에 모든 권력․부가 몰려있고 그곳에서 모든 주요 결정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중앙 근처에 있어야 부스러기라도 얻어먹거니와 적어도 불이익은 당하지 않는다.
한국인은 고독할 겨를이 없을 것 같지만, 실은 고독을 경험해볼 기회가 거의 없다고 말한ㄴ 게 더 정확하다. 역설 같지만, 그래서 고독한 사람들이다. 자신보다는 남을 더 의식하고 살아간다. 남들로부터 인정받아야만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인정투쟁의 대가들이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선 잘 모르면서 남에 대해서만 전문가다. 고독해선 안 된다는 강박으로 의례적인 사교에 몰두하면서 질주하는 게 일반적인 삶의 모습이다.
한국에서 늘 불황을 모르는 성장산업도 ‘고독으로부터의 탈출’을 도와주는 ‘고독산업’이다. 대표적인 고독산업인 엔터테인먼트․게임․도박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적으로 최첨단을 달리는 한국의 인터넷․휴대전화 산업도 고독산업이다.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라는 건 실없는 농담이다. 인터넷을 고독 퇴치를 위한 용도로만 사용하는 데 있어서 세계 1위일 뿐이다.
고독은 중독을 부른다. 중독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분야가 거의 없을 정도로 한국인은 극단으로 밀고 들어가는 걸 사랑한다. 한국인의 ‘일중독’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발전을 가능케 했지만, 모든 중독이 그런 축복만 가져다 준 건 아니다. 스트레스․음주․섹스․자살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기록들은 한국인들에게 “왜 사니?”라는 원초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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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절반의 왜곡,절반의 상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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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항상 소통 가능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서적 인쇄술과 전화, 인터넷 등의 발명은 오히려 비개인적 소통을 증가시켰고, 친밀한 소통이 단절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랑이라는 통로에 매달리게 된다.
이 점에서 사랑이 단순한 감정적 끌림이 아니라 현대인의 절실한 존재 증명인 개인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사회 소통 코드라는 루만의 이론은 설득력이 있다. 법, 경제, 과학, 매스미디어 같은 여타 소통 체계와 구별되는 사랑의 가장 큰 특징은 ‘비개연성을 필연성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사랑의 유일성과 배타성은 현대인에게 개별적이고 사적인 세계를 보장해주어,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자아가 숨 쉴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한다. 주변에서는 도무지 이해 못 할 행동이 연인 사이에는 쉽게 허용되고 전폭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사랑의 코드가 지닌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사랑의 경우 코드의 가치는 ‘개인적/비개인적’으로 나뉜다. 이를 ‘사랑한다/사랑하지 않는다’, ‘사랑받는다/사랑받지 않는다’나 ‘우리 둘/다른 모든 사람들’로도 부를 수 있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사랑의 코드가 ‘사랑’과 ‘사랑 아닌 것’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 짓는다는 사실이다. 모든 소통과 행동은 얼마나 개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긍정적/부정적’ 가치로 나뉜다. 어떤 식으로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이 중요한 것이다. 그 밖의 것은 전혀 상관없다. - 28쪽
그런데 개인적인 특성을 지닌 사랑의 코드는 다른 소통 체계에 비해 개인의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많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사랑의 코드는 특정한 행동 모델을 마련해두었다. 장미꽃이나 장신구 선물, 반복적인 만남, 특정 방식의 신체 접촉이나 눈빛 교환 등 일련의 행위는 연인들에게 사랑의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그 밖에 늘 상대방의 세계를 함께 고려하고, 자신의 사랑을 행위로서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점이 사랑의 코드의 제1원칙이다. 신체의 소통을 좌우하는 섹스 역시 오늘날 사랑이 시작되는 중요한 출입문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사랑을 통해 온전한 자아를 인정받으려 했던 개인은 상대의 내면을 끊임없이 탐색하면서(동시에 자신도 상대로부터 탐색당하면서) 자신의 개별성을 위협받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사랑의 코드, 그 기원을 찾아서
2장 ‘낭만적 사랑의 변천사’는 시대별로 사랑이 어떤 변모를 겪었는지 따라가면서 사랑의 코드의 기원을 탐색한다. 열렬한 사랑을 불길한 병으로 여겼던 고대나, 이상화와 완벽주의를 사랑의 비전으로 삼았던 중세에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17세기 영국에서 계몽주의의 전신인 ‘주체’가 발견되면서 비로소 모든 사회적?도덕적 책임에서 해방된 ‘열정으로서의 사랑’이 대두된다. 그리고 18세기에 이르러 소설이라는 매체를 통해 본격화된 ‘개별화’는 낭만적 사랑이 꽃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극단적인 ‘주관성’이 사랑의 코드로 진입하여, 모든 것을 사랑의 징표로 해석하는 낭만적 도취가 곳곳에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18세기 말에는 유일한 개인으로서 인간을 바라보는 낭만적 시각에 개인의 자기성찰이 결합되면서, 이성과 열정이 결합된 오늘날 사랑의 코드와 유사한 사랑 코드가 성립된다. 19세기를 지나 20세기에 이르면 영화와 텔레비전, 광고 등 대중매체가 총동원되어 사랑의 모델들을 적극 전파한다(출판사 책소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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