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이나 참터인근 태울관에 들러 인디영화세편을 보다. 동성애-이주노동자-은하**** 한편은 그 빈 공간을 채울 수 없는 현실에 아파하면서도  골방으로 들어오거나 전문이라는 빌미로 깊숙히 자리를 잡아 외려 영화는 없는 것은 아닌가하는 딴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1)

돌아와 밀린 이야기를 연두*를 만나 나누다. 경계를 넓히지 않으면, 아니 몸이 넓혀지거나 달라지지 않으면 마음도 가슴도 흔들리지 않는다는데 공감을 표하고 싶어지기도 한다.2)

1) 그렇다구 오해하진 마시구요. 재미있고 괜찮아요. 찾아가 보세요. 30날까지구요. 참* 삼실에 데여섯장 티켓하구 팜플렛 가져다 놓았어요. 놓치지 마시길... 대학원생 친구들도 많이 왔더군요. 김*곤 친구도 언듯 보이는 듯.

2) 주제가 다양했군요. 반성모드이거나 동네 뒷담화였나요.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역시 대학원을 다니는지라 신선한 고급정보가 많더군요. 학생의 자유로움과 지적 감수성이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지 말아야되요.4) ㅎㅎ

1)  뒤샹의 변기작품이 떠오른다. 아니면 찰리채플린의 무성영화.  시한편, 소설한편, 그림한편, 영화한편. 영화는? 인디영화는 왜 생긴 것일까? 적당히 좋아하고 적당히 하는 것만 그린 것도 내내 그런느낌이 든다. 말못하는 화자를 통해 소통과 사랑의 답답함을 이야기하는 그 이야기가 거울 속에 무한히 비치는 자화상은 아닌가싶다. 소통을 이야기하는 것말고는 모두가 똑같다. 그런데 어떻게 다르다고 이야기해야할까. 신춘문예처럼, 문단에 진입하는 국경선이거나 출입세관이거나. 모두 규격화된 방식으로 들어갈려는 것은 아닐까? 점점 대형화되고 전문화되고 세련을 가장하지만 전혀 세련되지도 전문화되지도 대형화되지도 않는 구조를 답습하는 것은 아닐까? 영상은 마력있는 언어지만, 다른 매체처럼 그 그물에 걸려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뒤샹의 변기처럼, 작품의 한계. 평론도 그저 무의미한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림 한편, 시한편의 감흥은 있는 것일까? 영화는 왜 독립한 것일까? 독립은 된 것일까? 3)

1)`[올드랭사인][불한당들]- 소수자들의 공간과 국수적색깔 영역들이 격하고 잔잔하게 들어온다. 대부분 일상의 경계에서 벗어난 무의식적인 행위에 걸려있다. 모드가 일상에서 분노나 각박함으로 다른 상태. 울화의 상태에서 그대로 표출되는 편견들. 그로인해 숨쉬지 못하는, 숨쉬기 어려운 일상들. 따듯한 생각들로만 보듬지 못하는 다른 문제들. [경계허물기]의 잔꼭지 두편이다.

3) 이젠 뒷담화 전문 서재가 되겠군. 정말 불편한??  [은하****] 생각을 한쪽 끝으로 달려봤어요. 결국 작품 좋다는 이야긴가요?

 

4) 사람을 변하게 하려면 역시 사람이 우선인 것 같아요. 제한된 동선은 의외로 보수고 고루하고 새로운 것이 돈다고 해도 그 울타리 안이죠. 사람이 섞이지 않으면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아낄수록 멀리해야되고 다른 그물망에 자라도록 하는 것이 배려이겠죠. 배려는 아무래도 아쉬움이나 섭섭함을 동반할 수 밖에 없겠지만, 좀더 깊은 맛을 보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겠죠. 짧은 생각길이 자꾸 돌이켜지네요. 막히면 풀어라. 안이 아니라 밖에서.. 그 길이 지름길인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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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9 1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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