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

 시인은 말미에서 절경은 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로 사람의 냄새가 배어있지 않기 때문이란다. 사람이야말로 절경이라한다. 하지만 노시인의 한마디 한마디는 눈물을 별빛처럼 그렁그렁하게 하는 슬픔의 悲景이다. 사람은 삶과 마음의 결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 깊은 심연과 창연한 하늘과 숲과 나무와 강과 골짜기로 담고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시를 쓴다는 것이 사람구경이라 하는데, 없는자 목소리마저 얿는 사람의 형상화는 차마 읽지 못할 정도로 마음 아프다. 젊음이란 감수성과 상상력만으론 사람의 결을 녹여내지 못할 것이다. 시가 시다워지는 일은 어쩌면 엄청난 슬픔과 고통에 연유하는지도 모르겠다.

[생태학의 담론]/[사회생태주의란 무엇인가]
 아느네스 deep ecology 팀룩 근본생태론의 꿈 머레이북친 social ecology

머레이북친  키워드
생태적 감수성(경쟁보다는 상보성), 비위계적인 관계들,상보적 자원, 마음의 자연사,감수성의 자연사, 자연의 지배라는 무의식,불균등관계,위계조직

[생태학의 담론] 머레이북친
1. 자연과 사회 사이의 뿌리깊은 연속성 회복이 목표다.
2. 세계는 공생하며 상호관계적이다 = 다양성 속의 통일원칙, 전일성 wholeness
3. 자연 종들의 관계는 지배종속이 아니라 불균등관계다
4. 2세기, 특히 빅토리아시대의 '냉정한'자연에 대한 관점이 인문사회과학의 토대가 됨--> 이원론 생성의 토대가 되고 이원론의 역사적 상속자가 됨
5. 조직화된 사회의 장점은 어린이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마음을 열어놓고 부모자매와 같은 유대를 함께하고 창출한다.
6. 새로 형성된 공동체나, 새로 등장한 사회는 잠재적 가능성이 유기적으로 만개하는 것. 단순한 변화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7. '지배'와 '복종'으로 인간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불등한 관계로 표현해야 한다.
8. 계급보다 위계조직이 더 근본적인 문제다. 사회생태학은 질서와 위계조직을 묶고있는 연결성을 파괴한다.
9. 위계질서는 사회제도적인 현상으로  인류의 제도화된 명령-복종체계는 다른 종에서 찾아볼 수 없다.
10. 맑스의 주장대로 계급,착취,국가가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연령,성,인종, 폭력, 가끔 비합리적인 범주에 따라 위계적이고 서열화되는 지배를 막아주지 못한다.
11. 자연은 창조적이고 자기지시적이며 호혜적이며, 비옥하고, 상보성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지배하는 자연은 가부장적인 위계조직, 계급과 국가주의적 유해로 이어졌다.
12. 사회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연과 사회의 이원론적 복음을 받아들였다.
13. 근본생태주의 등 낭만주의 신비주의, 유전학과 과학이론들이 문제다 oneness

[사회생태주의란 무엇인가] 원제 remaking society 1989

1993이 아나키즘 2백주년 1992년이 페미니즘 2백주년이었고, 유럽은 물론 일본마저 많은 행사를 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이는 1793년의 고드윈의 [정치적 정의] 1792 [여성권리에 대한 옹호] 와 같이 아나키즘에 대한 왜곡은 물론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데 대한 답답함의 토로였다고 한다. 이미 1952년 머레이 북친은 [음식에 화학첨가물의 문제]란 논문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독일의 녹색당창립은 물론 실천적인 삶도 너무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사회주의도 아닌 자본주의도 아닌 다른 길에 대한 사상사나 역사에 빈약한 인식이 문제라 한다. 기본적인 관점에 있어 문제제기를 하는 시각이나 관점의 성숙선상에서 보면 좋을 듯하다. 역자는 자치적인 중세도시, 중세의 예술, 예술과 시인에 대해 새롭게 보고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공화주의]

공화주의,자유주의,민주주의

공화주의적 문제의식이란 무엇일까?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그리고 그 조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한다. 공화주의를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국민들 사이에 정치적 우정을 형성하는 방법에 대한 고찰이라면 어떤 생각이 드실까? 공화주의가 정치적 자유의 실현과 유지에 꼭 필요한 열정들에 대한 이론이라면?

 멀리 중세 이탈리아 공화국으로 고민을 가져간다. 이 역시 최근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다. 인류지성사에 가장 뼈아픈 손실이 고전적 공화주의가 변형되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사상전통으로 나눠진 것이라면? 마키아벨리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로크와 몽테스큐로 하는 한쪽과 루소로 하는 다른 한쪽으로 나눈 것 때문이라면 말이다.

정치적 개인주의는 자유주의자들의 창작품이 아니라 오히려 고전적 공화주의자들의 오래 전 생각이라 한다. 권력분립 역시 그러하다고 한다. 단 하나 양도불가능한 인간의 권리라는 개념이 자유주의만의 창작물이라 한다. 물론 명백한 이론적 약점은 어떠한 권리도 오직 법과 관습에 의해서만 많든 적든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권리라는 것은 좋은 정치제도와 군사제도, 개인들이 충분히 시민윤리를 체화하고 있어야하고, 운에 달린 것이긴 하지만 힘세고 공격적인 국가들에 너무 가까이 있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자유롭다는 것 역시 자유주의가 우리가 외부의 간섭에 벗어날 때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공화주의는 타인에 예속되지 않을 때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예속이 간섭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침해다라고 한다. 민주주의 사상가들이 정치적 참여를 민주적 제도들에 대해 강화되어야 할 목적으로 간주하는 데 대해 공화주의사상가들은 자유라는 것이 생래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거나 앉아 있기만 하면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노력해야만 가지며, 또 그만큼 합당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라 한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오직 간섭으로부터, 개인의 선택의 자유에 간섭하는 여러 움직임들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킬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반해 공화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모든 예속의 조건들로부터 개인들을 해방시킬 것을 목표로 한다.

"인민은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자유를 자기 수중에 쥐고 있어야 한다." 마키아벨리


뱀발.

0. 자본주의는 초기 사회의 가장 사악한 특성을 가장 존경스럽고 명예로운 가치들로 만든 사회다. 청년맑스의 관점이나 또 다른 관점들, 또 다른 중세 혼합정의 관점으로 다시볼 때, 지금은 어떠해야할까? 어떤 것이 이야기되어야 할까? 어떤 것이 이야기될 것인가? 사회재계약이 가능할까? 많게는 100년전, 200년전 멀리 500년전의 시선으로 다시 볼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을 보기위해 지금의 구조와 습속와 애초 인류가 하려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세계일까? 관점의 전환이 열정을 살려낼 수 있을까? 관점을 지금으로 녹여내면 열정에 훈풍을 드리울 수 있을까? 국민들 사이에 권력과 힘의 서열을 벗겨내고 정치적 우정을 만들어내는 단초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작은 나라에서 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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