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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이어폰을 꽂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어떤 여자가 나에게 눈인사를 하며 뛰어온다. 저기 죄송한데요. 휴대폰 한 통화만 쓸 수 있을까요? 나는 뒤죽박죽인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그녀에게 빌려주었다. 꽤 오랜 신호연결음 끝에 그녀의 통화가 연결이 되었다.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휴대폰을 차에 선배 차에 놓고온 그녀는 신호등에서 기다리는 나에게 휴대폰을 빌린 것이다. 통화가 끝난 그녀가 나에게 휴대폰을 돌려준다. 아직 신호등은 빨간 불이라, 난 휴대폰을 돌려받고 귀에 이어폰을 끼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불편하고 어색하다. 이럴땐 어떻게 해야할까. 사실 그녀가 나에게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했을때 휴대폰을 빌려주는 일보다 신호등이 바뀌기 전의 어색한 시간을 견디는 게 걱정이 되었다.
그녀는 몇번이나 나에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나는 웃으며 "아니에요'"말했다. 파란불로 바뀌자 그녀에게 짧게 인사하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예쁘고 애교도 많아보이는 여자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나중에 집에와서 확인해 보니 고맙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그녀의 예의는 반항같이 느낄 정도로 충격이었다.
나는 택시보다 버스타는 것을 선호한다. 거기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요금이 싸다는 점이 있겠지만 그 이유만은 아니다. 물론 택시가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나 택시기사분들이 불친절해서도 아니다.
사실 나는 택시타는 걸 싫어하는 쪽이다. 약속시간에 늦지 않고서야, 정말정말 발이 아프지 않고서야, 생판 모르는 곳에 떨어뜨려 있지 않고서야 거의 택시를 타지 않는다. 이유가 뭐냐 묻는 선배의 물음에 그제야 내가 왜 택시타는 걸 싫어하는 걸까 곰곰히 따져봤다.
일단 택시를 타고 있는 시간이 편하지 않다는 점에서다. 음악이든 책이든 편하게 볼 수 없다. 속도와 시간에 민감할 수 밖에 없으며 내가 택시에 앉아있는 자리보다 마음은 자꾸 시계에 머물거나, 신호등에게 머물거나, 택시 앞에 늘어선 꽉 막힌 차들에 머문다. 가슴은 답답해지고 짜증은 차곡차곡 쌓인다. 결국엔 택시를 타는 시간 자체를 즐길 수는 없다.
어쩔땐 꼭 남의 시간과 공간에 끼여든 느낌을 준다. 택시라는 것은 택시기사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버스는 가장 앞자리에 앉지 않고서야 버스기사분의 얼굴을 확인할 길도 없으며 사고가 나거나 운전을 험하게 하지 않는 이상에 버스기사분에게 신경을 쓰는 일은 없다. 어차피 버스에서는 모두 모르는 사람들 뿐이니까. 그러나 택시는 다르다. 택시에 타면 언제나 나는 미약하게나마 갈등하게 된다. 얘기를 걸어야하나 말아야 하나. 기분이 좋을 땐 택시기사분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전공, 나이, 이름까지 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리에 몸을 파묻고 이어폰을 끼고 창밖을 바라본다.
나는 특히 택시에 내릴 때 돈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는 과정이 싫다. 미터기에 올라가는 금액을 보고 돈을 지불하는 단순한 과정. 이제 나는 택시에서 빨리 물러나야하는 사람이 된다. 나는 그 순간만 되면 왠지 다급해진다. 뭔가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 없어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이 좀 있는 것 같다.
짧은 시간이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택시기사와 승객의 관계로서 잠시 묶인다는 것 자체, 그 관계에서 나에게 요구되는 것들이 부담스럽다고 표현하면 될까.
그 부담은 꼭 회를 먹기 전 살아있는 물고기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것과 비슷하다. 쓸데없이 불필요한 감정이나 감성의 개입이고 책임질 수 없는 연민이다. 부담스러운 것에도 부담이 되는 것에도 나는 늘 민감했지만, 그 민감함을 표현하는 게 오히려 부담이란 걸 알고 약간은 태연하게 부담스러운 사람의 행동을 하기도 한다.
나는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말을 잘 못 놓는다. 안 지 일년이 넘은 후배에게도 언제나 좀 허물없이 대하고 싶어서 말을 놓아야지 다짐하다가 막상 보면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이가 한 두 살 많다는 이유만으로 대접 받는 것도 웃기고, 스무살 넘으면 성인인데 모두 친구라는 생각으로 함부로 하지 못한다고 얘기하지만 어쩌면 누군가와 반말의 거리을 갖는 게 부담스러웠는지도 모른다. 혹은 선배 역할에 대한 부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생각해왔다. 반말을 통해 쉽게 거리낌 없어지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그렇지 않고 친해지지 않을 관계라면 그런 건 부질없다. 뭐 이런 생각.
오늘 문득 말이 놓고 싶어서 07학번 후배에게 말을 놓았다. 그리고 너도 말 놔. 말하니 나의 착한 후배는 나에게 말을 놓지 않는다. 열번쯤 더 권하면 말을 놓을까?
성숙해진다는 것은 스스로가 부담스럽지 않기 위해 촘촘히 쳐놓은 감정의 필터를 느슨하게 여는 걸지도 모르겠다. 쓸데없는 것에 대한 연민을 좀더 깊게 생각해보는 걸지도 모르겠다. 주위 사람들을 나의 반경 1m 안으로 들여놓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일지도, 그들의 반경 50cm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쓸쓸한 마음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아직, 하루하루 쓸쓸해 질 뿐이다. 택시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봄비는 달나라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아, 유치하구나.) 봄비가 오는 날에는 또 하루종일 들어줄 생각.
아, 그리고 택시가 버스보다 싫은 이유 한가지는 낭만이 없다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Groove_Armada___Fly_Me_To_The_Moon.wma
[출처] Fly me to the moon|작성자 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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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프티에이가 숭미보다 싫은 이유는 한가지 낭만이 없다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민*당도 진보도 싫은 이유는 낭만이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 한가지를 보탠다면 드러나는 액면그대로의 강요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와 똑같이 닮아 싫은 그런 강요말이다. 늘 천개의 시선, 천개의 생각이 있다하는데 늘 움직임은 하나인 모습 말이다. 그들의 반경 안으로 들어가는 천가지의 방법은 없는 것일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