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녀석 잔차 고치고  햇살고운 거리를 나섭니다.
 도서관 자리도 다 차 버렸을텐데.
 빌려온 책 주섬주섬 챙겨갑니다.

젯밥에 더 관심있는 녀석은 오자마자 참*로 가자고
타령입니다. 빨리 책 빌리라구. 책앞에 서서 머뭇거리는
것이 자기 맘을 몰라준다구 말입니다.  다짐을 받고서야
안심하는지.

많이 남지 않은 주말을 위해
유홍준 평론집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
2007년 문광부 추천도서 두권
<상징이야기>,
<그림 속의 의학>  이렇게 가벼운 것으로 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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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8-03-10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불이 타듯이. 천당에서 지옥까지. 지금여기의 경계는 무한히 넓고 깊다. 그 혼돈의 와중에 준비되고, 기획된 것이 하는 역할이 제한되어 있다. 그래도 움직이는 편이 낫다. 그 넓고 깊은 바다가 공감의 폭과 시야를 좁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지금 여기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그 경계를 볼 안목이 얕다. 고암 이응노의 <취야>와 최민화의 <낮술>이 끌린다. 김수영의 뜨거운 일상과 같으면서도 다른 맛이다. 이 책을 들고서야 무위당이 난을 치고, 전통을 이어나가고, 이론에서도 더 풍요로운 논쟁의 장의 30년대 지식인들이 살아숨쉰다 한다. 미술사냐 미술평론이냐 되묻는 사람들에게 미술사도 미술평론도 온전히 중요하다고 작가론으로 아우르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10년이 더 지난 책에서, 그는 문학과 미술의 시간차이를 이야기한다. 문학을 뒤이어 미술이 10년 늦게 따라와, 한번에 화악 세상을 불붙인다고 한다. 아방가르드도 필요하고 실험도, 다시 현재와 전통의 지평에 서는 일이 뒤따르면 좋겠다. 문학이 종언이 고했지만 다시 불꽃이 일듯이 일어나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했으면 좋겠다.

쌍계사가는 길처럼. 단원이 필을 들면 웃지 않는 이가 없었던 것처럼. 심금을 울리는 그림들이 또 다시 전시회에서 일상으로 나올 때가 된 것은 아닌가? 세상은 넓고 깊고 어지럽지만 나가고 들어가는 최소한의 암시를 주는 것은 아닌가?

세상이 너무 각박하다. 방화에...일터에서 어린 자식을 남겨놓고, 자살로 목숨을 내놓는 일이 빈번하고 점점 무감각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