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자
선순환,0.001%,옳다-그르다,편집증,칭찬
- 아버지로 어머니로 선배로 남성으로 팀장 목사로 가지지 않는 자의 몫보다 가진자의 몫과 동선은 늘 많다. 불편한 것을, 되지 않는 것을, 이미 벌어진 현실을 옳다그르다로 편집해낸다면 가지지 않은 자의 불편은 일상화되고 해결되어갈 기미가 별로 없다. 여전히 옳다와 그르다는 제편을 마음에서부터 만든다. 만들어진 것이 유통되고 거래된다. 출발의 시점이 나눠지기보다는 견해가 들어간 사물로 유통되어 더욱 위험하다. 패거리를 낳기도, 적군과 아군을 낳기도 한다. 맺고 푸는 힘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가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과 경계 여러가지 가운데 선택 폭을 늘릴 수 있는 정보도 가장 많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 권위가 침범당했다, 내 것이 피해를 받았다고 느끼는 지점을 고정시켜 늘여보면 어떨까 싶다. 권위가 주장한다고 세워지는 것도 아닐테고. 자연스러움에서 출발하는 것일텐데. 판단이 섣부르게 여기에서 연위한다고 하면, 문제풀이도 거기에 따를 것이다. 실추된 권위를 채우기 위해 옳고 그른 것에 날을 세울 것이고, 그 구분에 따라 동선을 취할 것이다. 실제 강박적인 요소를 많이 담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출발한 선택의 폭은 극히 제한될 것 같다. 그 동선에 따라 힘이 없는 사람들이 취할 것은 강박적인 요소에서 외화한 방향밖에 없다.
- 진위로 구분짓지 않음은 있는 그대로로 두어 꼼꼼이 안배하고,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음은, 선택의 여지를 늘 담겨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 소통의 가닥은 대부분 힘있는 자에게서 나온다는 사실, 소통이 되지 않는 팔할의 책임은 여전히 사태를 보는 가진자의 몫이다. 사태를 여러갈래 지어, 해볼 수 있는 일들을 여러갈래지어, 여러갈래의 의견을 가공하지 않고 듣는 귀, 행하는 손이 모자르고, 불쑥불쑥 솟는 충동과 기분에 맡긴 이유때문이기도 하다. 단말보다 쓴말로 치렁치렁해 쓴 것만 보게 만들기때문이다. 단말의 흔적이 쌓여 마음이 들뜨고 해보고 싶은 쪽으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스스로 가진 것을 생각해내는 일도 잘해내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가지지 않는 것을 발라내는 것보다 오히려 할 수 있는 것을 같이 고민할 수 있기에.... 탓이라고 여기거나 옳고그름으로 판단하려는 악마의 사고란 유혹에서 먼저 벗어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소수자
- 소수자의 시선과 마음이 스며들 기회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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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글을 퍼오다) 다시 떠나고 싶다.
언제나 안정이 찾아올지..
눌러 앉고 싶은 강렬한 바램에도 세상은 호락 호락 마음 놓을 정처를 허락치 않고...
나답게 살아가는 길에 대해서 생각하고 생각합니다
관계에 집을 짓고 싶다는 바램은 한갖 꿈에 불과하고,
나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나는, 이런 저런 내 외피들로 해서 타인들에 의해 쉽사리 규정당하고.... 취급받고.....
소수자로 주눅들고 그늘 속에서 숨죽여 사는 일이 어느날 문득 억울합니다.
우리 이 곳의 친구들.
그 예전의 아련한 추억에도 불구하고, 함께했던 고민과 시간들에도 불구하고,
그대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보다 그렇지 못한 부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쌓이고 쌓여 가는 데
그 시간을 거슬러 다시 다가가 켜켜이 쌓인 것을 풀어 보일 수 있을까? 이해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소통하여 옛 추억에 기반한 친구가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나, 너, 우리들 그대로를 다시 사귀어 가고 싶은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런 사귐이 가능한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왜 나는 가끔 그대들 앞에서 타자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인지.
이 나이에, 그 시대를 살아오면서, 다수자로 혹은 소수자로 주류로 비주류로 이런 저런 길을 걸어온 우리의 소소한 사회적, 심리적 궤적들을 서로 긍정하고 마음 낮춰 이해하는 그러한 정서적, 실천적 공동체가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다양한 만남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만남과 흩어짐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렇게 이루어지는 자기 확산과 변화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러나...
이 나이가 되면 또, 문득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외로움을 서로 기대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의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무엇을 드러내야 하는 것인가?
관계에 어떤 용기를 내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힘은 긍정이다. 관계에서 긍정 받는 일이다.
나 자신을 긍정 받을 때 우리는 자심감이 생기고 빽이 든든해 지면서 살아갈 힘을 받는다.
우리가 이 나이에 다시 모여서 함께 할 때 무엇을 위함인가?
있는 그대로 받아 안기, 힘주기,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그리하여 만나는 시간만큼은 지나온 시간의 켜를 넘어 새로이 함께 시간의 켜를 쌓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희망이 없어보이는 미래를 살아내기 위해서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를 쓸쩍 깔아주고 싶기도 하다.
그런한 관계가 이룩한 힘으로 말이다.
....
그저, 주절거려보았다.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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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아*** 문대표님과 점심자리에서 조금 일찍 대면하여 모교회일로 어려움을 말씀하신다. 고민 언저리, 입에 뱅뱅도는 말이 선순환인데 같은 말씀. 가진자가 결자해지할 수 있음에 생각이 박힌다. 그리고 서울서 잠깐 만난 후배의 말씀엔 소수자가 도드라져 일상을 같이 남긴다. 08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