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일]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드는지요?  [일]을 처리하시나요? [돈]도 되어야 하는데 돈도 되지 않고 재미도 보람도 없는 일에 매여있다구요? 일생각만 하면 갑갑증이 생기나시나요? 일이 온몸을 칭칭감아 헤어날 수가 없다구요. 죽음의 고역같습니까?

돈을 중심으로 얽혀있는 그물망.  돈을 중심으로  하지 않아 그 그물을  빠져나오는 일들을 생각해봅시다. 편의상 사회적 '일'이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돈]의 위계로 치밀하게 설계되고 운영되는 일이 아니라 [사회]와 [사람]을 정점으로 만들어지는 유연하고 촘촘한 일들을 가정해봅시다.

이런 [일]들을 치룰까요? 처리할까요? 당위와 의무감으로 밤낮을 헌신해야 할까요? 물론, 답은 없을 것입니다. 일의 색깔도 여러가지이니 하나로 무슨 색이다라고 하는 것도 합당한 생각은 아닌 듯 합니다. 그래도 숙성이 필요한  사회적 '일'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함께 가졌으면 합니다. 어설피 모은 생각거리 참고만 하시고 혹 다른 관점, 신선한 관점에도 마음 주셨으면 합니다., 더 좋은 아이디어 있으시면 물론 함께 나눠가져야 합니다. 


1.

먼저 두가지 경우를 가정해보자. 정말 하고싶은 일에 푹 빠져서 무아지경에 있던 일. 밤새워 한 일인데 애석하게도 그만 저장도 되지 않고 날라가버렸다.  너무도 관심이 많아, 그 관심으로 지레 씨커멓게 타 되지 않는 일, 배가 산으로 가는 일들 말이다. 애가타고 마음이 타는 일, 눈총받고 있는 일들. 우연이라 하기엔 일이란 놈이 때로는 궁지에 몰리고, 요리조리 피해가는 것을 보면 대체 무얼까?싶다.


2.

돈을 정점으로 세팅된 사회, 자본주의 사회의 규격화된 일의 관점을 조금만 벗어나보면 어떨까? 분업화되고, 표준화되어 그 자리를 끼워맞추거나 넣어버리는 일들, 옴짝달싹 못하는 경직화된 일의 개념을 흔들어보면 어떨까? 그래서,돈이란 심장박동에 맞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일들.  명예와 권력. 힘만 바라보는 욕망의 장에 예속된 일들. 이런 일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을 이 기계부속품 같은 생각에서 조금만 비틀어 보자.


3.

일이란 놈이  씨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씨처럼 배와 배아가 있어야 한다고 보자. 마음도 섞이고, 생각도 섞이고 정성도 섞여야 발아를 한다고 해보자. 생물이라거나 생태란 거창한 말을 빌리지 말더라도 조금만 기계의 관점을 넘어서서 보자. 오래 살아남는 일에 대해 생각해봐도 되고, 이리저리 요리저리 피해가기만 하는 일들을 한번 뜯어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장독대에서 곰삭는 장맛이어도 좋고, 아니면 바꾸고 싶은 나의 한모습이어도 좋겠다. 이왕 생각해볼 것이면 인심을 써서  나로 함몰되는 일말고 나-너, 우리로 모아지는 사회적 일들이면 더 좋겠다.



4.

블로그에서 얻은 <꽃과 문장>이라는 아래 내용을 슬쩍 이 생각에 버무려보자. 해야할 요령은 아시겠죠. [꽃]과 [문장]이란 단어를 [일]로 슬그머니 바꾸어서 생각하는 것이다. 마음에 넣고 맛이 나도록 삭히시면 더욱 좋겠다. 끝 문장에 너무 연연해하면 안되는 것 잊지 마시구.
 

꽃과 문장


人之有文章, 猶草木之有榮華耳. 種樹之人, 方其種之也, 培其根安其幹已矣. 旣而行其津液, 旉其條葉, 而榮華於是乎發焉. 榮華不可以襲取之也. 誠意正心以培其根, 篤行修身以安其幹, 窮經研禮以行其津液, 博聞游藝以旉其條葉. 於是類其所覺, 以之爲蓄, 宣其所蓄. 以之爲文, 則人之見之者, 見以爲文章. 斯之謂文章, 文章不可以襲取之也.


화단에 초목을 심어 꽃 한송이를 보려면 드는 품이 만만치 않다. 잘 심어 뿌리를 안정시키고, 땅에서 양분을 끌어올려 가지와 잎을 틔운다. 가지도 쳐주고 거름도 주며, 때로 버팀목도 세워주어야 한다. 꽃은 그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바른 마음과 도타운 행실은 초목의 뿌리요 줄기다. 이것이 든든해야 힘을 받는다. 고전을 익히고 견문을 넓히는 것은 뿌리를 통해 줄기로 양분을 끌어올리는 과정이다. 가지 끝까지 양분이 전달되어야 꽃망울이 부퍼서 아름다운 꽃송이를 피운다. 문장은 바로 이렇게 해서 피워낸 꽃송이다. 바탕 공부 없이 꽃만 피우려들지 마라. 세상에 가장 천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이 안 된 글쟁이다.       

- 다산 어록 중 爲陽德人邊知意贈言에서




5.

이제 사회적 '일'들을, 그 [일씨]를 틔워보자. 이 문장을 빌려서 말이다. 묘목을 자라게 해보자.  나비가 꽃처럼 피어 날라가는 탈각과정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주변에 하고 싶은 일들을, 어쩌면 생색도 나지 않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들을 세밀히 들여다 보자.  그것이 자판기처럼 뚝딱 해결되거나, 나 혼자 품어서 해결될 일이라는 만용은 일단 접고 말이다.  하찮아 보이더라도 그것이 [사람]이나 [사회]를 품고 있다면 한번 마음의 눈길을 주어보자. 일이란 것이  고민과 번민, 아픔을 키운 마음들로, 애틋한 눈빛이 만나  조금씩 따듯해진다고 생각하자. 조금씩 따듯해진, 설레이는 온기가 비로서 사회적 '싹'을 틔운다.

어여쁜 싹이 돋아났다. 이제서야. 이제서야.


6.


이제 치뤄야만 되는 시선으로만 [일]을 보지 말자.  우리를 일을 마음 담은 일, 가슴 담은 일. 아픔을 담은 일. 설레임을 담은 일들. 잘 살피고 보살피자. 꽃을 피워야 되는 시선으로, 아름드리 나무를 키워야 하는 시선으로 살펴보자. 돈의 그물망을 벗어나 외로움을 타는 사회적 [일]들을 마음 속에 가져가 보자. 내 따듯한 가슴만 아니라, 나-너의 가슴으로, 아니 '우리'의 마음으로 가져가 보자. 그리고 그 마음에 품은 일에 개인적인 명예나 권력같이 빌붙어 있는 것들을 거둬내보자. 그 상태에서 사회적 일들의 [싹]을 모목으로 기르자.


지나친 애정도,  너무나 멀리하거나 소원하게도 하지말며, 나만 너만의 일로 생각하지 말자. 지나치게 애정이 많다면  줄이고, 물을 너무 듬뿍 주지 말도록 하며, 바람이 드세면 바람을 막고, 한여름이다 싶으면 그늘도 만들어주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싹들이 묘목으로 듬직한 마을의 이정표로 자랄 수 있도록...그늘에 가린 사회적 일들을, 사회적 일씨를 찾고 보듬고 나누자. 그 싹들을 키우고 자라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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