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체크 중이다. 상담내용들이 들려 잠시 바람도 쐴 겸 산책이다. 안전보건이란 개념으로 바뀐 뒤, 노동자의 주기적 검진과 상담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렇다고 일상들이 달라지거나 바뀐 것은 아니다. 그런 내밀한 얘기들은 듣지 않는 편이 낫고, 알아서도 별반 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자리를 피한다.


일터가 수단이기도 하지만, 좀더 나은 공간이 되길 바라지만 그럴 수가 없다. 개개인의 여건과 조건 거기에서 출발한 가치관과 일에 대한 관념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또한 선입견이다. 일에 대한 개념 역시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강도가 다르듯이, 삶에 접근하는 수단으로서 일, 아니 다른 형태로서 일은 다채로울 수밖에 없다. 30년을 도보로, 자력으로 세계일주하는 사람이 있듯이 그가 향하는 삶에 일은 가늠하기 어렵다. 또 다른 걸음으로 가는 조력으로서 일은 간결하거나 매여있지 않다. 하지만 아이학비를 책임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몇 년간의 월급쟁이 생활을 자원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흔하다.


가난에 대한 과욕으로 돈에 매진하다가 몸이 다치거나 아프게 된 경우, 그 일에 대한 의미를 수정해야 될 것이다. 불쑥 몸이 아프게 된 안해를 위해 하루에 일정한 돌봄을 우선으로 삼는 사업주는 또 다른 부와 일을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것이다. 코로나 백신으로 현기증을 동반한 균형상실을 회복한 분이 조무사일을 야간에 다시 하면서 생기게 된 무기력함은 그 일을 벗어나야만 해결이 될 것이다. 골수, 혈액암에 걸린 젊은 친구가 투병후 완치하여 다시 복귀한 경우라고 해도 일에 대한, 일터에 대한 견해가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일은 다얗하며, 일을 대하는 태도, 일의 종류에 따른 개인 삶의 접목자체가 성격과 여건에 따라 다르다.


이렇게 다르지만, 공통되는 소망은 이럴 수도 있고, 더 간결할 수 있다.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삶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는 분들의 걸음걸이, 응대하는 태도, 그리고 출퇴근하는 모습들을 관찰해본다. 아니 관찰이라고 하기보다는 우연히 동네에 있으니 목격하는 것이다. 끌려가는 듯한 취한 걸음걸이, 퇴근 또한 무기력해보이는 걸음걸음이다.  성격에 따라 시원시원하게 인사를 건네거나, 꼭 비닐봉투에 담아주는 이도 있다.


어쨌든 일이라는 짐이 자신의 삶을 짓누르거나, 그 무게를 감당해내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다. 그러니 쉽게 할 수 있다라고 얘기할 수도 없다. 이겨내라. 얼마나 무책임한 조언인가. 회식할 여유돈도 없는 청춘들의 삶들도 더 팍팍해지고, 소비할 관계인구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자신의 건강만 신경쓴다. 임대상가들은 더 말라비틀어진다.


더 이상 일도 소비도 가늠할 수 없다. 구제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보류하거나 아예 없다에서 생각를 자라게 하는 편이 낫겠다싶다. 그러니 표준적인 일터 생활, 일 앞날을 대비하라는 말조차 폐를 끼치는 발언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산책 길에 여전히 억새와 새들, 그리고 철지난 개나리도 핀다. 흐리고 고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