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두
돌잔치를 가는데, 멀다. 세종 조치원은 가깝다는 생각만 있지 넓다는 생각을 늘 놓친다. 가다가 고복저수지를 얘기했고, 그 한 켠의 매운탕집을 건넨다. 비가 내리고 저녁밤에 가깝다. 아까부터 있던 구두 밑에 끈적거리는 느낌이 뭐람? 사돈 어른과 만나고 얘길나누고 비는 짙어진다. 여전히 끈적이는 느낌 파사드가 있는 입구로 가서 밑바닥을 확인한다. 아불싸. 우레탄 밑창, 고이 모셔두었더니 세월에 삭은 것이다. 뼈대는 사그라들면서 접착제만 바닥으로 서서히 내려와 고인 것이다. 막내 차에 신발은 없니라고 묻고, 조심조심 해야한다는 경고. 그 뒤로 조심스러워지고 조심스럽게 아니 우아하게 다닌다.
2. 증약
장군님닭치킨 이층은 아지트다. 대전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한 편 때리고, 오백 한잔과 소회를 나누기 좋은 곳이다. 오징어다리튀김, 전기구이, 반반. <이방인> 프앙소와 오종 감독 작품이다. 코로나 시기 페스트란 작품과 나눔의 세계 등등 여러 작품들을 한 번에 볼 겸 카뮈를 심층탐독했던 시기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 과연 나는 <이방인>은 제대로 읽어본 것인가? 뫼르소 뫼르소 유명한 나머지 읽은 것은 확실한가라는 의문도 들기는 했지만, 과외 경험과 수십 번 읽은 시인에게 스토리를 확인받는다. 아참 이 친구는 막걸리파인데. 증약막걸리. 오늘은 참자. 취한다.
3. 개인주의자
뫼르소. 뫼르소. 지난 시절을 겪은, 책을 본 나는 저것이 나라는 것을 다시 확인해낸다. 감정을 하나하나 걷어내고 있는 사실만 보는 건조오징어같은 놈 말이다. 서로 닮으려고 하고 추구하려고 하는 지식인의 모델, 항간에 회자되는 선배들의 모습은 저런 것이었다. 모든 것을 발라내고 스스로 오똑 선 체 하는 인간. 그 모습이 겹친다.
얘기를 나누다보니 정작 우리 시대는 이런 경험이 몰려왔지만, 놓쳤다. 겪지 못한 것 같다. 어정쩡한 변태들만 낳고 만 것은 아닐까? 시대의 우울이다. 사르트르와 같이 실존주의는 즉자적 존재, 대자적 존재, 기투란 말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자아라고 하는 것 개인이라는 고체가 있어야, 이것이 전제해야 가능한 서술이다. 하지만 주어는 흔들린다. 그렇게 매여둘 수 없다. 그 고체, 부여잡고자하는 시대상의 인물, 그 가상이 늘 뫼르소였다. 곁이 없는 존재. 감정 한 톨도 매여둘 수 없는 존재말이다.
카뮈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존재라는 것. 부조리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시지포스를 빌려서 그 마음을 설명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시대의 추락은 이미 시작하고 있다. 견고한 개인주의자 하나 만들어내지 못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버리는 편이 나았을까. 아닐 것이다. 각자 다른 길로 접어든 것일 수밖에. 그 이전이 함께라는 수식어가 늘 곁에 있었다면, 그 이후는 나밖에라는 수식어만 붙어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암담의 확율은 부쩍 높아진 것이다. 어떤 깨우침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또 다른 고체덩어리다. 이기심으로 똘똘뭉친 뫼르소들의 출현이 그 뒤를 잇는 것은 아닐까
개인주의자가 하는 모든 서술도 형용모순이다. 그렇게 존재하거나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이성이 억압하고 뱉어낸 감정들이 그 삶들을 이어주는 접착제이자 가교다. 냉랭한 이성은 무미 건조하지만, 말랑말랑한 감성과 감정들은 일상을 버무리고 뱉어낸 마음과 심장을 쫓는다. 삶의 강약은 이렇게 뛰는 것이다. 무미하게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냉동동결인간들이 어찌 숨을 쉴 수 있겠는가.
4. 지금
지난 과거들이 물밀듯이 몰려온다 간다. 그 영화를 빌미로 지난 흔적들이 희석되기를 바란다. 너무 부끄럽다. 하지만 지금이 있다. 그래 그렇게 디딘다. 흔적들을.
200521 ▼
‘전락‘
마흔 여섯.
시지프스가 맛 본 그 해방감.
바위를 손에 내려놓는 그순간.
숙명을 짊어지고 사는 인간.
그가 가다듬는 심호흡과 통쾌함으로 잇는 길.
재판관으로서 ‘시선‘과 참회자*로서 ‘뺄셈‘이 서로 겪어내는 바닥.
그 바닥에서야 오롯이 삶의 시선을 맛볼 수 있다 한다.
힘겹게 바위를 밀어올린 과정과
바위가 굴러내려가는 순간을 다시 써 내려간다.
그제서야 지금과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 들어서는 것이라 일갈한다.
발. 삶의 비밀을 드러낸 자에겐 늘 가혹하다 싶다. * 카뮈, 《전락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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