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분위기가 존재의 방식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것은 변화를 창출하고 즐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이점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불안감의 원천이다./형상화는 사유의 비유적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위치 지어지거나 내장된 그리고 체현된 위치들에 대한 좀 더 유물론적인 지도 그리기라 하겠다. 15

 

내게 형상화란 정치적 정보가 담긴 지도를 가지고 위치 지어진 우리 자신의 관점을 개략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형상은 역동적이고 변화하는 실재로서 주체를 보는 다층적이고 탈중심적인 시각의 관점에서 우리의 이미지를 제공한다./형상은 살아 있는 지도이자 자아에 대한 변형적 설명이다. 그것은 은유가 아니다. 유목민, 노숙, 망명자, 난민, 보스니아 정쟁 강간 희생자, 떠돌아다니는 이주자, 불법 이민자는 은유가 아니다. 16

 

형상화는 주체의 비통일적 시각과 비선형성을, 정치적 실천을 재구성하고 정치적 주체성을 재정립하기 위한 중요한 자리들로 본다. 이에 따라 이 책은 문화적, 정치적, 인식적, 윤리적 관심의 측면에서 현재를 카르토그라피적으로 읽어내기와 관련될 것이다. 17

 

주요한 질문은 차이 안에 축적된 것처럼 보이는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차이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퇴적의 역사적 과정, 즉 독소의 점진적인 축적과 같이 차이의 개념은 독이 되어 왔고 열등한 것이 되어왔다. 차이가 난다는 것은 가치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이를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는 방식을 어떻게 청산할 수 있는가? 차이의 긍정성, 때로는 순수한 차이라고 불리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가? 긍정적인 차이에 대한 생각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18

 

인종, 반동적 담론에서 정체성 차이. 이 맥락에서 차이란 이항 대립에 의해 지배되는 가치의 위계질서에 색인된 용어이다. 그것이 전달하는 것은 권력관계와 국가, 지역, 지방 또는 현지 수준에서 배제의 구조적 패턴이다/차이 개념은 유전학자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여러 표지들을 붙인 요즘 만연한 우월주의자들에게 맡기기에 너무나 중요하다. 급진적 비판의 방향으로 의제를 재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19

 

괴물, 돌연변이 또는 혼종과 같은 타자들에 매혹된 지금의 문화는 정체성의 빠른 변형 속도에 대한 깊은 불안감과 사회적 상상계의 빈곤 그리고 진행 중인 변형들에 창조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우리의 무능력을 표현한다./이 책은 차이의 철학과 특히 체현, 내재, 성차, 리좀학, 기억과 지속, 지속 가능성 같은 개념에 의해 영감을 얻어 나 자신이 만든 지그재그의 유목민 트랙을 따라 걷는 것과 같다. 20

 

신체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육화된 유물론 또는 체현된 유물론의 개념을 참조한다. 18세기 이래로 바슐라르, 캉길렘, 푸코, 라캉, 이리가레, 들뢰즈로 이어지는 프랑스의 전통, 즉 유럽 철학의 유물론의 근원으로 눈을 돌렸다. 이들을 섹슈얼리티, 욕망, 성애적 상상계의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는 신체적 유물론학파라고 부른다. 21

 

상상계의 빈곤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인 정신분열증적 양태로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동시에 살아가는 시차증문제로 읽힐 수 있다. 이 틈을 적합한 형상화로 채우는 것이 현재의 가장 큰 도전이다. 그리고 나는 미래를 향한 이보다 더 큰 도전을 생각할 수 없다. 무엇이 적절한 새로운 형상화인가 하는 것은 집단 토론과 대면, 공개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개인 혼자만이 결정할 수 없다. 비판과 담론의 교환이 오늘날 비판 이론의 핵심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22-23

 

주체성은 일정한 흐름 또는 상호연결의 효과이다. 들뢰즈의 되기의 다중 주체들이나 이리가레의 잠재적 여성성과 같은, 차이에 대한 프랑스 철학이 나에게 매력적인 것은 정체성과 권력 문제의 표면에서 멈추지 않고 개념적 근원들과 씨름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23

 

이리가레가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의 특수한 상상계 속에서 다시 형상화해야 하는 잠재적 여성성, 즉 아직 닿은 적 없는 그 원천으로부터 영감을 얻는 반면, 들뢰즈는 되기의 성차화된 과정 측면에서 주체의 심층적인 변형에 모든 희망을 두고 있다. 그런데도 이리가레와 들뢰즈는 권력, 지식, 욕망의 관계에 완전히 모두해 있는 실재로서의 주체의 이미지를 다시 발명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점에서 융합된다. 25

 

되기의 단계는 재생산이나 모방이 아니라 오히려 공감의 근접성과 강렬한 상호연결성이다. 학계 철학자들이 선호하는 선형성과 자기 투명성이라는 언어로 이러한 과정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리가레의 여성적 글쓰기와 달리 되기는 철학적 시험의 수행을 의문시하면서 로고스중심주의의 인력에서 벗어나게 한다. 26

 

나는 비판적 사색가를 판사, 도덕적 중재자 또는 대제사상으로 가정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정합성을 없애는 것으로 여겨지더라도 이원적 체계, 판단적 자세, 과거의 향수에 대한유혹에서 벗어나 활력을 불어넣고 영감을 주는 힘으로 보상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28

 

스타일의 문제는 이 기획에 매우 중요하다. 강도적 양태의 독자로서 우리는 지적 에너지의 변환기이자, 우리가 교환하고 있는 통찰의 중앙처리장치이다./내적 시선은 외부 텍스트 경험의 복합적 방향으로 우리를 추돌시키는 사유에 더 가깝다. 사유는 더 높은 정도, 더 빠른 속도, 다방향적인 방식의 삶이다/독자들은 때때로 인내심을 갖고 정해진 목적지가 없는 여행의 스트레스를 견뎌야 할 것이다. 이 책은 탐험과 위험, 신념과 욕망에 대한 책이다. 왜냐하면 이 시대는 이상한 시기이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9


볕뉘


집안 행사가 있었고, 대전, 오송을 오가는 길 챙겨본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이야기도 지인들과 나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위치지어진 지식, 일리만을 갖고 서로 연결되어 살아간다. 그러니 팔루스로고스 중심주의, 동일한 것을 추앙하는 동일자의 논리가 뱉어낸 것을 샅샅이 들여다봐야 한다. 여성이든, 노인이든, 환자든 병자든, 이주민이든, 난민, 노숙자, 아이, 마녀 괴물이든 그것이 뱉어낸 것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귀환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큰그림을 그리는 이들을 조심해라. 그들이 바로 이원론자이자 환원론자이다. 경계를 허물어 정작 그들에게는 떡 하나 주지 않을 이들이다. 쓸모는 하나도 남기지 못하면서 말이다.


물질과 관념이 아니고, 물질과 기억이다. 그런면에서 차이와 반복은 물질과 기억의 부제이자 들뢰즈의 저작 제목이다. 반복은 끊임없이 달라지는 일획을 긋는 대못이다. 억압되어진 것들은 주검이 되고, 살아돌아온 것들은 상처의 흔적이 있다. 살아낸 것이다. 그(녀)들을 환영하러 나가야 한다. 아픔의 화살을 되맞고 그들이 나의 분신이었다는 걸, 그 아픔이 번져가고 있다는 걸 눈치채야만 한다. 다수자에 갇힌 이상 더 이상 사유할 수 없다. 철옹성에는 공기 한 방울 들어갈 틈이 없다. 그래서 소수자의 상처투성이, 엉망진창이 우리를 이끌고 갈 대기라는 걸 깨달아야만 한다. 각자 다른 답만이 그들을 지켜낼 것이다. 땅을 끌면서 걸어온 피범벅의 삶들만이 구원해낼 수 있으리라. 스스로 바꾸는 자만이 보고느끼고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