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애정하는 작가의 작품이 나온 줄도 몰랐다. 주인공들의 인터뷰들을 라디오방송으로 들었다. <모자무싸>를 정주행하다보니 마지막회를 보고나서 검색하다가 구교환 고윤정인 걸 안다. 격주 주말에 집중해서 <나의 아저씨>까지 본다.
작가가 말한 본 사람, 느낀 사람과 겪은 사람. 작가가 살피는 안쓰러운가, 안아주고 싶은가, 응원하고 싶은가.
작중의 인물들이나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들이 많이 겹친다. 그래서 공감하고 몰입하게 된다. 틈틈이 들었던 인디음악들도 꼭 내 취향들이다. 작가가 <천개의 고원>을 제대로 소화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적절하게 니체와 스피노자에 정통하려 했다는 것도 읽힌다. 하려고 하는 것들과 전하려고 하는 것들이 읽힌다.
<나의 아저씨>는 1화가 80분이다. 그리고 16회까지 장시간이 소요된다. 내내 보
기가 보통 일이 아니다. 혹자는 이를 행복론으로 읽고, <나의 해방일지>를 자유론으로 읽으며 <모자무싸>를 존재론으로도 보는 모양이다. 그렇게도 읽혔으면 좋겠다. 안쓰러운 사람들도 봤으면 좋겠고, 안아주고 싶은 사람들도 보았으면 한다. 응원하고 싶은 사람들도 being과 DOING의 차이를 한번 더 느껴보면 좋겠다싶다.
정희네가 끌어내린 스님은 어찌 되었을까? 겪어 보는 일들, 삶들은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삶들을 살아내는 이들은 대단하다. 상처를 보듬고 매만지려하는 작가의 방법들은 경이롭다. 더 넓고 깊게 매만지고 헤아리는 힘들을 주는 것 같다. 아직도 읽어내야 할 작가의 작품들이 많다.
볕뉘
대본집들을 사보고 싶어졌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