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여성 역시 “무엇‘을 필요로 하는 ’누구‘이고, ’누구‘에 대한 ’무엇‘이기도 하다. 폭력이 없고 이용이 없는 무구한 위치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일방적인 폭력도 일방적인 이용도 불가능하다. 이 불가능성이 공-산을 가능하게 한다.
1장 개와 인간, 기묘한 친척
21 해러웨이가 정체성을 문제시하는 이유는 정체성의 정치는 필연적으로 정체성 바깥의 존재들에 대한 배제를 함축하기 때문이다.
22 목양견인 페퍼가 실내 생활만 해야 했다면 긔의 인간 반려가 아무리 사랑을 쏟더라도 쾌적한 삶이라고는 볼 수 없을 터이다. 그의 인간 반려는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세심하게 살피고 그것을 얻게 해주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23 동물들은 어떻게 하면 인간의 신뢰를 얻는지 재빨리 파악하는 편이다. 인간이 동물의 신뢰를 저버리는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자신들이 동물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일 게다.
25 해러웨이가 제시한 새로운 사이보그는 여성-동물-기계가 융합된 모습이었다. 24 <사이보그 선언>을 불러낸 자들은 반도체공장의 제3세계 여성 노동자, 혹은 대규모 정보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다국적기업과 병원들의 말단 타이피스트 여성들, 혹은 군수산업의 자금 지원과 불가분으로 이미 군산복합체가 되어버린 이공계 대학에서 우수 두뇌로 양성된 여학생들이 그들이다. 25 정보기술에 의해 사이보그라는 형상이 최근에야 가능해지지만 보통의 개는 그 존재자체로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에 문제를 제기하는 형상이다.
29 개는 개다....내가 배우고 싶은 것은 이 공동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방법과 자연문화에 공진화의 결과를 이어받는 방법이다. 30 자연문화는 종과 종의 상호의존성을 말하는 용어이다. / 개와 사람은 첫째로 공진화해온 생물종으로 진화적인 시간을 함께 살아왔다. 두 번째는 얼굴을 마주하는 사이인 개체와 개체의 생존 시간을 함께 산다. 세 번째 층위는 역사적인 시간들이다.
32 반려종. 중요한 타자라는 말 속에는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 없는 현저한 타자성에 대한 인정이 내포되어 있다. 상대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전제되지 않으면 진실한 사랑은 불가능하다./반려종이라는 용어는 생물학적이고, 철학적이고, 물질과 기호가 함께하고, 정신분석학적이자 정치경제학적이라는 4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33 해러웨이에게 반려종이라는 말은 임의적인 기표가 아니라, 밥을 나누고 몸을 나누는 관계를 뜻하는 말의 물질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35 개와 동물과 인간은 우연한 기회에 자연문화에서 새로운 파트너 관계로 창발되었다/ 먹이 섭취의 이득 때문에 야생의 개들은 가능한 한 인간의 서식지 근처 동굴에서 살려 했을 것이고, 심지어 수렵하는 인간을 따라서 먼 거리를 함께 이동하기도 했을 것이다. 강아지의 발달기간이 긴 개과의 동물이 인간을 그들의 베이비시터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들의 번식에 결정적이었다는 연구도 있다. 36 개와 인간 상호간의 면역계의 변화와 충동억제와 관련된 뇌분비 시스템의 변화 또한 수반되었을 것이다. 이는 개와 인간의 공진화의 드라마다./환경은 단지 배경이 아니고, 생명체의 발생과 성장에 함께 엮여 들어간다. 어디까지가 환경정보이고 어디까지가 유전정보인지 그 경계를 정할 수 없다. 진화의 드라마에서 유전자는 함께 하는 여러 플레이어들 중의 하나이지 혼자서 모든 것을 하는 일인극의 주인공이 아니다.
37 순종견과 잡종견. 척도는 미리 존재하는 무엇이 아니고, 척도가 만들어지면서 그 세계도 함께 만들어진다.
45 훈련하기. 행동은 세상 속에서 발견되기 위해 그냥 기다리고 있는 무엇이 아니라, 동물심리학의 역사를 통틀어 인간, 생명체, 그리고 장치를 비롯한 내적으로 작용하는 일련의 플레이어에 의해 종합된 독창성이 있는 구축물이고 생성적인 사실-픽션이다./응답-능력. 그것은 얼굴을 마주하는 접촉지대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심신을 바치는 고통스런 노력을 통해 배양된다. /헌은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독립선언서에 행복추구권을 넣었던 것을 반려동물에게도 적용한다. 46 반려동물의 행복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노력이나 일, 그리고 자신의 잠재성을 실현하는 것을 통해 만족감을 얻는 데 있다고 믿는다./내가 개를 가지고 있다면, 내 개는 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50 동물이 돌아보았을 때 철학자는 응답했는가? 철학이 이름이나 말의 부재를 상실로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는 사유에 도달해야 함을 역설했다. 데리다는 고양이의 응시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다.
62 소화불량의 느낌. 수동화하지 않기. 권력이 약한 자들을 고통받는 피해자로만 위치시키는 것은 그들을 영원한 노예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 많은 지금/여기의 이 세상을 만든 책임을 그들(남성들)에게 떠넘기게 되면, 도덕적인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노예상태를 면하기는 어렵다.
2장 심포이에시스, 혹은 공-산의 사유
69 심포이에시스 sympoiesis는 함께 만들기라는 의미다. 살구버섯이 참나무군락지에 있기 위해서는 그 장소 전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버섯을 채집한다는 것은 버섯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버섯과 버섯의 반려친척들이 함께 있는 그 장소를 만나는 것이다. 해러웨이는 ’실뜨기 string figure‘라는 형상을 제시한다. 한 번은 능동이 되고 한 번은 수동이 되는 패턴 주고받기의 행위들은, 그래서 완전히 능동적인 것도 완전히 수동적인 것도 아니다. 70 상대가 나의 몸을 만들고, 나는 상대의 몸을 만든다/부분성이라 할지라도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모두 같지는 않고, 능동과 수동의 양도 같지 않다. 71 공-산적인 파트너 관계가 중단되지 않고 오랜 세월 이어져 올 수 있었다면, 그들 사이에는 필시 상호 의존을 위한 윤리과 정치가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75 박테리아와 세균의 공-산. 외부자들을 받아들이고, 타자를 감아서 안으로 넣고, 함입시킴으로써 이전보다 더 복잡하고 이종횬효적인 게놈이 되는 것이다...미생물과 그 게놈이라고 하는 타자의 획득은, 단순한 부수적 문제가 아니다. 항구적으로든 주기적으로든 유인, 합동, 융합, 흡입, 공생, 재조합과 같은 각종의 금지된 결합은 다윈의 상실된 변이의 주된 원천에 다름 아니다. 점진적 진화가 진실이라면 중간적 형태의 화석 자료가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이를 상실된 변이라 부른다. 하지만 위의 가설처럼 진화가 서로 다른 가지의 이종혼효적인 결합에 의한 새로운 종의 탄생 사건이라면 ”상실된 변이“ 문제는 저절로 해소되게 된다.
77 모든 실패는 일종의 성공이다. 믹소트리카 파라독사 misotricha paradoxa 저배율 현미경으로 보면 단세포 섬모충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다섯 종의 생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호주 흰개미 내장에 사는 파라독사는 섬유질을 분해한다.
80 공생은 또 다른 자기를 만드는 것인가. 스콧 길버트는 종간후성설 interspecies epigenesis 우리는 개체였던 적이 없다라는 논문에서 해부학, 생리학, 유전학, 진화론, 면역학 그리고 발생학적인 면에서 생물의 경계가 있는 단위들을 반대하는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공생체로서의 생명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다.
82 공-산의 생물학: 인볼루션. <천개의 고원>에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공생적인 진화를 ’인볼루션‘이라 명명하면서 ’이볼루션‘과 구분한다. 84 수컷 곤충이 꽃과 교미를 시작할 때, 꽃임의 구조와 꽃 표면의 잔털들의 움직이는 방향이 중요하다. 꽃들도 잔뜩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꿀벌은 난초들의 화려한 꽃잎과 자태에 매혹되어 위사묘미에 빠져든다. 85 감응의 생태학, 그 속에서는 창의성과 호기심이 인간들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실천자들의 실험적인 모양들을 특징짓는다. 86 생명이 자연선택과 최소에너지 투입의 경제 이외에도 ”놀이, 즐거움, 실험적인 제안과 같은 감응의 생태학“에 의해서도 조절된다면 어떨까를 묻는다. 허스탁과 마이어스.
88 공-산의 예술: 크로셰 산호와 ako. 세계 만들기. 이 프로젝트를 근접성이 없는 친밀이라고 불렀다. 산화에 응답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산호에 대한 감탄과 그들의 죽음에 대한 염려와 분노가 수학자와 시인을 산호에 말려들어가게 했고, 이들이 전 세계의 많은 공예가와 활동가들을 말려들어가게 했고, 그들의 작품들은 전시장을 찾은 많은 관객들을 말려들어가게 했다. 89 여우원숭이학자인 한타니리나 라자미만나와 미술가인 데보라로즈의 협업을 통해 여우원숭이와 마다카스카르 숲 이야기에 관한 그림책 만들기에 돌입한다.
92 공-산의 기하학: 쌍곡선 공간. 공-산의 상대에게 책임을 다하기 위해선 응답-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쌍곡선 공간은 응답-능력을 기를 수 있는 많은 표면을 제공한다.
93 공-산의 인식론: 열린 질문. ”흥미 있는 연구라는 것은 그 연구 대상을 흥미롭게 만드는 조건에 관한 연구“다. 동물. 95 물음을 던진다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다른 사람이 무엇을 흥미로운 것으로 발견하는지를 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발견한 그것>을 이용하게 되는 것이 어떻게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모든 사람을 변화시키는지를 묻는 것이다.
99 죽이지 말라가 감추고 있는 것. <양들의 침묵>의 렉터는 자신의 환자들을 죽이고 요리해서 먹는다. 희생의 대리를 믿지 않는 그의 논리를 이렇다; 나는 동물을 먹는다. 그러므로 인간도 먹는다.
공-산의 윤리: 죽여도 되는 걸로 만들지 말라. 해러웨이는 우리가 제1의 계율로 삼아야 할 것은 죽이지 말라가 아니라 이것이다. 이것은 죽이기를 은폐할 수 없게 한다. 나라산으로 가야하는 69세의 노파 오린과 아들 다츠헤이의 이야기. 104 함께-살기를 위한 죽기와 죽이기는 이것과의 상호적 길들이기를 위해 저것과의 관계를 끊는 것이고, 이 삶을 위해 저 삶을 죽이는 것이지 그 생물종이 죽어 마땅하거나 죽어도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것을 어떤 다른 말로 유화시키지 않고 죽이기라고 말해야 그것의 책임을 함께 불러올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게임 끝“이라는 심판의 호각소리가 아니다. 우리는 더 나은 살기와 죽기의 가능성을 위해 다른 이야기에 열려야 한다. 낙태.
110 고통을 나눈다는 것. 해러웨이는 실험동물을 실험 대상이 아니라 노동하는 주체로 다룰 것을 주장한다. 연구자들이 노동자인 것처럼, 동물도 노동자라면 그리고 그들이 함께 그들의 노동환경을 문제시 할 수 있다면, 실질적인 실험노동환경의 개선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동물계의 맑스가 절실하다.
3장 인류세의 그늘 속에서: 트러블과 함께하기
114 인류세의 그늘. 해러웨이는 인류세라는 용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 용어는 정치적으로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을 지극히 단순화하기 때문이다. 115 해러웨이는 이러한 파괴를 지칭할 수 있는 말은 인류세가 아니라 당연히 자본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116 이러한 파괴의 시대를 지칭하는 이름은 플랜테이션세여야 할 것이다. 117 1945년 이후로 대가속의 시대라 부를 수 있다. 119 인류세란 용어는 지나치게 종말론적이기도 하다. 이런 냉소적인 태도는 냉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력들, 그 협력적인 실천 능력들을 잠식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냉소나 비난이 아니다.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
121 트러블과 함께하기. 트러블과 함께 한다는 의미는 쉬운 해결책을 찾고 그것을 눈앞에서 치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트러블과 마주하면서 지금 당장 가능한 응답을 모색하는 것이다. 트러블과 함께하기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결코 실현되지 않을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가능한 응답들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그것으로부터 응답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122 촉수적인 사유. 땅에 붙박인 자 earth bound 브루노 라투르의 용어는 현재에 임한다는 것의 의미다. 자신이 놓인 무구하지 않은 상황을 감추거나 정당화하지 않으면서,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그 행위에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123 해러웨이는 악의 평범성과 같이 ”여기 무감각한 한 인간이 있었다“라고 쓴다. 아렌트가 ”사유의 무능력“이라고 분석했던 것을 ”감각의 무능력“과 연결한다./ 지금은 전례 없는 눈길 회피의 시대라 부를 수 있다. 경쟁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감각하기를 거부하는 시대, 무감각의 시대다. 정해진 대로만 감각한다. 124 해러웨이가 주목하는 감각기관은 촉수다. 신체외 직접 연결되는 감각기관이다. 촉각적인 느낌은 상대를 대상화하지 않고 합일로 이끌어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영어의 촉스 tentacle은 더듬다 시도하다이다. 해러웨이가 촉수적인 사유라 부르는 것에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은 피모아 쑬루라는 이름을 가진 한 마리의 거미다. 이 거미는 여덟 개의 긴 다리를 촉수로 가지고 있다. 촉수는 외부로 뻗고, 어떤 상대를 자신과 연결한다. 125 헤러웨이를 포함한 페미니스트 인식론자들은 중립성과 보편성을 무기로 가진 과학도 사실은 특정한 상황 속의 인식임을 주장해왔다. 가장 객관적인 인식은 중립성을 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식이 처한 상황을 드러내는 것임을 주장한다. 촉수적인 사유는 이를 위한 형상이다.
129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 여성들만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생명/비생명들과 친척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는 자식을 낳는 결혼제도에 트러블을 불러일으킨다. 프렌치블도그.
132 쑬루세: 피난처를 회복하기. 레퓨지아. 생물의 다양성이 풍성하게 유지될 수 있는 곳. 피난처를 복구하는 것은 복수종의 상호 의존적인 연결 관계들을 회복하는 일이지, 무턱대고 자연보호구역을 설정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의 파괴적인 사태는 너무 많은 인간의 수와 생물종의 재배치, 그리고 자본의 탐욕적인 활동들이 복수종 생물들의 상화 의존적인 관계들을 체계적으로 파괴한 결과다. 따라서 파괴된 관계를 복원하려는 노력 없이 깃ㄹ적인 해법이나 시장 기반의 정책들로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133 쑬수라는 말은 좀 전 말한 거미에게서 왔다. 해러웨이는 촉수적인 연결성을 회복하는 것만이 공-산의 존재들이 다시 번성할 희망이라고 믿는다. 소설 속의 크툴루들은 여성혐오주의자이자 인종주의자들인 괴물들이다. 134 크툴루의 그리스 어원은 쏘닉chthonic으로 땅 밑의 수많은 존재자들을 뜻한다. 그툴루 대신 쏘닉으로부터 쑬루라고 다시 작명을 한다. 쑬루세 chthulecene의 접미사 cene은 타이노스에서 왔다. 카이노스는 지금 혹은 시작을 뜻하는 말이다. 135 카이노스는 기억들로 가득하고, 도래할 것들로 가득하다. 카이노스라는 말을, 모든 종류의 시간성과 물질성이 균사에 의해 주입되는 두꺼운, 진행 중의 현존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이때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린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이자 도래할 미래다. 우리는 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두꺼운 현재‘를 산다.
기억. 애도. 142 복구를 위한 SF-카밀 이야기. 퇴비공동체의 사람들이 주인공인 카밀이다. 1세대에서 5세대까지 100명의 어린이를 포함하여 4가지 젠더를 가진 200명의 성인으로 구성된 집단이다. 143 왕나비의 유전자가 이식된 공동체다. 4세대에 걸친 대장정. 박주가리에 알을 슬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45 쓰로트의 노래 가수 타나타가크. 2014년 애니미즘 앨범으로 폴라리스 음악상을 받았다.
4장 사이보그, 혹은 집적회로 속의 여성들
158 모독. 해러웨이는 비판을 위해 아이러니와 유머를 사용한다. 아이러니와 유머는 웃음이지만 도덕법칙을 전복시키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차이와 반복>에서 들뢰즈는 아이러니가 원리들로 향하는 상승의 길을 택하면서도 도덕법칙을 전복시키는 것이라면, 유머는 과도할 정도의 세심함을 기울인 복종을 통해 하강의 길을 택하면서 그렇게 한다. 159 아이러니는 변증술을 통한다 해도 더 큰 전체 속으로 용해되어 들어가지 못하는 모순에 관한 것이며, 양립될 수 없는 것들이 둘 다 혹은 전부 필요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함께 주장하는 긴장에 관한 것이다. 아이러니는 유머와 심각한 유희에 관한 것이다. 아이러니는 또한 수사학적 전략이고, 정치적인 방법이며, 내가 사회주의페미니즘 내에서 더 존경되기를 바라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의 아이러니컬한 믿음, 즉 나의 모독의 중심에는 사이보그의 이미지가 있다.
161 아이러니,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집적회로 속의 여성들의 최종적인 아이러니는 이들이 어머니 자연의 딸임과 동시에 군산복합체가 낳은 사생아라는 점이다. ..카타고리를 지키기 위해 그들이 잡종을 다루는 방식은, 희생자의 논리로 정화해서 카테고리로 다시 복원시키거나, 배신자의 논리로 부정하여 카테고리에서 축출하거나이다.
163 불안하게 활발한 20세기말의 기계들. 발생된 전기신호의 패턴은 그것을 실어 나르는 기계에서 발생하는 잡음에 의해 변형되고, 심지어 인위적인 변조를 거치지 않으면 전달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명령은 에너지 양으로 조절되는 것에서 신호의 패턴으로 형태가 바뀌었고, 신호패턴의 원형보존은 불가능해졌다. 164 사이버네틱스 이론의 정보시스템에 따라 유기체와 기계 사이의 전통적 위계가 위험해진다. 이것이 해러웨이가 사이보그를 주목한 이유다.
165 집적회로 속의 여성들, 테크노사이언스의 유머. 사이보그는 서양 창조신화의 되풀이다. 신이 전능한 능력으로 그 자신과 닮은 인간 남성을 만든 것처럼, 남성은 여성 없이 전능한 과학의 힘으로 자기 자신을 거듭 완성해나간다. 우주전사 사이보고는 위대한 남성의 창조물이자 그들 자신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168 우리들은 다르다. 맥키넌. 여성과 남성간의 관계들이 사회를 창조하듯이 성욕은 우리가 여성과 남성으로아는 그 사회적 존재들을 창조한다...타자의 사용을 위해 일부 사람들의 성욕을 조직적으로 몰수하는 것이 성, 즉 여성을 정의한다. 169 그가 욕망의 대상인 한 그의 존재는 남성의 성적 전용에 빚져서야 겨우 존재하게 된다. 그는 있으되 존재하지 않는 자, 비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해러웨이는 자신의 욕망마저 빼앗겨버린 자가 어떻게 해방의 주체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170 집창촌의 여성들은 페미니스트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우리는 여성이 아닌가요. 우리는 노동자가 아닌가요./비가시적이었던 여성의 임신, 출산, 돌봄 모동을 긍정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여성의 가사노동은 특권화된다. 그래서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이성애를 당연시 여겼고, 가사노동과 재생산 노동을 여성의 진정한 일로 간주하는 귀결을 낳았다. 사회주의페미니즘 역시 여성들 사이의 문화적이고 경제적이고 인종적인 차이들을 삭제해버리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171 우리들은 우리들의 장소가 어떤 하나의 특정한 차이에 대한 보장이라기보다, 바로 그 차이의 집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172 미분적 의식. 해러웨이의 문제의식은 우리를 어떤 정체성으로 가두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페미니스트 정치를 개념화할 것인가에 있었다. 173 미국 내 정치 운동권에서 제3세계 출신의 여성운동가들이 대체로 조직에 충성심이 없고, 배신을 잘하고, 이리저리 잘 옮겨 다닌다고 평가되는 것에 주목했다. 174 제3세계 여성들으 끊임없는 유동성은 비난받아야 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멈추지 않는 이들 여성 정치운동의 역동성을 의미한다. 미분적인 의식은 , 정체성에 기반하는 대항의식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대항의식을 만들어내는 제3세계 페미니스트들의 능력이다. 이런 차이들은 오히려 의식적인 제휴나 연대, 정치적 혈연관계에 입각해서 행동할 수 있는 자기 의식적인 공간을 설계하게 한다. 175 품위와 유연성과 능력을 요구한다. 다른 자들과 동맹을 인정하기에 충분한 품위. 정치투쟁에서 선명한 우리를 구성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다층적인 억압의 구조에 있는 자들은 어떤 우리로도 환원될 수 없기에, 어떻게 호명이 되더라도 매번 그것에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능력이 요구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일 것이다. 176 코요테의 교활함. 흑인-여성-레즈비언-노동자을 소수성으로 정체화하는 것은 약점에 몰두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여성으로, 어떤 때는 흑인으로, 또 어떤 때는 노동자로 또 어떤 때는 성소수자로 정치적 연대의 조건에 맞게 수많은 우리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78 현실적 생존을 위해 사이보그를. 지배체제는 더욱 촘촘하게 더욱 지능적으로 변했다. 사회주의의 오류는 자연이 미리 주어져 있는 것으로, 테크노사이언스를 진보의 당연한 귀결로 간주한 데 있었다. 181 지배의 정보 과학 체제로 바뀐 권력의 그물망을 읽어내고, 그곳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문제는 이것을 통해 새로운 짝짓기, 새로운 제휴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임무는 생존하는 것이다.
184 포스트휴먼 시대의 사이보그. 해러웨이는 사이보그를 반려종의 카테고리에 포함시킨다. 사이보그는 극히 최근의 그물망에서 형성된 반려종의 가장 어린 친족이다. 자율자동차 속에는 비가시화된 인간들이 사이보그로 결합되어 있고, 그 속에서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기도 하다. 반려종이 된다는 것은 이 무구하지 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이 관계들을 가능한 덜 폭력적으로 덜 지배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불사의 포스트휴먼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퇴비compost가 되어야 한다.
5장 페미니스트 인식론
190 과학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딜레마.
194 과학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급진적인 구성주의.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이 제공한 틀 속에서 자연을 우겨넣을 수 있다는 믿음을 좀처럼 버리지 않는 자들이다. 쿤의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과학적 지식도 다른 지식들처럼 일종의 집단적 신념 체계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195 구성주의자의 일부 분파인 급진적 구성주의자들은 모든 과학지식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일 뿐, 실체적인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객관성의 문제는 언제나 이미 부재하는 지시물, 지연된 기의들, 분열된 주체들, 기표들의 끝없는 유희에 의해 해결되었다. 196 진리에 대한 포스트모더지즘의 이러한 해결책은 과학의 특권적인 진리 주장을 해체하는 데 훌륭한 자원이 되기도 했지만, 수많은 논의들 모두를 상대주의로 밀어 넣었다.
197 여성의 위치가 더 나은 지식을 만든다: 비판적 페미니스트 경험론. 나쁜 과학만 문제시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방법론과 규범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았다. 198 아기를 임신하고 양육하는 경험을 가진 여성은 사물과 자신의 통합적인 연결을 체득한다. 여성에게 사물은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여성의 인식 위치는 프롤레타리아 남성의 인식 위치보다 덜 편파적이다. 추상적 남성성과 관계적 여성성.
200 은유를 바꿀 시간: 과학은 여전히 필요하다. 해러웨이는 급진적 구성주의, 비판적 경험주의 시도들이 여전히 이분법적인 구도에 갇혀 있음을 비판한다. 전자는 단 하나의 진실한 이야기가 없으므로 모든 지식 주장들은 거짓 또는 모두 진실이라는 것이고, 후자는 여성의 위치에서만 단 하나의 진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기름 발린 막대기. 지식은 ”사물들에 관한 시행 가능하고 믿을 만한 설명들“이지 단 하나의 진실한 이야기가 아니다. 201 우리는 의미와 몸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가능성을 가진 의미와 몸속에 살기 위해, 의미와 몸이 만들어지는 방법에 대한 근대 비판 이론들의 권력이 필요하다./과학은 사물에 대한 번역, 전환 가능성, 의미의 이동성, 그리고 보편성의 추구에 관한 것이다./페미니스트들이 싸워야 할 것은 지식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이러한 환원주의다. 202 우리는 부분적으로 공유될 수 있는 세계이며, 한정적인 자유, 적절한 물질적인 풍요, 고통에 대한 겸손한 의미, 제한된 행복 등의 전 지구적 프로젝트에 친근한 세계를 위한 과학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202 시력vision의 재주장. 농맹아. 시력은 이항대립을 피하기에 좋을 수 있다. 나는 모든 시력의 체현적 성질을 주장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모든 낙인찍힌 몸으로부터 어디에도 없는 곳에서 바라보는 정복적인 시선으로의 도약을 의미화하는데 사용되어온 감각 체계를 재주장하기를 원한다. 203 시력의 체현적 성질. 보는 주체, 보는 목적이 없는 시력은 가능하지 않다. 보일의 진공과 새의 죽음. 204 실험과학에 의해 시력은 특권적인 권위를 획득한다./페미니스트 인식론자들은 시력의 속임수를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자연을 자원으로, 토착민을 미개인으로, 흑인을 노예로 마음대로 낙인을 찍어대던 그 시선은 신을 가장한 정복적인 서양인의 것이었다. 205 신을 흉내 내는 속임수. 시력은 이항대립을 피하기에 좋을 수도 있다. 인간의눈이라는 시각 장비는 가시광선을 통해 보지만, 적외선 카메라는 열을 통해서 보고, 전자현미경은 음극선이라는 아주 짧은 파장의 전자파를 통해서 본다. 이처럼 본다는 행위는 적어도 2자 관계는 아니고, 보는 주체와 대상 사이에 시각 장비들이 개입되어 있는 다자 관계의 일이다. 206 이론적, 정치적 스캐너들에 대물렌즈를 장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209 체현적 객관성: 부분적 시각의 특권. 종속된 자의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정치적인 올바름이라는 면에서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종속된 자의 위치는 하나가 아니고, 모든 종속된 위치에 근본이 되거나 그것들을 모두 포괄하는 단 하나의 종속된 위치에 근본이 되거나 그것들을 모두 포괄하는 단 하나의 종속된 위치가 있지도 않다. 누구도 이 모든 위치에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종속된 자라는 이유로 그의 인식 위치를 특권화한다면, 그렇게 해서는 세포도 분자도 될 수 없다. 혹은 여자도, 피식민자도, 노동자 등도 될 수 없다. 소수자의 위치에서 보는 문제는 매우 필요한 일이지만 그 위치를 잘 다루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과 상당한 솜씨가 필요하다./페미니스트의 객관성은 인식자가 그 대상을 인식 법정으로 불러내어서 자백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을 초월한 통합된 전체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니다. ”오직 부분적인 시각만이 객관적인 시력을 약속한다.“
210 인식 행위는 무구하지 않다. 인식 행위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상이한 권력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다. 인식행위에서 윤리가 요구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211 과학의 윤리와 책임은 그 어떤 인식 행위도 무구할 수 없음을 아는데서 온다. 과학의 행위, 혹은 과학자의 행위가 자연의 비밀을 향한, 혹은 앎을 향한 무구한 열망이라고 순진하게 이해되면, 책임 있는 과학을 할 수 없다. 과학자들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피터 팬이 되어서는 안된다. 212 번역은 언제나 해석적이고, 비판적이고, 부분적이다. 여기에 대화, 합리성, 객관성의 근거가 있다. 객관성은 권력에 민감한, 보복적이지 않은 대화다.
6장 보일의 실험실과 테크노사이언스
218 테크노사이언스. 갈릴레오가 헛것을 봤을 리가 없다. 그러나 시연에 참여한 학자들은 갈릴레오가 목성의 위성이라고 확신하는 상을 망원경이 만든 왜상이라고 보았다. 219 과학 실험을 통해 사물의 객관적 성질을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갈릴레오가 실험 시연을 할 당시만 해도 자명하지 않았다.
221 리바이어던과 공기펌프. 과학과 정치의 경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느냐? 홉스와 보일, 이 두 사람은 철저한 합리주의자들로 기계론을 지지하고 있으며, 군주와 의회를 원했고 교회의 권력이 너무 강하지 않기를 원했다. 하지만 공기펌프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라는 점에서 첨예하게 갈라졌다. 홉스는 시민의 평화를 위해서는 정치적인 통일체를 구성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벌거벗은 시민들은 한날한시에 모든 권한을 주권자에게 양도하기로 서명한다. 그 주권자의 이름은 리바이어던이고, 홉스에게 그것은 공화국 자체다. 이 주권자는 시민들을 대리하고 그 계약 외에는 어떤 초월적인 것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 223 실험 장치는 공기펌프 진공관 속의 깃털이었다. 공기를 빼내자, 진공관 안의 깃털은 움직이지 않았다. 에테를 바람은 없다. 홉스는 진공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런 거대한 기획 때문이다.
225 문화 없는 문화의 겸손한 목격자. 그의 공기펌프 실험 시연에는 물질적 기술, 문학적 기술, 그리고 사회적 기술이 응집되어 있었다. 실험실이라는 장소가 진리를 생산하는 곳이 되기 위해선 세 가지 기술 외에도 추가적으로 요구되는 조건들이 있었다. 홉스가 사적인 공간일 뿐이라고 했던 그 실험실을 최대한 공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232 새롭게 형성된 젠더. 보일의 실험실에서 겸손한 목격자라는 주체 위치는 보일만이 아니었다. 공기펌프는 말할 것도 없고, 새의 질식에 항의하는 여성들, 열심히 실험 보조를 하던 여성과 남성 하인들, 시도 때도 없이 말썽을 일으키는 공기펌프를 매번 다시 조정해야 했던 공기펌프 기술자들, 공기가 빠진 진공관에서 죽은 새들, 토리첼리의 수은이 채워진 기압계는 모두 겸손함이 요구되는 목격자들이다. 보일의 실험 실천은 이 더듬거리는 목격자들을 하나의 주체 위치로 결속시킴으로써 가능했다. 하지만 그 실험이 지식으로서 권위를 획득하기 위해서 보일은 단 한명의 겸손한 목격자만을 남기고 모두 삭제했다. 요컨대 근대 과학의 객관성의 설화는 단 한 명, 과학의 저자를 제외한 그 많은 목격자들을 부인함으로써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은 과학의 현장에서 배제된 것이 아니라 부인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일이 발명한 재현의 권력과 홉스가 발명한 벌거벗은 시민들의 대리 권력은 정확히 대칭적이다.
233 증식하는 목격자들. 한쪽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더 위대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다른 한쪽은 인간이라는 주체 위치를 어떻게 허물 수 있을까를 고심한다. 그런데 근대성에 대한 해러웨이의 비판적 분석은 이와 다르다. 그가 보일의 실험실에서 포착하는 것은 보일만이 아닌 수많은 목격자들의 증식과 기존의 젠더를 위태롭게 만들면서 등장한 여성 같은 남성이라는 이상한 존재자들의 증식이었다.234 근대성 극복의 기획은 부인되었던 것을 가시화시키는 것이다. 주체들과 행위자들의 열림이고, 외눈 거인인 주인 주체의 포만적인 눈이라는 유리한 위치로부터는 상상할 수 없는 설화들의 열림이어야 한다. 그래서 해러웨이는 실험실의 수많은 겸손한 목격자들을 주체 위치로 호명해낸다. interpellation 235 이봐, 거기 당신! 모든 응답이 같지 않다. 자기 자신에 관한 인식과 오인에 따라 응답은 다를 것이고, 그것에 따라 이데올로기에 의해 호명되는 주체 위치의 의미도 달라진다.
236 구축자 중심의 스토리와 양파 알레르기. 수잔 리이 스타는 자신의 양파 알레르기 경험을 토대로 라투르의 ANT 구축자 중심주의를 비판했다. 방해꾼을 잡아내지 못한다. 238그 후로 라투르의 정치적 은유가 전쟁에서 점차 실험적 민주주의로 바뀌긴 한다. 양파 알레르기는 의외의 목격자가 구축자 중심주의를 방해하는 은유다. 방해를 통해, 혹은 가던 길을 방해하는 새로운 호명을 통해, 주인공이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프로젝트 자체가 바뀌기도 할 것이다. 단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흥미진진하고, 때로 두렵기도 한 수많은 이야기들이다.
240 겸손한 목격자들의 ”편들기“ 과학은 과학 공동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지식에 영향을 받는 사회의 문제다. 그러므로 어떤 지식을 믿을 만한 지식으로 간주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연구 과정을 형성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가치가 체계적으로 조사되어야 한다./모두를 위한 지식은 없다. 우리는 자본가 편에 설 것인지, 양파 알레르기가 있는 스타의 편에 설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위치 선정은 항상 편파적이고, 항상 유한하며, 항상 전경과 배경,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위험한 장난으로 비판적 의문을 구성한다. 241 모든 지식은 어떤 위치에서의 지식이고, 누군가를 위한 지식이다. 누구의 편을 들것인가는 항상 논쟁적인 것이고, 순진한 것이 아니고, 쉽게 정당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같은 지식을 주장할지라도 그것이 편들기임을 감추지 않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차이는 크다.
7장 괴물의 약속
246 가공주의와 생산주의. 자연은 엄밀히 말해서 일상사이다. 인간이든 아니든 물질-기호론적 행위자들 사이의 상호 작용 속에서 초래된, 종잡을 수 없는 강력한 구축이다. 그런 실체들을 목격하는 것은 상호적이고 언제나 불평등한 구조화하기, 모험하기, 능력을 위임하기이다. 247 해러웨이가 보기에 사람도 사물도 모두 행위자다. 시아노박테리아는 햇빛을 이용하여 물에서 수소를 떼어내고, 그것을 자신의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존재였다. 이 시아노박테리아의 일상사가 지구의 모습을 바꾸었다. 이것이 자연은 일상사이고, 인간이든 아니든 물질-기호론적 행위자들 사이의 상호 작용 속에서 초래된, 종잡을 수 없는 강력한 구축이라는 의미다. 자연이라 부르는 모든 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구축 중에 있는 존재다. 이를 가공주의라고 부른다. 이는 인간만을 유일한 구축자로 여기는 생산주의와 구별되는 용어다. 249 맑스의 공산주의는 인간만의 공산주의가 아니라 만물의 공산주의임을 이끌어낼 수 있다. 지구는 복수종의 테라폴리스다.
251 기호론적 4분면. 1사분면 지구, 2사분면 외부 공간, 지구바깥, 3사분면에는 내부 공간으로 생물의학적인 신체, 4사분면에는 가상인 SF를 배치한다. 252 해러웨이가 사용하는 비유 역시 잉태다. 이 잉태는 여신의 잉태가 아니라, 괴물의 잉태다. 낳는 자는 여신이 아니라 괴물이다. 그곳은 화해와 공존, 이해와 평화가 넘치는 파라다이스가 아니다. 그곳은 오히려 그런 말들이 허구임을 보이는 장소이고, 불평등한 권력과 끝나지 않은 논쟁이 벌어지는 뒤죽박죽, 시끄러운 곳이다.
자연 없는 자연. 정의의 생태학. 대리의 정치와 절합의 정치. 절합의 정치 articulate는 또박또박 발음된, 관절로 연결된, 분절적인이라는 뜻이 있다. 그것은 다른 것과 구분되지만 또한 관절로 연결되어 있다. 숲 사람들은 대리의 정치를 거부하고 절합의 정치를 요구했다. 숨 사람들의 요구는 분명하다. 그들은 자신들을 숲의 파트너로 인정하라고 요구했고, 숲과 연결된 자신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다. 그들은 숲에서의 삶과 무관한 전문가적인 해법을 거부하고 그들 자신들의 ”상황 속의 지식“을 주장한다. 259 이런 절합의 정치에서 숲의 다른 행위자들, 가령 재규어를 걱정하는 북미인들이나 비토착민 환경전문가들도 배제되지 않는다. 그들도 포함된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대리가 아닌 방식으로 재정의 되어야 할 것이고, 토착민 전문가도 그의 경험적인 지식으로 참여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대리의 정치에 비해, 힘의 강도나 패턴은 확실히 다를 것이다. 물론 이것으로 최종의 해결책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방식의 절합이든지 그것은 논쟁적이다.
262 하나의 작은 발걸음과 내 어머니를 사랑하라. 차이를 분열의 이유로 삼지 않고 퀴어한 연대의 힘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미분적인 정치가 필요하다.
265 생물의학적 신체. 면역계는 내부 환경과 외부 환경의 위험한 균형 속에서 구성된다. 자기와 비자기는 분명하지 않고, 애매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순조롭게 바이러스와 세균을 방어한다. 자가 면역 질환들.
266 힘을 펼치기 위한 aids연대. 군사주의와 다른 방식의 새로운 ’몸 생산‘에 주목한다. 에댄이 규약을 강요하는 것으로는 에이즈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273 가상.엔터키를 눌러라. <사이보그> SF는 세계들과 적극적으로 관계 맺도록 자극한다. 나는 그것들을 다르게 움직이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그들의 절합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보도록 자극한다. 274 다시 쓰기의 관건은 어떻게 하면 다르게 움직이도록 할 것인가에 있을 것이다.
8장 글쓰기와 이야기하기
283 여성적 글쓰기. 식수가 보기에 여성의 성이 남성의 상징체계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타자에 대한 수용성은 타자를 자신 속에 품고 있는 모성에 대한 은유다. 타자를 자신 바깥의 어떤 것이 아니라 자신과 연결된 것, 혹은 자신의 소중한 일부로 여기는 글쓰기는 이분법의 경계에 도전한다. 284 여성이 남성의 것을 날면서-훔치면서 살아왔음을 상기시키면서 남성이 움켜쥔 의미화의 권력을 훔치고 재의미화할 것을 주장한다.
286 사이보그 글쓰기. 살아남기 위한 권력에 관한 것이다. 이는 원초적인 순진무구함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타자로 낙인찍은 세계를 낙인찍기 위해서 도구들을 움켜쥐는 데 기초를 둔다. 287 버지니아 울프 <3기니> 생각하세요. 우리는 생각해야만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생각해야만 한다. 소중한 1기니를 헛되게 쓰지 않고, 지금과 다른 세계를 만드는 데 쓰기 위해서 우리는 생각해야만 한다. 288 생각한다는 것은 가보지 않은 길의 위험과 도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이미 정해져 있는 길을 가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니다.
288 SF. 과학소설, 사변적 페미니즘, 과학 판타지, 사변적 우화, 과학적 사실, 그리고 또한 실뜨기를 위한 기호이다. 289 사실이라는 말은 이미 이루어진 일을 가리키는 과거분사인 반면, 픽션이라는 말은 체 하는 것, 가장하는 것, 잘 성형하고 잘 발명하는 행위로 현재분사다. 테크노 사이언스를 SF로 만드는 것은 말씀을 이야기로 바꾸는 것이다. 이야기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무엇이 진행 중인가에 집중한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자신의 가설이 현실의 경험과 충돌했지만 그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야기 덕분에 과학은 더욱 풍성해지고 흥미진진해졌고, 심지어 발전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291 실뜨기의 중요 규칙은 자신의 순서를 건너뛸 수 없다는 것, 번갈아 한다는 것, 상대가 패턴을 만들 때 가만히 있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292 이야기하기를 통해 일상은 불평등한 권력의 공간이고 누구도 권력적인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인다. 그럼에도 삶이 무간지옥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던 것은 그 권력 관계를 출렁이게 하는 치열한 정치와 더 나은 관계를 만들려는 윤리적인 실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93 두꺼운 현재. SO FAR 두꺼운 현재는 우리가 살고 죽어온 지금까지의 이야기다. 295 지금까지의 살고 죽기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고, 그것은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잠재적인 힘이다. 과거 이야기는 하나가 아니고, 완결된 것도 아니다. 살고 죽기를 이어온 많은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전하는 것으로보터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296 캐리어백 이론. 르 귄의 에세이. 어떻게 삶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영웅 이야기 속으로 짜부라져 버리는지를 이야기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영웅주의를 보툴리눔 식중독이라고 했다.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이다. 르귄은 이를 슬쩍 메타플라즘해서 병이 영웅이 된다면 어떨까 묻는다.298 일상의 삶에서는 길쭉한 것보다 오목한 것들이 더 쓸모가 있다. 가방 속에 담긴 씨앗 한 줌, 물 한 모금이 새로운 연결을 만든다. 별 중요하지도 않을 것 같은 이런 사소한 것들이 세계를 만든다. 이야기하지는 중요하지만 영웅 일색의 이야기에서 자질구레한 것들이 가득 든 캐리어백 이야기로 바꾸어야 한다.
300-303 종결되지 않는 이야기. 트러블과 함께하기는 이야기들이 치워지는 것에 저항하고, 그 이야기 속에 남아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다.
볕뉘.
그어져 있던 밑줄을 옮겨 타이핑하다. 이틀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