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세르과 루크레티우스를 번갈아 읽고 있다. 첫 독서의 찬란함을 잊을 수 없어, 각주까지 꼼꼼하게 챙기고 있다.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를 설렁설렁 읽고 그어둔 밑줄은 권당 말미에 조금뿐이다. 이런 흔적들을 새삼스럽게 다시 읽어내야한다는 깨달음이 미셸세르의 작품때문이기도 하다. 빗나감, 클리나멘. 어긋남. 폭포의 사유, 팽이의 사유, 난류의 사유, 만물은 대양과 같다는 지평의 확대와 연결이 필요하다는 새삼스러움 말이다.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의 완결적이 구조와 종합적인 시야는 좁혀질 수가 없었다. 다시 읽는 동안, 별이 아니라 별자리들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음을 알 수 있게된다. 스피노자가 이미 겹치고, 이 사유를 바탕으로 이미 무한의 접근이 가능했다는 사실에서는 아연해지게 된다. <1417년, 근대의 탄생>은 이 책,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가 발견된 해이기도 하다. 마키아벨리가 필사를 한 책이기도 하고, 다빈치는 물론 르네상스인들이 또 다른 하늘을 만들어 낸 계기가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미적분학은 이미 있었다.


미셸세르는 루크레티우스 못지 않게 저작에서 엇비슷한 비중으로 아르키메데스를 불러낸다. 동역학, 떠있는 물체에서 사유(부력)이나 회전하면서 움직이는 사유(팽이), 폭포의 사소한 어긋남으로 출발하는 사유는 우리가 물리학에서 기초 모델로 삼는 진자나 당구공이 아니다. 그래서 아르키메데스의 저작의 구조가 이런 종합적 사유를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아쉽게도 국내 번역본은 없는 듯싶다. 아래 수소문하여 읽고 있는 책들에서 아쉬움을 달랠 수는 있다.


1998년 양피지 고서에 적혀있는 아르키메데스의 <방법>이라는 글은 200만불에 경매로 낙찰되었고, 최근 입자가속기로 그 글들을 완벽하게 볼 수 있게되었다 한다. 몇 권을 읽으면서도 방법론은 마르크스의 변증법, 아니 마르크스의 박사논문이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인데 분명 여기서 배웠음이 틀림없는 듯하다. (클리나멘, 어긋남이 포인트다.)


이렇게 다시읽기를 통해, 지금의 신유물론의 사유가, 브루노라투르가 미셸세르에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에피쿠로스의 저작의 대부분은 남아있지 않다. 아르키메데스처럼 현실에 존재하면 어떨까 싶다. 이런 사실은 디오게네스의 책 마지막 편에 남겨져 있다.


볕뉘


 미셸세르, 캉길렘, 바슐라르로 이어지는 과학철학, 과학비평, 과학사에 진도를 더 나가고 싶어진다. 출발한 이분법의 틀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란 문제의식을 쫓다보니 서서히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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