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보다 이미지가 더 강력하게 움직이는 근거를 제공한다. 이러한 유격은 사실과 욕망의 차이, 현실의 사이를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시야는 늘 안개처럼 혼미하며, 가리고, 신뢰를 두는 것은 언제나 이미지일 수 있다. 영상의 과잉은 현상에 대한 재고의 여지를 없앤다는 측면에서 위험하다. 문자의 간극은 그래도 균형점을 주는 것인데도...
"세계인구의 약 1/6이 기아선상에 있고, 그 기아선상에 있는 나라들의 대부분, 경작가능지가 사막화되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는 사실앞에 서면, "아프리카에서 1970년대 이후 43차례의 전쟁으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 일이다. 자본의 증식 속도만큼 반대편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2.
이렇게 사실이 아픔으로 마음에 들어온다면, 우리는 너무도 익숙한 방법으로 토해내는 것은 아닐까? 의무감으로 단체에 가입하거나, 일반적인 생활패턴의 변화로 고기를 줄이고, 커피를 줄이고, 소비자로서 구매자로서 역할을 개인의 차원에서 고려해보는 일, 바꾸어가는 일. 하지만 단체에 가입하여 지원하는 경로까지에 대해, 그 한계에 대해서도 마음을 주는 것일까? 고기를 줄이는 일로 대의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조감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커피를 줄이고 또 다른 일을 하는 것에 그만큼 다른 곡절이 나타난다면 어이할 것인가?
아픔이 개인적인 수준의 앎이나 양심을 어루만지는 일로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남보다 낫다고 하는 양심의 우위도 보잘 것 없을지도 모른다. 개인의 차원으로 환원하는 일은 대단한 시작이면서도 나머지에 대한 사고를 더 이상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아닐까? 제도나 시스템의 차이, 여러가지 도덕, 의무의 아이러니를 가져오는 상황에 다시 어쩔 줄 모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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