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앎은 상대에게 터뜨리는 폭탄이 아니라 공감이다. 가르치려하지 말고 지식과 정보가 가는 길을 상대의 입장에서 골고루 꾸며두라. 그 꽃길을 사뿐히 걷도록.
가진 것(지식-능력)을 위해서 투하하지 말고, 서서히 골고루 차오르고 스며들어야 한다.
투(하)입은 불순하기까지 하다. 공급자와 수요자를 가른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를 형성해 서열을 만든다. 그 힘에 줄을 서게 만든다. 힘바라기가 생긴다. 부수적으로 생긴 제도와 힘을 지식-정보에 덧붙여 써먹으려는 욕심. 그 욕심으로 관계를 맺으려 하고 조율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식과 정보란 몸이 운신하기 위해 걸리는 관계에 대한 윤리와 책임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덧붙여 지식, 앎이라는 것도 가져가는 사람의 몫, 바탕만큼만 자라난다. 받으려고 하는 만큼, 마음에 가져가는 만큼만이다. 그래서 무차별적이어서는 더욱 되지 않는다..
지식과 정보를 주는 습속이, 아니 받는 습속과 함께 느끼지 못하는 사이 당신의 무의식을 점령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이런 과정이 몸에 배이게 되면 지식-정보가 자신을 거슬러가는 것도 비껴가는 것도 초조하다. 불안하다. 자신이란 필터를 통해가지 않는다면 더욱 더 그러할 것이다. 각기 다른 씨앗은 다양하게 열매맺고 크고 풍부해지는 것이 아니라, 배급소란 블랙박스를 거쳐야 하기에 힘들고 곤란해진다. 병목지점이 생긴다. 의지와 상관없이 지식의 화살은 날라다니고 있다. 조직과 지식-정보의 왜곡된 관계로 일그러진다. 조직과 개인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그런이유로 지식-정보의 사회화 과정은 일상에서 눈여겨 봐야한다, 걸린 덫에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 폭력에 대한 끊임없는 유혹을 뿌리치기도 쉽지 않다. 지식-정보라는 것이 앎의 과정이 아니라 삶의 과정으로 가져가야 하는 습관의 문제이기도 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