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약 직
- KTX 여승무원이 되고 나서
김명환
KTX 여승무원이 되고 나서/나는 껌을 씹지 않는다/컵라면도 통조림도 먹지 않는다/봉지 커피도 티백 보리차도/드링크도 탄산음료도 마시지 않는다/물티슈도 네프킨도 종이컵도/나무젓가락도 볼펜도 쓰지 않는다
눈이 하얗게 내리던/크리스마스 이브/아스테이지에 돌돌 말려/빨간 리본을 단/장미 한 송이 받아들고/나는 울었다/내가 불쌍해서/한번 쓰고 버려지는 것들이/가여워서/눈물이 났다
제복을 입고 스카프를 두르면/어는 삐에로의 천진난만한 웃음보다/따뜻하고 화사하게 웃어야 했지만/웃으면 웃을수록/자꾸 자꾸 눈물이 났다
사는 것이/먹고 사는 것이/힘든 줄은 알았지만/이렇게 구차하고 비굴하고/가슴이 미어질 줄은 몰랐다
KTX 여승무원이 되고서야 나는/이 세상이/한번 쓰고 버려지는 것들의/눈물이라는 걸 알았다/흐르고 넘쳐/자꾸 자꾸 밀려오는/파도란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