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지식 네트워크를 위한 독서 프로젝트,
<우리의 불안정한 삶, 비정규직을 읽는다>를 제안합니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1.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독서
안녕하세요. 저희는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들입니다. 우선 저희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희 공간 입구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 주십시오!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좋은 앎과 좋은 삶을 일치시키는 연구자들의 생활공동체입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1998년 수유리의 작은 공부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소수의 국문학자들이 모여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세미나 종류가 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얼마 뒤 사회과학자들이 합류해 강좌를 열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몰려왔고, 함께 책을 읽고 함께 밥을 지어먹었습니다. 또 함께 산책했고, 함께 요가를 했고, 함께 등산도 했습니다. 함께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늘었습니다. 그동안 멋진 카페도 생겼고, 청소년을 위한 ‘공간 플러스’가 생겼고, 조각가 이영섭 선생님과 사진작가 김민곤 선생님의 작업실, 이주노동자 방송국도 한 지붕 아래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저희 공간에서는 돈이나 권력,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공부하고 싶어서, 그리고 앎이 삶을 바꾸고, 삶이 앎을 인도하는 그런 학문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서, 60여 명의 연구자들이 생활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여러분께 드릴 말씀은 책과 세상에 대해서입니다. 저희는 연구자들인지라 대부분의 시간을 책과 함께 보냅니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공부하는 것, 저희에게는 그것이 삶입니다. 책은 저희를 생각하게 했고, 저희를 공부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비단 저희 같은 연구자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생각하며, 공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그것은 아무런 생각 없이, 관성대로 살지 않는다는 뜻일 겁니다. 공부한다는 것, 뭔가를 배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이제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산다는 뜻 아닙니까. 그냥 정해져 있는 대로, 명령받은 대로, 습관대로 살지 않는 것, 남들 말하는 대로 생각 없이 살지 않는 것, 그것이 공부라고 감히 말씀드려봅니다.
우리는 생각하고 배웁니다. 그러기에 다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희는 책을 읽는 이유를 여기서 발견합니다. 책은 항상 나를 깨우고, 나를 바꿉니다. 책은 항상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깨우고, 세상을 바꿉니다.
하지만 우리의 독서는 어떻습니까. 혹시 우리의 독서는 나를 깨우기는커녕 나를 치장하고, 나를 바꾸기는커녕 나를 숨기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 책이 정신을 일깨우는 새벽닭이기는커녕 정신을 잠재우는 수면제가 아닙니까. 저희는 책이 교양이라는 정신적 치장물로 되는 것에 반대합니다. 책이 세상의 나무와 인간 정신을 낭비하는 소비재가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새로 만드는 생산재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독서로 얻은 지식이 단지 내 호기심을 채우고, 나를 치장하는 것에 머문다면 그것은 공부가 아닐 겁니다. 우리는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독서를 하고 싶습니다. 책에는 바로 그런 힘이 있습니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 펼친 부분 접기 <<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우리 모두가 좋은 삶, 좋은 세상을 만들 수는 없을까요. 우리 삶이 불안정해지고, 세상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그것을 멈추게 할 힘이 독서에 있지 않을까요. 저희가 찾은 해답은 저희 공동체의 경험 안에 있었습니다. ‘함께 하면 무슨 일이든 사건이 된다.’ 그래서 책을 읽는 여러분, 책을 좋아하는 여러분과 함께 올 가을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2. 전국적 지식 네트워크, 가을에 판을 벌여보자
작년에 전국 인문대학의 학장들이 ‘인문학 위기’를 선언했습니다. 대학의 인문학은 정말로 위기입니다. 대학은 시장 경쟁력이 없는 인문학을 지원하지 않고, 학생들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성의 전당, 지식의 보고인 것처럼 떠들었던 대학이 위기에 빠지는 동안 우리 주변에는 책을 읽고 지식을 소통하는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공간들이 생겨났습니다. 대학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학문 연구가 가능함을 보여준 연구자 단체들이 생겨났고, 돈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책을 좋아해서 읽는 클럽들이 생겨났습니다. 한때 취직 시험 공부하는 열람실에 불과했던 지역 도서관들이 지식과 정보의 새로운 중심으로 우리 이웃에 생겨나고 있습니다. 시민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식의 전당인 대학이 죽어갈 때, 시민들 곁에는 새로운 지식 공동체들이 생겨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희는 바로 그런 활동을 하는 공동체들에게 지식 네트워크, 독서 네트워크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합니다. 단 한 번이어도 좋습니다. 함께 책을 읽어 봅시다. 함께 토론해봅시다. 함께 공부해봅시다. 혼자서 책을 읽으면 머릿속 지식에 그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면 ‘사건’이 됩니다.
이는 이미 2001년 시카고에서 행해졌던 ‘하나의 책, 하나의 시카고(One Book, One Chicago)'운동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 운동을 통해 도시 전체가 한 권의 책을 읽고 시민들이 다 같이 그 책에 대해 토론하면서 한동안 열띤 독서 분위기가 만들어졌었습니다. 그들이 읽었던 책은 앵무새 죽이기였습니다. 인종문제를 다룬 책이었지요. 사람들마다 생각이 달랐을 것이고, 행사의 저의를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자신이 백인 우월주의자이건 흑인 인권운동가이건, 보수주의자이든 진보주의자이든, 우파든 좌파든, 그 책을 함께 읽었다는 것, 그 사실이 중요합니다. 도시의 시민들 모두가 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 그 문제를 알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변합니다. 책의 힘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꾸고, 우리가 처해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시민들 사이의 지적인 공감이 중요합니다. 아니 공감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지적인 소통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다면 족합니다. 저희는 전문 학자의 지식이 아니라 시민들의 지성이 세상을 바꾸는 더 큰 힘임을 믿습니다. 시민들의 지적 소통이 활발할 때만 정책 담당자들, 전문 학자들은 좋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저희는 우리의 지식 네트워크, 독서 네트워크가 한편으로 동료 시민들에게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묻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정부에 대해 우리가 제기하는 문제, 우리가 읽고 토론하는 문제에 대해 대안을 촉구하는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펼친 부분 접기 <<
3. 우리 삶의 불안정을 상징하는 ‘비정규직’을 읽읍시다.
저희가 제안하는 프로젝트는 ‘독서문화진흥’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그런 전시용 캠페인이 아닙니다. 저희는 ‘무슨 책을 왜,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 없이 그냥 좋은 책을 모두가 읽자는 식의 캠페인에 반대합니다. 독서란 정신적 쾌감을 제공하는 상품의 소비가 아닙니다. 저희는 과거 정신의 만족이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정신의 탄생을 위해서 책을 읽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우리 모두의 주의를 환기하고,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으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
시민들의 독서네트워크를 제안하면서 저희는 어떤 책을 읽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사실 어떤 책을 읽을까보다 우리가 지금 어떤 문제와 대면하고 있는가를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저희가 뽑은 열쇳말은 ‘불안’이었습니다. 불안 속에 내던져진 삶. 이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단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1997년 IMF 사태 이래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가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 전체가 구조조정을 경험하고 있지요.
하지만 저희 생각에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불안은 단순히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전환기의 비용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해 일시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이 영속화된 사회, 영속적인 불안정을 겪어내야 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 중의 하나인 비정규직 사태는 이런 변화의 상징일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 중 상당수가 비정규직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모습이 비정규직 속에서 상징화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이 일부 사람들이 처한 ‘예외적’ 곤경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정상 상태’라는 점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KTX’와 ‘이랜드’라는 고유명사에 가려져 우리의 삶 전체가 비정규화되고 있는 현실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과 진솔하게 우리 삶의 불안, 우리 삶의 불안정성에 대해서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책을 읽는 시민들 모두가 함께 동료들과 단 한 번이라도 말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감히 저희 연구자들이 동료 시민들께 ‘우리의 불안정한 삶, 비정규직을 읽자’고 제안 드립니다. 전국 곳곳에 있는 독서 클럽들, 여러 지역 도서관들, 그리고 출판사들, 연구자 단체들, 그 어느 모임이어도 좋습니다. 책이 갈 수 있는 그 어떤 곳, 책을 좋아하는 그 어떤 모임도 좋습니다. 이 가을,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 봅시다. 지금 내가 있는 클럽에서 우리 모두가 읽을 책을 읽어봅시다. 그리고 며칠 간 그 문제로 여기저기 떠들어봅시다. 생각이 다르면 어떻습니까. 해법이 다르면 어떻습니까. 우리 시민들의 소통이 우리 시민들의 권리이고 우리 시민들의 무기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독서가 우리를 바꾸듯 세상을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길 기대합니다.
<구체적 진행 방법>
>> 접힌 부분 펼치기 >>
1. 기본 원칙
독서클럽도 좋고, 학교 세미나 팀도 좋고, 지역도서관의 공부모임도 좋고, 출판사도 좋습니다. 수백 명이 모인 곳이든 두세 명이 모인 곳이든, 모두가 대등한 주체로서 일을 함께 벌입시다. 책을 읽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을 각 모임에서 정하고 그것을 서로에게 알립시다.
행사의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방식과 절차는 각 모임이 정하고, 각 모임이 원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준비해서 실행한다. 그리고 그것을 인터넷에 마련된 지식네트워크 홈페이지에 알릴 뿐만 아니라 가능한 온갖 매체를 통해서 떠들어댄다.” (지식네트워크 홈페이지는 9월 7일부터 가동될 예정입니다.)
2. 준비
저희는 10월 한 달을 지식네트워크 활동 기간으로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제안에 동의하시는 분들은 9월 16일(일) 저녁 7시에 간담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그 자리에서 전체 일정을 공유하고, 독서 모임들과 관계를 맺고자 합니다. (장소 : 남산 수유+너머 연구실)
<< 펼친 부분 접기 <<
3. 무엇을 읽을까 


일단 저희가 ‘불안’이라는 열쇳말로 선정한 책들은 다음 세 권입니다. KTX 여성무원들의 수기집인 그대들을 희망의 이름으로 기억하리라와 20대 비정규직의 삶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한 88만원 세대, 여러 분야 비정규직의 삶을 진솔하게 기록한 부서진 미래 입니다. 이 셋을 추천한 것은 문체와 내용이 여러 시민들이 읽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각 책마다 고유한 장점이 있고, 각기 다른 느낌을 전해줍니다. 그래서 세 권을 함께 읽는 게 어떤가 싶기도 합니다.(읽을 거리는 각 모임에서 조정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4. 어떻게 진행할까
본격적인 활동 기간은 10월 한 달이 될 것입니다.
우선 저희 연구실에서는 10월 2일(화, 오후 7시)에 지식네트워크 선포식을 하고자 합니다. 저희 연구실에서 선정한 책들을 중심으로 간담회나 영상 상영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고, 함께 공부하는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10월 한 달 동안 각 독서 모임에서 책이 결정되면 함께 읽고 토론을 벌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주변에 적극 알립니다. 지역 신문도 좋고, 각자의 홈페이지나 블로그도 좋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KTX 여승무원들이나 이랜드 노조와 함께 독서 모임을 열 수도 있고, 필요한 경우에는 전문가들이나 정책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삶, 우리 사회에 대해 함께 성찰하고 토론하는 시간 자체를 내실있게 가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식네트워크 홈페이지에도 접속, 링크해 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독서 모임을 소개해주십시오. 이후 독후 활동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5. 연구공간 수유+너머에 초대합니다
10월 한 달 동안 온몸으로 비정규직의 삶을 읽고 나서, 10월 마지막 주에 서로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저희 연구공간에서 흥겨운 잔치를 열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지식과 정보, 의견이 함께 하는 자리, 또한 음식이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10월 27일(토) 오후에는 청소년 독서클럽을 중심으로 공부와 삶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 다음날인 10월 28일에는 지식네트워크에 참가한 독서모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함게 나누겠습니다. 토론회나 영상상영과 같은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함께 어울리는 즐거운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혹시 독서모임이나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신 분들이시라면 이번을 기회로 삼아 함께 책을 읽고 함께 공부하는 건 어떨는지요. 저희 연구실과 함께 하셔도 되고, 지식네트워크 홈페이지에 링크되어 있는 독서 모임 중 가까운 곳을 찾아가셔도 되고, 주변 분들과 작은 독서 모임을 새로 만드셔도 될 듯합니다. 아니면 저희 홈페이지에 개별적으로 접속하셔서 책을 읽고 활동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10월 2일 지식네트워크 선포식과 10월 27, 28일(학술제 행사)에 저희 연구실을 방문해서 일정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이 명제가 참일지 거짓일지 여러분과 함께 실험하고자 감히 제안합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
<< 펼친 부분 접기 <<
이 글은 테마카페에 등록된 테마입니다.
테마는 '먼댓글(트랙백)'이나 '댓글'을 이용하여, 하나의 주제(테마)를 놓고 여럿이 함께 얘기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테마카페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