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접힌 부분 펼치기 >>
+: 실행그룹 구성 및 확인
-: 도착 전, 약간의 우려, 실행그룹 - 사회단체는 이야기 들었으니 그렇다고 치고, 지역에서 약간의 정치진출을 생각하는 친구들 몇몇이 보인다. 그리고 전 진성노빠. 운영에 대해선 우려반기대반이다. 전유되거나 전취될 가능성은 현재대로라고 하면 확율이 높다. 닭쫓던 뭐, 하늘만 쳐다본다고, 보내놓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엇을 해야될지도 몰랐던 친구들이 고스란히 그 분위기에 감동하고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다.
'원하던 지도자가 다가왔다'라는 수동의 발제문도 그렇고, 운동이나 활동의 관점에서 보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선거에 올인, 그간의 브로커 경험을 충분히 녹여내려는 헌신성, 후보에 대한 의타성이 잠깐이지만 느껴진다.
*. /: 최적: 깨끗하게 '벌자'가 다른 관점을 보인것에 예의주시한다.-- '벌자'도 성장이데올로기임을 인정하고, 어떻게 '살자','놀자'란 주제로 대중의식의 몸높이에서 관점을 제시하는 패러다임 파트너, 인물을 찾는다 - 그것에 근간해 정책툴을 대중의식의 입장에서 근본적으로 재구성한다 --운영주체에 정치적 야심을 가진 인물들이 결정권을 줄이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새롭게 만든다(사회단체,활동가그룹이나..) --제도화의 관점,기존 학습효과에 대한 잘못된 점들을 엄밀히 분석, 논의틀을 만들어나간다 --아킬레스 건, 잘 되지 않을 때를 가정하여 시나리오를 짠다. 대중의 의식의 진전,책임성에 기반하여 프로그램 대부분을 집중시킨다 -- 총선뒤 지역모임을 가정하여, 의식,활동을 향상을 그 역할,사람을 준비한다(대선올인은 단기적인 효과는 있지만 우려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 -- 자생성과 사회단체의 역할의 결합을 가정하고, 지나친 정치우위에 경계심을 둔다 - 제도안, 곁,밖의 역할, 즐길 수 있는 일/거품경계론의 긴장을 끊임없이 유지한다.
최악: "벌자"-깨끗한 자본주의(성장전제) 가운데 '사람'이 들어있고, 그것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 감동을 전취하는 것은 지지율에 기반, 합류한 국회의원, 정치진출을 꿈꾸는 준정치인으로 운영그룹이 메워진다 -- 논의의 틀, 대중의 의식향상, 그 관점에서 판단하는 입장이 결여된다 - 무리수, 정치적인 판단이 주류를 이룬다. -- 역시 '성장'에 매몰된, 한미에프티국면, 어떻게 '살자', '놀자'는 언급되지 않고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한다 -- 신 '성장'론에 함몰되고 고양된 대중의식은 한발자욱을 내딛지 못한다.
<< 펼친 부분 접기 <<
워크샵 참석
뱀발.
1. 고양된 느낌, 운영진들도 그 가운데 하나이지만, 리더들의 문제는 여전히 보인다. 노빠에서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상황의 유사성에 그대로 자리를 대체한 것일까? 민*당이 뜨면, 될 것 같으면 그리로, 뭐가 될 것 같으면 그리로.. 기본적인 활동이나 관점이 생활인에 착근해있지 않는 사람들의 그림자는? 순방향의 역할은 현재지점에 수긍하지만, 우려스러움이 동시에 보인다. 우연히 상황이 왔고, 고양시키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그 와중에 힘을 얻어보는 것이 속내인 사람들... 전취될, 전유될 가능성, 질곡이 느껴지는 것은 지나친 선입견인가? 사회단체활동가들이 이 몫을 할 수 있고 해나가겠지만, 역시 선거올인분위기에서 얼마나 거품을 걷어내며, 활동의 한발자욱을 딛게 할 수 있을까? 해낼 수 있을까?
2. 좋아하는 후보에 전적인 양도라? 주체이기를 포기하는 습속이 보이는 것은 아닐까? 또 휩쓸려 좋아하는 후보가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당연히 맞을 것이라는 오류의 흔적. 한미에프티에이, 성장지상의 맹점, 경영에만 머물러있다는 지적이 일견 올바르다. '살자'와 '놀자'의 패러다임이 없으면 지속성도, 거품이 걷힌 뒤, 할 일, 황망함이 뒤쫓을 것 같아 우려스럽다.
3. 그런면에서 사회활동가분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무게중심을 바르게 가져가지 않을까 싶다. 좋아하고 따르는 것은 자유지만, 현실과 맹점의 간극을 살피지 않으면 오로지 감당을 해야하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결국 제 몫이다. 생활인,민중,국민,민초들의 삶을 코디한다는 관점을 잃고?, 시선을 놓치고 위만 바라보다간 그 역시 똑같은 학습효과을 눈으로 보면서도, 실수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똑같은 실수를 밥먹듯이 한다. 중심에 서있는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닐까? 20대 많은 친구들은 5.18과 8.15를 구분하지 못한다. <화려한 휴가>를 보고 사실인지 허구인지 분간을 못한다. 아니 관심이 별로다. 정치의식과 역사의식은 부유하고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은 아닐까?
4. 상황에 의탁하는 '우리'만 만들고, '혼'도 의탁하는 분위기, 뭔가 될 것 같다는 분위기는 되어도, 안되어도 마찬가지다. 현실을 바꾸어가는 것이 아니다. 달라지는 것은 별반없다. 정치대리인만 키울 뿐인 것은 아닐까? 의탁하고 혼을 파는 사람을 경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