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한 시집들이 늦게 도착한다. 약속한 일정들이 끝나고 일터에 다시 들른다. 전에 작업하던 화실에도 인사 겸 들러본다. 분가를 한 지 백여일이 지난다. 작업실이라니.
작업실에 들러 책을 펼친다. 그래 작업실이 아니라 야외가 안성맞춤이지. 가을하늘 아래 공원 벤치가 제격이야. <<풀잎>>을 챙긴다. 오늘은 아이들의 흔적이 없다.
마스크에 깊은모자까지 쓴 걸음걸이가 서툰 중노인이 거닐다가 앉고 또 거닌다. 아주머니 한 분은 운동기구를 옮겨다니며 연신 운동이다. 흐린 하늘에 흰 구름 그리고 푸른 하늘도 조금 섞인 날이다.
풀잎이란 제목은 1,2로 두 편이다. 하지만 시의 전편 행간마다 풀잎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니 걱정마시라. 풀잎 2. 제일 마지막 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중략)
우리가 '풀잎'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중략)
우리가 '풀잎''풀잎'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버리거든요.

풀잎 1 에서는
꽃보다
고운 이름.
흙보다
가까운 이름.
풀잎이여.
아 너 홀로
살아 있는 이름이여로 시작한다.
가을이다. 시인의 마음을 쫓아보기에 좋은 계절이다. 한 편 더 소개한다.
해당화
바다는 괴로울 때
몸 전체로 우는
버릇이 있다.
병들어 신음하는
지구덩어리를
그의 등에 업고
몸을 뒤척이는 바다의 곁에 서서
나는 두 손을 높이 들어
경의를 표한다.
이럴 때마다
바다와 나의 이웃에는
붉은 반점이 돋아났다.
동해안의
여름 해당화.
박용래를 만나러 가야겠다. 오늘은 그 공원 벤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