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같았던 십여일. 명절일정들도 마치고 돌아와 운전대를 잡고 작업실로 향하는 길, 온몸의 실금으로 눈물과 울음들이 새어나오다 멈춘다. 대전역 열차로 향하는데 전화로 들려오는 누나의 떨리는 목소리. "아버지 돌아가셨어" 가 여러 틈을 비집고 십여일만에 다시 자란다. 염과 입관, 분골실의 장면들이 겹치고 나서야 삶의 인연이 닿지 않는다는 걸 새삼확인한다.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작업실 화분이 궁금해 섬안대교를 건너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며칠 울컥울컥 올라오는 장면들은 생의 자락을 좀더 길게하는, 연민같은 것들이다. 만약 요양원을 옮기지 않았더라면, 약을 쓰지 않았더라면, 밤새 간병인을 쓸 수 있었다면, 마지막 대면의 시점은 늦추지 않았을까하는 것들이었다. 쓸모가 없음을 알면서도 하나하나 따지고 있게되는 것이다. 이내 접고 정신을 차리게 되지만 막연한 후회라고 위에 줄을 긋게 된다.
이튿날 동생은 취했다. 안해도 같이 펑펑 울었다. 술취한 사람들을 설득한다는 게 무모하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은 편린을 잡아삼키기에 설득되지 않는다. 자신을 부정하는 말을 묘하게 낚아채서 반론하는 것이다. 앞뒤전후를 재는 것은 무익한 일이므로 자제해야 하는 것이다. 동생 문상객들이 줄지어서 오고, 사돈댁과 불화를 짐작하며 뭔가 묘하게 맞지 않는 줄다리기같은 긴장을 내내 느끼게 된다. 제수씨들과 큰형수와 동생이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고 아침 육개장을 들며 이야기를 나눈다. 뭘까 대체.
바꿀 수 있다고, 변할 수 있다고 하자.
장지를 선정하는 일도 여러해 전부터 나온 얘기라 장남과 며느리의 생각만 하면 안된다. 열차 이동 중에 염두에 둔다.정말 그럴까. 원할까. 자식들이 아니라 어머니 마음은 어떠실까. 하루밤이 지나고 며느리들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정한 것은 얼마든지 변경가능하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의견들을 다시 들어 확인해보는 것이다. 고인의 뜻은 무엇일까. 아들보다 더 아들같은 매형은 부친은 흙으로 돌아가길 원하신다고 모시길 원하지 않는다고....어머니도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서 자식들이 시간을 일년에 한 두번 더 내길 바란다고..누나는 그것도 욕심이지 않느냐고 그냥 자식들이 결정하는대로 따르시라고 말한다. 그렇게 속내를 확인한다.
발인날 새벽부터 비가 많이 내린다. 발인제를 지내고 화장장에 도착하고 기다린다. 작은 어머니를 모실 때보다 빨라지고 간편하다. 장례버스 기사분이 말한 전분유골함에 식당까지 챙기고 오다. 보자기로 싼 함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 전달되는데 사시던 곳곳을 돈다. 그렇게 든 길은 당신이 달리던 고개마루를 지나 당신이 뵙고 싶어하던 곳에 다다르자 비도 그쳐 편안히 모시게 된다. 포도와 술로 같이 모신 할아버지 할머니 숙부 숙모에게도 알린다.
저녁 밤도 깊고 이야기도 무르익어 일상의 빈틈까지 보인다 싶다. 다 다르다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걸 정작 모르기가 다반사라고 한다. 그래서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하자. 일터에서 챙기는데 왜 가까이 정작 내 편의 맘을 모르느냐고 하자.
삼우재도 49재도 생신으로 대신하고자 하였지만, 다들 절에 모시고 탑을 돌고 묘소를 다녀오고 다른 추모방법으로 곁을 채우고 있다. 존경하는 아버님, 고명손녀딸에게 물가져오라는 심부름 한번 시키지 않았다는, 정말 따뜻한 할아버지였다는 추모로 명절은 무척 깊어간다.
몇 십년만의 친구들 방문으로 그들의 삶들을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신없이 상주들을 밀고가거나 밀려가는 것이 다 이유가 있던 셈이다. 그럴 겨를을 주지 않았던 이들이 무척 고맙다. 4형제에게 각기 다른 엄한 아버지가 얼마나 다감해지고 다정해졌던가 얼마나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했던가. 여러 정황들을 다시 곱씹으면서 무척이나 마음들 사이사이 빈 곳들이 조금씩 채워진다. 얼마나 다정했던 어머니인가. 그 빈틈을 제주에서 온 한 강아지가 달래주고 채워준다. 밀착 방어를 하는 모습은 대견하다.
이렇게 정신없던 갈피를 잡는다. 또 다른 일상을 채우기로 한다. 읽히는 '관촌'에는 부친의 삶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애틋하거나 애절한 일상이 나란히 있다. 존경이라는 말은 너무 부족하다. 정말 잘 사셨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당신 노석우!!! 멋졌어!!!
큰아들 拜上
볕뉘. 어머니에게 읽어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