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사회투쟁들과는 달리 노조가 주도한 새로운 운동형태로 '150시간 기획'이라는 교육프로그램이 있었다. 1973년에 기술노동자 노조협상에서 이루어진 이 기획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승진에 영향을 주는 자격증 - 당시에는 기술노동자의 80% 정도가 중등학교졸업장을 받지 못했다-을 취득하도록 고안되었다. 이는 한마디로 공부를 하도록 하는 유급휴가였다. 그러나 이를 국가나 사립학교가 아닌 노조가 주최하여 운영하였기 때문에 교육과정의 내용, 교육형태, 학생선발, 교사임명도 노조가 주도하였다.
 이를 실행하면서 집단학습 및 교육에서 몇 가지 눈에 띄는 실험이 이루어졌다. 68년 운동의 학생 및 노동자 선도자들이 학급에 다시 들어왔고, 밀라노에 있는 지식인집단들은 대학 및 서점과 공동으로 교과과정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데 상당한 힘을 쏟았다. 연구노트들은 노동시장, 성과급, 조합역사, 급진적 사회학자들의 기타 연구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노동과정, 건강문제 등에 관한 자신들의 고유한 경험과 지식에 의거하여 교사와 학생 간에 토론을 이끌어갔다. 또한 교사와 학생 간의 위계는 공식교육제도에서와는 상당히 달라 학생이 교사의 교사이기도 했다.
 29-30쪽

 

0. <시사 2580> 어제 KTX 비정규직 500일 천막농성을 거두며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자신의 한번도 노동자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이렇게 될지 몰랐는데, 싸우면서 노조에 대해서 알았다.라고 했다. 이랜드노조원도 마찬가지이다.

1. 노동3권이 기본권임에도 한번도 교육받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조건에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자각을 갖는 교육이 없는 셈이다. 자신과 현실, 그리고 환상이 메우는 간극에서 자신의 고통과 현실을 깨닫는 일이 고통일지도 모른다.

2. 민주노총도, 민노당도, 진보단체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도권 안의 틀에 심으려는 노력이 없는 것 같다. 지금 당장 효과를 발휘하지 못해서 일까? 실업계 교과나, 년 몇시간의 인권교육처럼 넣어보았자 별반 별 볼 일 없기때문일까? 시간이란 축을, 한번 느낀 교육의 입소문에 대해서는 고려해보는 것 같지 않다. 단체협약의 한 조항으로 끼워넣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법정교육으로 넣으려는 시도와, 시공간의 함수로 커지는 것을 고려할 때, 이 움직임의 씨는 반드시 뿌리면 좋을 것 같다. 일하며 사는 하루하루를 '나는 노동자가 아니예요'라는 허구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허구만큼 마음아프다.

3. 제도권 곁이나 밖의 노력도 좋지만, 제도권 안의 숨은 공간을 만들려는 노력 역시 중요하지 않을까? 당장의 대의가 아니더라도, 87년, 그많은 싸움의 성과로, 법정교육은 반드시 노동사회단체의 주관하에 년 30시간 이수해야한다라고 못을 밖아두었으면, 그 씨앗이 자라도록 하였다면, 정말 아무일 없었을까? 현실 속에 자신이 처한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은 아닐까?

4.<네그리>의 노동운동 흔적을 언듯 쫓아가다가 이런 생각이 든다. 시간의 축을 두고, 실험하고 있는가? 오늘도 점거하고, 파업만하면 세상이 뒤집어질 것 같은가? 점거도하고 파업도 하면 바뀔 것 같은가? 선동만 하고, 선전만 하면 마음에 들어갈 것 같은가? 새로운 실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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