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728 화려한 휴가(酌)

 

 0. 마지막회, 앞자리만 조금 남았다. 시간을 겨우 맞춰, 막둥이와 셋이다. 좀전 장모님 회갑에 찍은 가족사진을 건네드릴 겸 들른 댁은, 보름달빛에 능소화와 나리꽃은 간절하다. 총성소리와 잔인한 장면에 놀란 막내녀석은 그러길래 "제가 볼 게 아니라구 그랬잖아요"라구 연신 불평을 터뜨리고, 놀라면 귀를 막고 안긴다.

 1. <박하사탕>과 <꽃잎>이 겹쳐졌다. <죽음의 시대 어둠의 시대를 넘어> 조사기록(황석영)도 생각나고, 별다방 미스김과 꽃제비와 기사아저씨, 그 공수부대원과 대위, 그리고 학생들도 마음을 내내 건드렸다.


2.

 

 

3. 꽃다방 미스김도, 꽃제비님도, 박하사탕의 공수부대원도, 대위님도, 여전히 지금도 자리를 지키는데, '우리'?의 외계언어와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습속때문에 그 상태에서 분기해서 진도나간 것이 별반 없었던 것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현재화하고 있는 곳을 보라고, 말하는 것을 가로채서 일신안위에 써먹지 말고, 여전히 당신의 일상을 책임지는 진짜배기의 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못하면서... ...

4.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알아들을 수 있는 행동으로 현재화한 꽃다방의 미스김 시선을, 마음의 저금통을 채곡채곡 쌓은 적은 있는가? 현재화한 또 다른 꽃제비님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느낄 수 있는 행동으로 함께 한 적은 있는가?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닐텐데. 없다고 외우면서, 신고하면서, 필요하면 부속품처럼 끼워놓은 것은 아닐까?

5. 영상대자본의 힘을 얻어서야만 감동이 되살아나는 아이러니, 자본에 감사해야할 일인가? 집중하지 않고서는 일상에서 조금도 흔들리지도, 마음도 뺏어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수준이고 현실이란 말인가? 그런 감성이야, 또 뿔뿔이 흩어지고 사라지면 그뿐 아닌가? 더 더욱, 작품성과 예술성, 그리고 스케일이 커야 더 느낄 수 있는 것일까?

6. (27년전 그와 나, 27년 뒤 우리) 감동도 자본에게 사버리고, 잊혀지고, 감동만 회자되고, 현실은 고스란히 또다시 남는 것일까? 수상하면 신고해버릴 마음때문에 보지 않고 사는 27년과, 나하곤 별 상관없기때문에 여전히 자본의 햇살에 바스러지고 마는 존재들도, 27년뒤 세계적인 영상자본에 휩쓸여 감동을 받아야만 재고해보는 것일까?

7. 등대에서 빛을 비추면, 얕은 구릉이나 바위 뒷편에만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절벽 뒤편도 보이지 않고, 얕은 바위에서 다른 빛이 다른 곳을 비춰야 그나마 보이지 않던 바위뒤편도, 바위도 보이기 시작한다. 높지 않지만 얕은 곳, 더 높은 것 때문에 가린 것.  죽은 자들은 웃고, 산 자의 굳은 표정의 마지막 결혼식 장면은 , 그 아픔을 제 마음에 가져가길 마음 속에서 또 다른 사자의 삶을 함께 살리길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8. 군부파쇼야 비난을 감수하고 그 짓을 하지만, 자본은 소리소문없이, 그 보다 많은 사람들을 여전히 벼랑으로 목숨을 던지게 하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도, 이 가슴아픈 이야기를 만들면서도 가슴 아프게 간신히 몸을 바치고, 이어가는 삶들이 있었을 것이고, 있을 것이구. 마음의 눈길을 주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없는 것이라 여기며 당당히 살지도 모른다. 이미 지나간 삶은 다시 살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감수성이란 것이 얼마나 얄팍하고, 간사하고, 불끈 하였다가 사라지고 마는 것 같아 조금이나마 늘려보자는 노파심에서 꼬투리를 잡아본다. 아니 생트집일 수도 있겠다. 더구나 향수버전으로, 위로버전으로만 분위기가 돌까봐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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