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구는 고유명사다

네 부모 세대는 사방에서 죽음을 보며 그 후속 세대는 사방에서 ‘생명‘을 본다. 38

내게 필요한 건 지구에서 ˝모든 건 살아 있다˝라는 사실을 표현해 줄 용어다. 39

우리는 ‘세대 간 갈등‘이 인류의 소통 불가능성에 대한 근대적 증거 그 이상의 것을 제공한다고 이해한다. 나는 더 나아가 그것이 발생의 갈등, 한마디로 생성의 갈등과 관계된다고 말하고 싶다...바퀴벌레가 되고 나 후 그레고르가 느낀,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의 첫 번째 불안 또한 그것인즉,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든 점은 더 이상 어떻게 제 가족의 생활비를 보조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실인 것이다. 40

지구란 무엇인가, 우린 그것이 존속과 생성의 염려를 지닌 모든 자들의 연결, 연합, 중첩,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41 그레테가 자신의 소중한 오빠-벌레를 두고 잔인하게 ˝어떻게 해야 저걸 없애지?˝라고 혼잣말할 때 단순화해 버리고 만 문제가 그것이다.

세바스티엥 뒤트뢰유는 ‘생명‘ Vie이라는 단어를 대문자로 표기해 살아 있는 것들과 그것들이 흐르는 시간 속에 변형시킨 모든 것, 바다, 산, 땅과 대기를 단 하나의 계통으로 아우를 것을 제안한다. 45


4. ‘지구‘는 여성명사, ‘우주‘는 남성명사다

그레고르는 자신의 집에 틀어박힌 부모처럼 되는 대신, 마침내 정말로 제 몸을 이동하는 법을 알게 된다. 하나의 도관을 설치하는 것으로 매번 이동의 값을 치러야 한다는 의무가 나를 그 도관만큼 해방시킨다. 파행을 통해 난 내가 있는 곳을 약간 더 길게 탐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7

임계 영역 안에서 산다는 건 이후에 올 생명 형태들의 거주적합성을 위기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조금 더 오래 지속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critique‘ 그것은 위태로우며 무서울 정도로 객관적인 상황을 가리켜 보이며 그 위태로운 근접성을 증명하기도 한다. 50

가이아를 균질적이고 매끈하며 연속된 우주 공간에서 따로 부각되는 기이한 반점으로 봤던 앞선 세대의 착각과 달리, 지구생활자들은 그 이미지를 뒤집어, 자신들의 도정에서 마주치는 우주의 작은 섬들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뒤얽힌 생명체들이 사슬들을 끊임없이 깁고 수리해 가며 짜는 가벼운 양탄자를 바탕으로 제 테두리 날에 의해 선명하게 도드라지는, 그리고 유지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드는 섬들로. 57 토끼가 오리가 될 수 있고 또 그 역도 일어날 수 있는 저 양면적인 그림들에서처럼, 후방에 있던 것이 전방으로 옮겨온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폭포 형태로 이어지는 생성의 곤란

우리의 불행은 격리되어 있기는 한데 고유한 의미에서 ‘우리의 집‘을 전혀 갖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그런데, 또한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자기동일성의 덫을 피하도로 해 주는 사실이기도 한다. 격리 덕분에, 드디어 풀려나 숨을 쉬는 것이다! 69

가장 기이한 것은 정치적 개인에게서 사실인 것이 생물학적 개인에게서도 사실이라는 점이다. ‘살아있는 유기체‘에 대해 그게 완전한 동물이든 그 동물이 세포나 유전자이든, 동이한 문제를 겪고 있다. 존재자들이 서로 뚜렷이 구분해서 유지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헤아리게 되는 모든 자연과학 속에서, 폭포는 계속해서 예견치 못한 방향으로 점점 더 멀리 되튀긴다. 73

여태까지 공허한 편이었던 ˝행성 의식˝이라는 표현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또렷해지는 듯하다. ˝만국의 격리된 자들이여, 단결하라! 그대들은 동일한 적을 지니고 있으니, 다른 행성으로 피해 달아나려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75 대부


6. 여기 이 낮은 곳에 - 단, 저 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오로지 한편의 생명체들이 다른 편의 생명체들 - 땅, 하는 대양, 공기도 이에 포함된다 - 과 더불어 고정하고, 일으키고, 유지하고, 감싸고, 포개고, 융합하는 벽감들, 둥근 포위망들을 교란하고 강화하고 복잡하게 하는 일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세계 경험은 ‘물질적‘이지 않다. ‘영적‘이지도 않다. 우리의 경험은 다른 신체들과 함께 이루는 구성composition에 속한다.83

임계영역을 측정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뒤로 후퇴하는 일도, 예전의 여기 이 아래로 돌아오는 일도 아니다. 우린 이제 도망칠 수 없다. 그러나 같은 장소를 다른 방식으로 살 수는 있다. 바로 이 곡예의 전체가 안나 칭이라면 같은 장소에 자신을 다르게 자리매김하는 새로운 방식들이라 부를 것에 기반하도록 하는 것이다. 모두가 각기 자기 집에서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살기 시작한 것이다. 84

우린 그 내부에서 우리가 거주하는 공기 거품의 온도 조절이 우리 자신의 행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진정한 격리란 바로 이것, 우리가 무심결에 우리 자신에 집단적으로 선택해 준이 운명이다. 아틀라스가 그러듯이, 우리 등에 짊어지겠다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벌레-되기란 딴 게 아니다. 바로 그것이다. 변신이란 바로 그것이다. 85


7. 경제가 다시 표면으로 떠오르도록 놔두기

인위적으로 물속에 지탱시켜 두었던 나무 들보를 놓쳐 돌연 그것이 표면으로 떠오르기라도 한 듯, 여태까지 실제 삶의 반박할 수 없는 토대라 여겨졌던 경제가 위쪽으로 다시 올라온 양상이다. 두둥실 아무 어려움도 없이, 근대적인 삶의 저 더할 나위 없이 유명한 ‘하부구조‘가 표면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만 것이다. 이제껏 온전히 무시해도 좋을 상부구조라 여겼던 것, 즉 생성의 염려와 존속의 문제가 아래로 미끄러져 심층으로 스며든 것이다. 불과 몇 달 사이에 경제는 ‘우리 시대의 넘을 수 없는 지평선‘이기를 멈췄다. 90

문제의 핵심은 단지 ‘경제 체계‘를 개선하고, 바꾸고, 녹색으로 만들거나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경제라는 것 없이 지내는데 있다. 90

호모에코노미쿠스에는 천부적인 것, 자연적인 것, 또는 토착민적인 것이라고는 없다. 머리를 거꾸로 한 채 올 뿐, 결코 일상적이고 실용적이며 철두철미하게 밑에서부터 시작하는 경험으로부터, 생명의 형태들이 다른 생명의 형태들과 유지하는 관계들로부터 오지 않는다. 경제가 확산되기 위해서, 그것이 지상에서 가능한 토대로서 심층에서 유지되기 위해서는 하부구조의 제작이라는 엄청난 작업이 필요하다. 그처럼 난폭한 식민화에 대항해 가장 평범한 경험이 반격적으로 행사하는 집요한 저항을 누르고 경제가 저 자신의 자명성을 부과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말이다. 91-92

문제의 핵심은 ‘내일의 세계‘가 ‘이전의 세계‘를 대체할지 여부가 아니라 표면의 세계가 마침내 일상적인 깊이의 세계에 제 자리를 양보할 수 있을 것인가를 아는 데 있다. 93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경제적인 차원이 있다˝라고 말하는 걸 결코 용납하지 않는 데 있다...특벼히 굴복하지 않아야 할 유혹이 있다면 모든 틈들을 매끈하게 메우면서 산술로 그것들을 대체해 버리는 일이다. 산술은 토론을 닫아 버릴 것이며, 무엇보다도 그것은 다른 곳에서, 다른 것들에 의해, 특히 이 현장에서 주 멀리 떨어진 다른 것들을 위해 실행된 것이다. 94,95

이 같은 토론과 협상과 가치 평가의 직조는 우리가 기본값인 것마냥 경제로 환원해야 할 그 어떤 것도 들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 상황에는 보다 깊으 어떤 것이 반드시 존재하며, 우린 그것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보다 현실주의자, 실용주의자, 물질주의자가 되어서 드리어 보다 낮은 곳으로 내려올 시기가 된 듯하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한다. 96

정치 경제학을 새로이 비난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생명의 형태들이 서로 안에 유지하는 관계들의 설명서로서 그것을 완전히 버리는 데 있다. 경제가 마법으로 정신을 호린다면, 그 마귀를 몰아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97

홀로바이온트에게 출납명세서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생명체들이 완벽하게 계산을 한다면 그것들은 결코 오래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건 그저 계산의 오류가, 우연에 의해, 아무런 섭리없이, 거주적합성의 조건들을 창조해 내기에 이른다는 말일 뿐이다. 100


8. 하나의 영토를 제대로 된 방향에서 묘사하기

뒤집힌 방향에서 보았을 때는 지도 위에 선으로 둘러 위치를 지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영토를 형성한다. 반면 제대로된 방향에서 보면, 하나의 영토는 자신이 의존하는 자들과의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 행위들의 목록만큼 멀리, 더 이상은 아닌 딱 그만큼까지 확장될 것이다.107 당신이 무엇으로 사는지 말해 보라. 그러면 당신의 삶의 터전이 어디까지 확장되는지 말해 보겠다.

당신이 그 생명의 형태들을 힘겹게 기록했다면, 그 이유는 그것들이 묘사를 깨물고, 자기들을 고려하라고 당신에게 책임을 지우기때문이다. 물론 당신은 목록을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 당신은 묘사를 다시 시작해야 할뿐더러, 당신이 목록화할 자들과의 대면에 더한층 큰 책임을 져야만 하리라. 착륙한다는 것은 로컬이 되는 것을 뜻하지 않은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의존하는 존재들과 만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제대로 된 방향을 취했을 때 ‘로컬‘이란 공동으로 검토되고 논증되는 것을 일컫는다. 가깝다는 건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날 직접적인 방식으로 공격하거나 살도록 해주는‘이라는 의미다. 109

그동안 경제가 현실주의적이고 무릴주의적일 수 없었는지, 그 까닭을 당신의 살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경제를 선택하는 것, 그건 해명해야 할 내용을 전혀 갖지 않는 존재들을 고안하고 그들이 독점적인 소유권을 통해 자기 경계를 보호받아야 할 독립적인 개인들이리라는 핑계를 대면서 상호행위의 재개를 중단시키는 행위다. 111

각각의 개체가 다른 개체들과 중첩되어 있는 이상, 우리는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있는‘ 한 영토에서 함께 살고 있다...우리가 이처럼 서로의 경계를 침범한다면,결국 우린 하나의 공동집단을 형성하는 것이다. 112

고유의 의미에서 경제는 무리를 흩뜨려 없애고 토양 바깥으로 내보낸다. 반면, 격리는 무엇을 허용했나. 바로, 제게 의존하는 자들의 거주적합성 조건들을 유지하거나 파괴하는 스스로의 능력에 의거해 심판 받기로 동의한 이들을 이끌어 다시 무리짓고 다시 자리매김되도록 했다. 114


9. 풍경의 해빙

아, 그래서 이 도안이 과녁을 닮았나 보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다시 말해 과거와 미래를 가르는 구분선 위에 있는 이는 다름 아닌 당신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자리가 바로 여기다. 바로 여기가 당신이 뛸 곳이다. 말의 모든 의미에서, 당신은 이 자리에서 당신 생명을 다시 걸고 있는 것이다. 118

그건 언제나 면전에 있는 것, 다시 말해 저 17섹 유럽의 발명품인 풍경인 것이다. 주체는 재현되어 어떤 의미에서 그의 수중에 놓이게 되는 이 화잍 큐브를 떠나지 않는다. 이 상자 안에 고정된 채로 남은 자는 순화된 대상들을 제 앞에 대면한 박물학자 주체가 되어 간다. 122

주체또한 갇힌 채 머무르지 않는다. 행진해 가는 대규모 시위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대신 그 흐름에 합류하기로 결심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그때가지 그저 구경꾼이었던 당신은 이제 소란스럽게 흥분한 군중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당신 목록의 개체들 하나하나와 동일한 생성의 염려를 나누어야 한다. 예전의 대상들앞에 선 예전의 주체와 반대로 당신은 그것들의 역동성에 더는 무관하지 않다. 인간중심주의는 그렇게 끝을 맞는다. 125

홀로바이온트들의, 또는 제휴의 사회학의 역설 일체가 거기에 있으니, 사람이 누군가와 점점 더 친숙해진다는 건 그 자신이 함께 얽힌 이들을 향해 점점 더 멀리 여행하는 일과 같다.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축소된 개인은 자신을 지배하는 거대함 앞에서 아무 힘도 없다고 느끼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 행위자-연결망, 행위소-민족, 홀로바이온트는 제 목록의, 제 행위의 흐름의 제 이력서의 항목들이 증식될수록 날개가 돋아나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128

근대적 주체는 시간상으로도 제가 어디에 자리 잡아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 큐브 안으로 들어가기 우해 필연적으로 제 과거와 관계를 끊어야 했으니까. 상류도 하류도 상실한 만큼, 근대적 주체는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가던 길을 되돌려 슷로에게 요긴할 행위의 원천을 다시 찾아내는 일을 할 수가 없다. 그것이 그의 불안의 원천이다. 그는 제 뒤의 배들을 태워버렸다. 129

우리의 생명이 달린 상류와 우리에게 의존하는 하류의 그 모든 자들이 지닌 생성의 염려를 우리가 무시하지 않기로 한 이상, 어떤 것도 우리가 발길을 되돌리는 걸 방해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그 둘은 마침내 다시 연결된 것이다. 130 우리는 근대화의 검을 끊어버린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다시 묶고자 한다.


10. 필멸하는 몸들의 증식
11. 민족집단형성의 재개

끼리끼리-주의를 되찾기로 한 이들이 글로벌화가 아무데로도 이르지 않ㄴㄴ다면 대신 보호받을 수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끼리 있으 수 있는 곳으로 144

이 부정적 보편은 예전에 ‘국제 질서‘라 불렸던 것의 철저한 해체로 인해 나날이 위기를 거듭하며 드러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근대화의 폐허들이 브린이 제시한 풍경과 상당히 닮았다. 146

글로벌화라는 행성이 존재한다. 퇴장이라 불릴 수 있을 행성이 존재한다. 화성이나 초현대적인 벙커. 안전리라는 행성이 존재한다. 다음은 근대인들의 이하 수준에서 저항하면 살아가는 특유의 양식 . 근대외인. 전에는 구식이었지만, 보라 이젠 이 별이 무서울 정도로 현시대적인 것이 되고 우리가 위험에 빠트린 바로 이 민족들에게서 살아남는 법을 배울 수 있다. 150

홀로바이온트들의 외교술. 경계 개념 일체의 경계들을 잡는 것이야말로 외교술의 본질 그 자체다. 저 유명한 ‘붉은 선들‘의 재설정. 문제에 착수하는 방식은 로컬에서 글로벌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라는 어떤 등급의 문제가 아니라 계측법의 문제다. 치명적인 일반화라는 객관적 인식이라는 이상과 섞어 마술을 한 것이다. 마법같은 해결책만 촉구했던 것이다.. 155

각 경계는 다른 경계를 숨기고 있으며 매 등급의 변화는 매번 다른 생명체의 중계를 가정한다는 사실을 주지하면서 모색을 계속해 나간다는 제 최초의 소명을 외교술이 다시 찾은 것일 따름이다. 156


12. 아주 기이한 전투들

홀로바이온트들은 그들 자신의 정체성에 의해 정의될 수 없다.


13. 사방으로 흩어지기

함정으로 가득 찬 어떤 역사여. 어떻게 하면 방향을 잃지 않고 이 역사 안에 똬릴ㄹ 틀 수 있을까? 오늘날, 땅은 또 다시 돈다. 하지만 이번에느 저 스스로에 의해, 저 스스로 위에서 돈다. 그리고 우린 우리 자신을 그 한복판에서, 그 땅 안에 삽입되고 격리되었으며 임계영역 안에 틀어박힌 자로서 다시 발견하며, 더 이상 그곳에서 새롭게 거대한 해방의 무훈시를 읊지 못한다. 오히려 세탁기 드럼통 안에서 압력과 고온에 의해 미친 듯 도는 빨래 같은 느낌이다. 법, 정치, 예술, 건축, 도시 할 것 없이 모든 걸 새롭게 다시 발명해야만 하는데, 더욱 기이한 건 동시에 움직임 그 자체 즉 우리 행위들의 벡터마저도 재창안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무한 속을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유한 앞에서 후퇴하는 법, 대열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계속 전진하는 행위가 우리를 가뒀다면, 후퇴를 배움으로써 우리는 격리에서 풀려난다. 우리는 움직임의 능력들, 그렇다. 행위역량들을 다시 발견할 필요가 있다. 줄곧 게와 바퀴벌레의 자격으로 이전과 다른 움직임들을 허락하는 이 벌레-되기를 말이다. 그레고르의 리드미컬한 파행에는 아름다움이 있고, 춤이 있다. 170-171

지구에 격리되어 있으되, 여긴 감옥이 아니라 그저 그 안에 우리가 감싸여 있는 곳일 뿐이다. 해방된다는 건 지구로부터 나가는 걸 뜻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내포된 것들, 곧 그 주름들과 중첩들과 제반 얽힘을 탐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178

적출자들과 수선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길항은 모두 그 같은 권력들의 재배치 문제에 걸린다. 식별 문제로 고충을 안기는 영토들은 언제나 각 국경의 양편에 걸쳐져 있다. 그리고 해방의 새로운 방식은 경계 개념의 경계를 넘기, 바로 그 일에 있다. 179

우리가 새로운 세계 속으로 이동했다면, 하여 남은 것들을 우리 스스로 수선해야 한다는 존재 조건들 안으로 되돌아온 거라면, 이 때 가장 중요한 움직임은 바로 사방으로 흩어질 수 있음이다. 그럴 시간이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183


볕뉘.

라투르의 책이 생각보다 빨리 나와 놀라기도 했다. 읽다가 보니 알게 된 것은 라투르가 항암치료 중이며, 손자에게 건네는 양식을 빌어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다급함이 묻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글들은 전방위적인 넓이와 깊이를 갖고 있다. 7장의 경제편은 유독 관심이 더 가기도 하는데 개념은 무척 간결하고 적확해서 놀랄만하다. 최근 과학이나 학문들의 병행 발전도 확인하면서 읽으면 좋겠다 싶다. 친철하게 부록 편에 목록들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카프카의 변신을 재음미하는 재미도 느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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