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율이 아니라 백금율; 네가 대접받고 싶은대로 대접하지 마라, 남들은 취향이 다를 수 있다.


1.

이 시점에서 내가 자기 계발 장르의 팬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야 하겠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 따르면 우리는 너무 많은 내적 성찰과 너무 적은 외적 성찰의 시대에 살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함께 시작된다. 우리의 주요 임무는 다른 기관을 만드는 것이다. 508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황금률이 부족하다고 믿게 되었다. 10장에서 우리는 공감이 나쁜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한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감지하는 데 우리가 항상 능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모든 관리자, CEO, 언론인 및 정책 입안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사실상 강탈하고 있다. 이것이 텔레비전에서 난민 인터뷰를 거의 보지 못하는 이유이다. 이것이 우리의 민주주의와 저널리즘이 대부분 일방통행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유이다. 이것이 우리 복지국가가 가부장주의에 젖어 있는 이유이다. 513

3.

공감과는 달리 연민은 우리의 에너지를 약화시키지 않는다. 사실 그 후 리카르는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연민이 동시에 더 통제되고, 더 거리를 두고 있으며, 더 건설적이기 때문이다. 연민은 타인의 고통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고 행동하는 데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연민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입하는데, 이는 남을 돕는 데 정확히 필요한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아이가 있다고 가정ㅇ해보자. 부모로서 당신은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어둠을 두려워한다고 아들이나 딸과 함께 훌쩍거리지 않을 것이다(공감) 오히려 당신은 그들을 진정시키고 위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연민) 515-516

볕뉘.

1. 4월초 지인이 머무르다 이 책 얘기가 나와서, 그건 아닌데 싶었다. 성선설, 성악설 그렇게 흑백으로 나눈 것이 문제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추천해준 책이 앨버트 허시먼 전기였다. 그는 인간을 시계추(이 역시 고루한 표현이지만)처럼 왕복운동하는 진자라는 개념을 써서 나아간다. 그랬을때만 사람을 좀더 폭 넓고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고 말이다. 외연의 확장에도 염두에 두면서 이끌어가는 모습이 끌렸다. 또 다른 지인의 글에서 모습을 드러내기에 이렇게 읽게 된다 싶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궁금해 결론부터 손이 간다.

2. vflat을 써보고 있다. 줄간이 이어지지 않아 어색하지만 정확도가 높아 더 사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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