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덜먼의 책을 덮고, 잠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 늦게 든 잠, 새벽녘에 꿈에 또 다시 시달린다. 한 장만 쓴 페이퍼가 더 홀쭉해보였다. 빈약함이 어울리는 그 페이지는 공중에 찢긴 종이가 날리듯 퍼덕거린다. 날렵함이나 날씬함이 아니라 몰골이 쑥 들어간 빈틈투성이라니 말이다. 부끄럽고 창피하다. 며칠 전에 있던 자만감 같은 것들은 대체 어디로 피신중이란 말인가. 가느다란 작대기. 그것도 이어진 막대기가 아니라 간신히 얼기설기 매어진 잣대. 누군가 훅 불면 후두둑 따로따로 땅바닥에 투두둑 떨어질 것 같다.

그들은 덧붙인다. 아니 어쩌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냉정하기도 하다. ~으로 환원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행위자를 그대로 보려하지 않고 놓아두려하지 않는다. 그저 종속적인 위치로 놓는다. 가령 a라는 사물. 쓰레기나 폐기물이라고 하자. 흔히들 이것은 인간들이 부수적으로 만든 것이기에 그냥 처분하거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처리하면 될 것이다라고 한다. 즉 인간위주의 판단에 종속변수로 놓는다. 이런 사유방식이 정작 문제가 생기면 대처를 하지 못하고 답을 찾을 길이 없다. 찾는다고 하더라도 사후에 생기는 일이다. 그러니 쓰레기. 핵똥(폐기물). 공정에서 나오는 신규화합물 등등 사물 그대로 행위하는 행위자인 것이다. 매체인 것이다. 서사뿐만이 아니라 그 똥은 끊임없이 악취나 문제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말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으로 된다거나 해석할 수 있다거나 하는 파악방식은 편의적인 발상이자 다른 것들을 볼 수 없게 만드는 사유방식이다. 이것은 자신의 분과학문이나 흔히 전문분야라고 그 시선과 잣대로 바라보는 방식과 유사하다.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행위자가 행위하는 것은 평범한 인간의 시선을 너머 선다.


레비나스는 인간적인 공정을 앞에 둘 수밖에 없다고 한다. 철학적인 사유에 보태서 윤리적인 존재임을 드러낸다. 칼 폴라니가 토지, 노동, 사람 등 실재로 분리가 불가능한 것들을 발라내고 분리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문제제기를 했다. 그 반면에 허시먼의 저작을 따라가다보면 경제에 정치, 사회뿐만이 아니라 도덕과 윤리, 심리까지 덧붙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생생하게 마주하는 실체로서 학문을 뜨겁게 달구어 놓는다 싶다.

포스트 휴먼 이론들은 보지 않으려는 곳들을 보게하는 확장성에도 불구하고 차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훅 불면 날라갈 듯 끈기도 풀기도 없는 듯싶다. 그렇게 이 틀들 사이 어디쯤 갈피를 잡지 못하며 서성거리겠지만, 새롭게 버무려지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올 봄에는 아마 이들 사이 여러 갈래길을 거닐고 있을 듯싶다. 설레이기도 기대되기도 한다 싶다.

볕뉘. 허시먼 책에 하이픈이라는 구절이 나와 생각을 이어 보았다. 브라이언트책도 책속의 책이 참 많다. 봄비가 제법 많이 내린다.

하이픈(콕!)

손 내미니 


꽃도

벌도
나비도 한몸.
나-꽃.
너-벌.
우리-나비.

손 잡으니
너-달.
나-별.
우리-하늘.

손 펼치니
나-봄-여름-가을ㅡ겨울-눈
너-겨울-가을-여름-봄-꽃
과학-철학-문학-정치-벌-삶
농도-나비-밀도-글-밥-구름
비-바람-시-가난-풀
이리 한 켜 한켜 쌓다보니
배도 부르고 얼굴도 화끈하고
갈 수 없는 곳도 없다싶어
만나지 못할 사람도 없다싶어
가보지 않은 곳도 가볼 수 있다싶어
어설퍼도 아파도 누추해도 든든해.

마음 모아 ' - 하이픈 '
마음 가득 '하고픈'.
하여튼 하이픈.

하이파이브 닮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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