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허시먼에게 ‘분리’란 ‘새로운 조합’의 가능성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그는 가능주의possibilism라는 말을 만들기도 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단어는 “쾌락은 실망을 주지만 가능성은 절대로 실망을 주지 않는다”는 쇠렌 키르케고르의 유명한 경구를 차용해 자신의 기질을 드러낸 것이었다. 27
허시먼은 사건이 변칙적이거나 일탈적이거나 뒤집힌 순서로 전개될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 그것을 잠재적 경로로서 그려 볼 수 있도록 연구자의 상상력을 재설정해 줄 사회과학을 만들고 싶었다. 미래의 역사가 나아갈 수 있는 대안적 경로에 여지를 열어 줄 다양한 조합들을 탐색해 볼 수 있도록 말이다. 28
오래될수록 딱딱해지는 것이 아니라 물컹해지는 바게트 빵처럼, 허시먼은 역사가 ‘일반 법칙’들을 거부하면서 전개되는 다양한 방식에서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다. 33
좋은 시는 위대한 발명품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 같아. 매우 단순하지만 읽는 사람이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잖아. 37
정통과 확실성만 추구하다보면 의심과 회의가 가져다줄 수 있는 창조적인 가능성들과 예기치 못했던 경로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을 배제하게 될 수 있다. 45
앨버트 O.허시먼의 이야기는 개인사의 형태를 취한 한 시대의 기억이고, 실망에서 희망을, 긴장에서 해법을, 불확실성에서 자유를 발견하는 새로운 사회과학의 이야기이며, 지식인들이 겸손하면서도 대담한 태도로 관찰할 때 더 잘 포착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의 원천으로서 사회 세계를 바로보는 문학적 스타일의 이야기이다. 50
1.
“우리는 세상에 대해 울거나 웃을 게 아니라 세상을 파악해야 한다.“ 118
“결국 이 명령은 무언가를 첫 인상에 조롱하거나 적대시하지 말고 그것을 탐구하고 파악하고 고려하라고 요구한다. 그럼으로써 이 명령은 우리가 선전 구호만 넘쳐나는 상황에 맞서도록 이끈다. 스피노자의 가르침은 바로 그런 상황, 괴테의 말을 빌리면 개념의 빈틈을 말로 때우는 상황에 맞서 우리가 지켜내야할 이상으로 옹호되어야 한다.” 119
아우어바흐 “우리는 정밀과학을 우리의 모델로 삼아야 한다. 우리의 정밀성은 구체적인 것들과 관련이 있다. 역사라는 예술에서 위대한 도약은 판단의 관점을 정교화하는 데서 나온다. 그렇게 해야만 다양한 시대와 문화를 그것들 자신의 전제와 견해들에 비추어 파악할 수 있고, 그것들을 최대한 발견해낼 수 있으며, 현상을 외부적 요인으로만 설명하는 모든 절대주의적 분석을 게으르고 몰역사적인 것으로서 기각할 수 있다.” 213
에우제니오는 “주위를 보라고 조언했다. 세계의 현상들을 먼저 포착한 뒤 거기에서 아이디어가 나오게 만들라는 것이었다.....행동을 취하기 전에 ‘객관적 조건들’이 성숙하기를 꼭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218
프티 이데. 작은 것들은 큰 통찰을 주면서도 그 통찰로 환원되어 버리지 않았다. 반면 거대 개념은 “세계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여러 원인들이 있는 사회적 과정들을 단 하나의 원칙으로 설명하려”했다. 이를 피하려면 “현실을 부분 부분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하고 자신이 관점이 주관적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했다. 220
그가 확실성을 인정한 예외가 하나 있었다면, 회의주의의 가치였다. 그는 ‘회의’야말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확실성은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회의는 무언가를 내가 알고 있다고 확신하지 않는 것이다. 전자는 자신감을 약화시키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콜로르니는 의심과 회의가 창조성을 갖는다고 여겼다. 세상을 보는 대안적인 방식을 허용하기 때문이었다. 221
“햄릿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자”는 것이 이탈리아의 사상적 맥을 짚고 있던 친구들의 말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햄링이 아무런 동기부여도 일으키지 못하는 종류의 회의주의를 보여주었다면, 친구들은 회의주의가 행동을 추동하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222
2.
영국에 왔을 때 내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갔다....그곳에서야 비로소 나는 경제학이 정말로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235
그의 전환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고 하이에크를 택한 것이 아니었고 계급 분석을 버리고 케인스를 택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통상적인 ‘전환’이나 ‘개종’ 이야기에서보다 훨씬 많은 숙고와 선택과 적응의 과정이 있었다. 236
훗날 새러는 허시먼이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특정한 환경에서 어떻게 인지적 ·감정적 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을 내리고 행동하게 되는지에 매력을 느꼈다....엘버트는 작가가 주인공읫 심리에서 상황적 결과들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상황에서 심리적인 결과들을 도출하는 것에 놀라워했다“고 한다. 268 ”관찰하라, 쉼없이 관찰하라.“ 269
카스텔루치. 피콜로 이데. 하나. 유쾌한 상상을 설명의 핵심으로 삼는다. 둘. 상상력이 사람들의 믿음을 구성하고 믿음이 행동을 구성함으로써 세계사의 사건들에 영향을 미친다. 셋. 회의와 의심은 도덕적 성찰과 행동에 대한 개념을 꺾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들었고 그 덕분에 허시먼은 모든 실천은 그에 앞서 역사의 전체성을 파악해야만 가능하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71
3.
한 국가의 경제정책은 단순히 “무역 통제를 향한 내생적 경향성에서 발생하는 기술적이거나 실무적인 반응”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경제정책의 ‘밖에서, 그리고 위에서’ 결정된 정치적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로 보아야했다. 302
“플로베르는 회의주의적인 합리주의자로 키워진 한 젊은 남성에게서 비이성적인 요소들이 미신의 형태로 분출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는데, 여기에서 합리주의는 해결책도,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방향을 잡기게 그나마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의미하지. 위기를 겪고 난 뒤에 우리는 어떻게든 그 입장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 같아.“ 356
<<국가 권력과 교역 구조>> 허시먼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경제적인 공격성을 생각하고 여기에 보호주의, 국가 개입, 독점 등으 일반적인 경향성을 결합하면서, 어느 국가가 폐쇄적인 경제적인 경제정책을 편다고 해서 그것이 곧 그 국가가 경제 문제에 대해 국가 내부만 바라본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려고 했다. 폐쇄적인 경제정책은 오히려 외부를 향한 무역 전략을 촉진했다... ... 세계경제 시스템의 붕괴와 거대 블록 간의 충돌은 불합리한 것도 아니었고 민족주의적인 병리현상도 아니었다. 그것은 체제의 기본적인 모순에 대해 각국이 합리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해 온 것과 달리, 제국은 자본주의의 주기적 위기가 초래한 결과가 아니라 교역에 내재된 상호의존성에서 기인하는 결과였다. 376 공급효과/영향력 효과. 이런 방식으로 교역은 타국에 강요를 행사하는 수단으로서 전재의 대체재가 된다. 약한 무역 상대국을 굳이 물리적으로 ‘정복’하지 않고도 지배할 수 있는, 20세기식 제국주의 모델인 것이다. 379
4.
가능한 것들에 대한 열정. 가능한 것들의 범위를 인식하는 것, 그 인식의 범위를 넓히는 것, 때로는 ‘있을 법한 probable'것을 포기하면서까지 ’가능한 possible'것들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그가 이후 계속해서 되살리게 되는 ‘프티 이데’의 기초가 된다.(possible은 잠재적인 것으로서의 가능성을, probable은 현실적으로 있을 법한 것으로서 가능성을 말한다.) 421
5.
그는 마셜 플랜이 입안될 때 뒤에서 보이지 않게 움직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464. 최적의 위기. 란 변화를 강제할 수 있을 만큼은 크지만 그 변화를 끌고 나갈 수단까지 무력화시킬 만큼은 크지 않은 충격을 일컫는다. 466 유럽국가들이 문을 닫아걸고 배타적인 양자간 협상을 하기 때문에 유럽 지역 내 무역이 침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쟁 부채를 갚기 위해 외환을 확보하고자 하는 절박함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유럽 지역에서 무역이 되살아나지 못한 다면 유럽은 막대한 대미 무역적자를 줄일 수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순지출이 순유입을 계속 초과하게 되면 미국의 ‘원조’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환자를 치료하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었다. 468
인플레이션과 무역적자 사이에서는 “인과관계가 양방향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했다. 476
좁은 의미의 마키아벨리적인 관점에서 통합된 유럽이 생기는 것이 미국에 유리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어 왔다. 하지만 현재의 경험이 보여주는 바, 미국이 유럽을 전체로서 본다면 우리의 이익은 유럽의 통합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미국은 유럽을 하나의 지역으로 다루어야 했다. 480 각국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유럽의 금융과 재정을 상호 긴밀히 연결시킬 수 있는 통화 금융 조직의 구조를 어떻게 생각해낼 것이냐였다. 482
6.
무언가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배워 나가고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는 기술은 몽테뉴와 콜로르니의 영향으로 이미 형성되어 있었고, 여기에 ‘작은 것들’과 ‘일상의 행위’에 주목하는 특징이 더해졌다... ...그는 거리를 두고 조망하는 사람이 갖는 ‘경험과 먼 experience-distant'개념을잠시 접어두고 ’경험과 가까운 experience-near' 지식을 추구했다. 경험과 가까운 지식이란 ‘행동하는 사람’이 그 행동 과정에서 배우게 되는 통찰을 의미한다. 527
후발 주자들은 선진사회가 기존의 공장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치중하는 동안 그 단계를 아예 건너뛰고 나중 단계로 도약할 수도 있었다. 즉 후진성은 부채가 아니라 자산이 될 수 있었다. 536 허시먼은 국가적인 사안이나 정치적 맥락 같은 것보다는 경제발전의 미시적 기반들에 관심이 더 많았다. 538
개발과정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싶지, 개발의 모든 비밀을 다 아는 사람인 양 행세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544 1954년경 콜롬비아가 잘하지 못하고 잇는 것이 무엇인지보다는 잘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하고 있었다. 545 프로젝트 평가가 허시먼 회사의 주요 업무가 되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여러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평가했던 경험이 긴 경로를 돌아 그가 사회과학계에서 일구게 될 경력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551 경제학자들이 일반적으로 ‘권력 야망’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용맹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며, 그 결과 “과학으로서 경제학이 저개발사회 발전의 세세한 부분까지 청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고 경고했다. 569
볕뉘.
마지막 장이 다가온다. 갓난 아이를 들은 듯 무게감이 느껴진다. 어젯밤 말미를 읽다보니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아 설친다. 새벽에 마저 읽을까 싶다가 잠이 달콤해 이불 속에서 버티었다. 타계한 지가 2012년이니 그리 먼 일도 아니다. 조지 오웰이 스페인내전에 가기 전에 이미 다녀가셨다. 남미는 그야말로 밥먹듯이 가셨고, 지식인을 히틀러 치하에서 탈출시키는 요원으로 활동도 하셨고, 까뮈와 알제에서 만나기도 하셨단다. 전기저자도 대단하다 싶다. 바쿠닌의 전기도 흥미롭게 읽은 바 있지만, 이렇게 시대와 저작의 이면까지 꼼꼼하게 현장감을 느끼게 하는 대작은 상상이상이다. 두서없이 정리하다가 일단 쉬어가기로 한다.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그 맥락은 많은 것들을 불러내며 환기시킨다. 산 역사의 증인이라는 표현이 진부할 정도다. 역사의 생성자라는 것이 나을까. 그냥 밑줄의 이력을 쓰윽 보셔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