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1.
그러니 자넬 믿을 수 없어.

더군다나 자네가 전제하는 걸.
별반 흔들려 본 적이 없는 그것을 말야. 그래 묻고 싶어.
그건 무너질 수도 있고.
하면서 더 탄탄해질 수도 있지.
누가 그러던가.
자네가 믿는 사람이 그러던가.
그러면 되물어보게. 무엇을 해야하는가보다 왜 하느냐구.
그 분의 전제가 무언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 사람은 그걸 의심해본 적이 있다고 하던가.


2.

들어본 적이 없다고.
헌데 왜 그러는가. 자넨.
그러해야만 할 이유가 있는가. 사명감인가. 의무감인가.
그럼 그런 이유같은 건 애초에 없는 거라고 해보게.

왜 허망한가.
기댈 곳이 없어지는가.
삶의 끈아풀마저 잡을 수 없는가.
그렇군. 자넬 기대는 사람들도 자네에게 묻지 않았겠네.


3.

아쉽고 안타깝네.
안타깝고 아쉽네.

그래 자네도 문제야.
좀더 의심했더라면
자네가 길 하나쯤은 더 낼 수 있었다곤 생각한 적은 없는가.

그래 자네가 문제야.
좀더 흔들렸더라면 조금 더 단단해졌을거야. 아마.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가.
불리할 때 말고, 유리할 때일수록 친해져야할 이것 말야.


4.

명심할 필요는 없네.
세상에 존경같은 건 없네. 그런 게 다 망쳐놓았네.
그런게 다 무능을 키우고 감싸니.
늘 허세가 묻어 높아지기만 하는 건 아닌가. 내 편만 원해.

5.

한 두번쯤
당신이 믿는 세상같는 건 없다고 해보지않겠나.
그렇게
원하는 건 없다고 말일세.
늘 판에 박힌 회의가 두렵지도 않은가. 실행만 원하는. 자기를 갈아넣는.


볕뉘.





1. 아마 맴돌 듯. 그 자리에 머무는 건. 이럴 자유가 없어서는 아닐까. 불확실한 걸 말하는게 아냐. 분위기라는 서툰 관성. 절망을 폐기처분해버리고야 마는 힘. 말로 표현되지 않는 어떤 것들. 그 거름으로 또 자라날 숱한 것들은 어디 있을까. 애매를 보장해주는 관용같은 건 왜 대기하지 못하게 하는가. 참을성같은 것은 사전에 없는 듯이... ... 앨버트 허시먼을 3/5정도 읽고 있다.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들을 모아본다.


2. 1차별에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인종차별, 성차별, 장애차별, 종차별, 나이차별, 계급차별, 차별이 위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울기를 보완한다는 차원에서, 비슷한 삶의 시선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고, 양심의 회복 방향으로 가야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사람은 복수적인 존재이므로 다양한 차별을 행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불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시야를 확보해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2.2 인종차별을 하는 발언을 하면 법적인 처벌을 받는다. 성적인 차별을 하면 정도에 관계없이 법적인 처벌을 받는다. 장애차별을 하면 받는가. 나이차별을 하면 받는가. 아이를 홀로두면 받는가. 종차별발언을 하면 처벌을 받는가. 계급차별을 하면 환경차별을 하면... .... 이렇게 생각을 확대해보자. 지금 당신은 어디쯤인가. 진리는 언제든 만들어질 수 있다. 그 기준으로 세상을 보면, 아직 도래하지 않는 세상을 본다면.....그럴 것이다.

2.3 대부분 그렇겠지만 자기의 아픔이 커보인다. 그래서 자신의 아픔을 기준으로 하면 다른 아픔이 가려서 덜 보이기도 한다. 차별 감정은 서로 예민해지는 것이고, 서로의 삶들을 윤택하게 하자는 것이 기본 취지일 것이다. 법과 제도는 무수히 만들어질 수 있다.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3. 참회자와 심판관. 인간의 양면성을 말해주는 것이겠다. 어느 하나로 설명해줄 수 없는...그런 과정을 살아내는 것이 삶인지도 모르겠다. 단언보다는 회의와 주장의 근저에 있는 의심들이 삶의 또 다른 길을 열어주고 가게하는지도 모르겠다. 지나친 확신들을 경계해 본다. 아마 위의 2번의 일거수 일투족이 빅데이터로 모아지는 사회라면, 이렇게 막가는 법체계 시스템을 갖는 사회라면, 스스로도 예비 범죄자로 분류되어 잠재종신형에 처해지지 않을까 싶다.

4. 어느 하나로 자신의 자리와 위계가 정해지지 않는다. 진리를 잡았다고 하는 순간 놓친 것이다. 과도함이 스스로에게 자라나고 있는지, 또 다른 우상이 슬며시 그 자리에 들어온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묻고 아파해야 할 것 같다. 이런 회의만이 다음을 준비하고 일상을 열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지나친 확신이 지금을 밀고 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어느 한 분야를 콕 짚어내지 않더라도 어느 하나 샘플로 들춰보더라도 맹신에 가깝다. 감내하지 못할 극단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그 벽들이 더 견고해지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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