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을 맡고 있는 지인께 추천받은 책이다. 읽지 않고 있은 지 몇 주. 년말 식사자리에서 한 후배가 모두가 서울로 향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여기냐는 질문을 건넨다. 한 시인은 우리는 어쩌면 곁의 가까운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했다. 정작 저자도 서울이 아니라 그 인근에서 살며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어제 늦밤에 손에 집혔고 오늘 마무리한다.


1. 치안 - 조선희의 <<세여자 1,2>>는 실화를 바탕으로 이 작품과 많이 겹친다. 그렇게 사실에 집중하기보다는 서사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볼 수 있겠다. 세여자를 읽다보면 일제시대에 모든 사회활동을 불법으로 삼은 치안유지법이 시행되는 시기가 있다. 사회운동을 불법으로 몰기위해 법을 개정하고 기소와 수사 독점을 해나가는 양태가 벌어진다. 점점 활동은 어려워져 합법공간마저 제한적이 되자 , 이들의 전쟁의 격랑을 겪으면서 삶이 저편 국경너머까지 펼쳐진다. 그리고 그 이후  이 책과 같이 조선인 숙청까지 벌어지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 작품은 그 삶의 이력들을 세밀히 살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지바고 - <<닥터 지바고>>의 장면들이 점점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면, 이 작품은 점점 서쪽으로 가고 있다. 지바고는 설경을 배경으로 점점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라면, 이 작품은 황량한 배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극도의 아름다움을 배제한 채로 전개된다. 두 작품 역시 이념이나 권력이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맞지 않는 이들을 뱉어내는 양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통하지만 말이다. 


3. 고려인 - <<세여자>>의 주인공 가운데 주세죽의 딸이 국내에 소식이 궁금했고, 소설을 읽는 도중 기사를 챙겨보았다. 가끔씩 다큐도 보았고, 그 세대의 삶들이 우리의 삶에 비껴나서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 당시는. 하지만 몇 세대에 걸친 삶들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고 또 다른 형태로 다가오는 미래에 투사될 것이다. 아직 접점이 적을 뿐인 것은 아닐까.  일년전 이맘때 딸아이가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왔다. 바다가 꽁꽁 어는 곳. 아무르강 하구. 소설에 나오는 어느 곳을 거닐었을 것이다. 지도와 영상으로 하바롭스키의 잊힌 역사들을 보기도 했는데 역시나 그 일부를 마음에 안고 돌아오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L의 운동화>>로 저자를 만났다. 그 뒤로 과거를 반추하는 일이 또 다른 신화를 만들어내는 일은 아닐까 하는 마음들이 조심스럽게 스몄다 싶다. 다른 주제를 다루면 어떨까 싶기도 했던 것 같다. 이 소설 역시 유사한 공제선 속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뭐라고 말해낼 수 없지만 전과 다른 느낌이다. 세련됨이라는 표현을 적절하지 않을 것 같고,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가리키는 방향이라기 보다는 아픔을 단단히 뭉치는 큰 무게감 같은 것이 배여나와서 인지도 모르겠다.


볕뉘. 백년남짓된 치안유지법의 자장은 여전히 건재하게 남의 삶들을 짓밟을 수 있다. 견제조차없는 지금의 상황은  기득권의 꽃이시들지 않고 얼마나 퍼지는가  여실히 보여준다. 여전히 반성조차 못하는 채로 말이다. 진보-보수라는 이분법의 울타리는  선악이나 적과 우리편을 가르며 더 더욱 정치라는 벽은 사회적 유아상태를 넘지 못하고 있다. 그 가운데 삶의 틈사이로 새어나오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통곡은 늘 시간의 응어리로 남는다 싶다.


상황과 사건은 늘 벌어지고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는 늘 그 그늘의 무게를 잊거나 잊혀버렸으면 하는 것은 아닐까. 잊으려고 보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만큼 몇 배 강하게 다가올 앞날은 미지수로 남을 수는 없다. 그들의 마음과 아픔이 구천을 떠돌지 않았으면 싶다. 조금은 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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