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 ] 서로 다르다는 게 중요합니다. 여러 관점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세계랄까요. 저는 그런 세계관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책을 읽는 이유도 그렇고, 그런 독서를 바탕으로 책을 쓰는 이유 역시 그렇습니다. 지적 세계의 핵심은 다양함입니다. 이런 다양하이라는 지적 세계의 본질적인 측면은, 우리의 삶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또 우리 사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고요. 자유로운 개인이란,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충실하고, 자기다운 삶을 사는 사람을 일컫는 게 아닐까 싶어요. 각각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은 저마다 다른 게 자연스럽지요. 81

[ ] 일본, 미국, 유럽으로 유학을 갔을 때 거기서 만났던 사람들과 대화와 소통을 통해, 아 이들도 나처럼 참 다양한 지적 관심사를 갖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자신이 좋아하는 책들, 오랫동안 모은 책들로 차곡차곡한 서재를 만든다는 것이야말로 한 사회가 축적한 문화의 상징, 지성의 상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린 그런 문화가 없어요. 앞으로는 그런 서재 문화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저는 그런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87, 88

[ ] 우리나라의 법률 교육이라고 하는 게 철두철미 폐쇄적이고 도그마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 법률가가 되어도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하기란 대단히 힘든 법입니다. 법률가의 두뇌 구조는 보통 굉장히 경직되어 있는데, 무엇 하나를 우직하게 밀고 나간다는 점에 있어선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민주사회에서 수많은 환경과 경우에 처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유연하게 바라보고, 인정하고, 품어낸다는 차원에선 여러모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죠. 92 막상 로스쿨 안을 들여다보면 정말로 서울 신림동 고시학원식으로 운영된 게 사실이고, 그건 지금 로스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제도에 대해선 저도 할 말이 많고 여러 복잡한 논의의 지점들이 있겠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의 로스쿨은 교양 있는 법률가를 양성하는 곳이 전혀 아닙니다. 옛날 신림동 고시학원을 좀 더 고급화시킨 것과 다름없다고 봐요. 입학하는 구성원들이 굉장히 계층화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94

[ ] 자기가 속한 조직의 권력, 학문이 권위 같은 것을 향해서 철두철미 비판적 태도를 견지해야 할 텐데 ...아무튼 바깥세상에 대곤 정의와 진보를 얘기하면서 자기가 속한 학문, 대학, 가정, 학연, 지연, 혈연을 너무 존중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던 것 같아요. 125 우리나라는 단행본도 무시되고, 번역도 무시되고, 오로지 논문입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책도 안 쓰고 번역도 물론 하지 않고, 학계 바깥의 대중과 유리된 채 상아탑 안에 머무는 것만을 고집했던 고약한 유학파 교수들이 우리나라 학계를 지배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132 최소한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과도한 교육열을 비판한다면, 나 역시 내 자식이 교육에 대해서 한 번쯤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걸 안 하면서, 자기 자식에게는 과도한 교육열을 쏟아냈으면서 사회 일반의 교육열을 비판하다니...그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엔 너무나도 만연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165

[ ] 혼자서 사고하고 혼자서 행동하고,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힘을 갖는 게 고독입니다. 그런데 사회와 국가는 그런 개인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기본적으로 흡수하고 동화하려는 경향을 띠게 마련이죠. 그래서 저는 고독을 기본적으로 저항이라고 생각해요. 저항을 위해서 고독하는 것이지, 저항의 의미없이 그냥 고립된 삶을 산다는 것은 다소 무의미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95 <가버나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환 <로마>, 고레에다 히로카즈 <어느 가족> 이 세 영화가 공통적인 것은 혈연도, 지연도, 학연도 아닌 사람들의 새로운 관계 맺기에 관한 영화였습니다. 201 나와 가치관이 같거나, 나와 생각이 같아서 맺는 관계는 좋은 관계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세 영화는 그런 것도 아닙니다. 혈연도 아니고, 어쩌다가 맺어지는 관계, 그런 관계를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 삶. 모두 자신과 전혀 관계없던 사람들의 관계맺기에 관한 이야기인데, 참으로 중요한 메시지였다고 저는 생각해요. 202

[ ] 저는 패거리 문화를 끔찍하게 생각하는데, 지금 유행하는 이 기술 문명이 또 다른 패거리를 만드는 건 알까, 우려되는 지점이 있지요. 지연과 학연, 혈연이 물러간 자리에 ‘sns연‘ 같은 것이 생겨나고 있는 건 아닐까? 205 체면문화, 체면 차림에서 과시욕이 생겨난다고 봐요. 제가 보기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시시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나친 자기 존대랄까요. 자기 스스로 자기를 높이고 내세우는 그런 문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건 우리가 너무 업신여김을 당하고 자기 존재의 가치를 무시당하는 사회에 살았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그래서 내가 나를 안 높이면 안 된다는 의식이 있는지도 모르지만....어떻게든 출세하겠다. 윗사람이 되겠다. 남을 딛고 일어서겠다....학교에서부터 사회조직에 이르기까지 그런 식의 폐쇄적인 경쟁 체제가 존재하지 않습니까?

[ ] 결국 서로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를 더욱더 철저하게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돼요. 사람은 백이면, 성격도 다르고 느낌이 다르니까요. 또 지성도 다르고 감성도 다르니까요. 그게 중요하죠. 그게 없으면 내가 존재할 가치가 없는 거라고 봐요. 우린 다 무리과 집단 속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느낌과 감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 아닌가요? 왜 그 사실을 그토록 경시하는지, 남들과 똑같아지려고 애를 쓰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27 제가 저보다 뒤에 따라오는 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해라.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라, 바로 이 말입니다. 주위 사람들에 휩쓸려서 무작정 시험 준비에 뛰어들지 말아달라고요. 무언가를 죽지 못해 하는 것처럼은 하지 말라고요.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다고요. 238 지금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선택을 탓하려는 게 아니라, 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이겨야만 한다고 믿고, 이겨야만 어떤 ‘안정적인 삶‘이 가능하다고 믿고, 그렇게 자신을 압박하는 삶만이 인간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회적 신념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뀌어나가는 것이 맞겠죠. 274 그저 평범하게 보통사람으로, 자기 삶을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이 많을수록 건강한 사회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을뿐이죠. 276

[ ] 사회 현실에 전혀 무감각하게 고시 공부만 오랫동안 한 사람들이 판검사가 된 후 정계에 떠돌고 있는 정치인들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지방 곳곳에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힘썼던 사람들의 열정이 제대로 반영되고, 그들도 기본적으로 어떤 소시민으로서의 자기 생존을 더 따뜻학 보장받을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그런 사람들에게 이 사회가 참 냉정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289

[ ] 진정 좋은 정치는 결국 자신이 문제를 자기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그런 개인들이 만들어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요. 즉, 모든 문제를 자기 문제로 여겨 자기 문제화가 될 수 있어야지 그것이 더욱 근본적인 정치 문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자기 문제가 아니라 무조건 권력과 정치 문제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자성의 계기와 자기의 문제로 소화하지 못하는 지점도 매우 많다고 생각합니다. 308 우리가 적폐, 적페 하는데, 우리의 생활상의 적폐가 어쩌면 더 심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저는 미세먼지 같은 경우에도 시민 각자의 문제일 수가 있다고 봐요...노후화된 산업시설에도 시민들이 자발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자기 삼을 조금 조금씩 바꿔가려는 노력 없이 외부 탓, 정치 탓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죠. 310 언제나 출발은 개인이어야 한다.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아주 구체적인 관계여야 한다. 319

[ ] 우리가 죄를 지었으면 우리가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지 왜 남에게 대신 책임을 지라고 해? 이게 대속 사상의 거부잖아요. 말 그대로 신의 나라는 어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안에 있다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대속 사상의 문제는 종교를 자율적으로 볼 것이냐 타율적으로 볼 것이냐, 자기 구제로 볼 것이냐 신의 구제로 볼 것이냐는 점을 우리에게 묻고 있죠.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차이점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죠.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정교의 사도이자 러시아 군국주의자였고 차르주의자였습니다. 362

[ ] 포옹이든, 키스든, 프렌치 키스든, 혹은 성적인 관계든 상관없어요. 이런 접촉을 한다는 것은 언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참으로 필요한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더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페미니즘의 흐름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지만, 페미니즘 운동이 이런 이성 간의 자연스러운 접촉의 욕망 자체를 너무 과도하게 억압한다든지, 위험사회와 위협사회의 공포 같은 걸 불필요하게 조장한다든지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399

[ ] 낙태 문제와 관련해서...태아의 존업성 같은 것은 물론 우리가 주목해야 할 덕목임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태아를 품고 있는 여성의 권리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 여성의 인격과 권리는 그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구체성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410

볕뉘

읽다보니 후쿠오카 도서관도 가고 싶고, 군대에서 한번도 구타나 체벌을 못한 것이 잘했다 싶고, 아이들에게 공부하란 소리 대신 친구들 많이 사귀어라라고 하길 잘했다 싶다. 지역과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저자 책들로 많이 배운터라 차분히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너나 사회만이 아니라 그 만큼 내안으로도 커지고 깊어졌으면 하는데, 현실은 늘 요지부동이거나 거꾸로 가는 것이 안타깝다. 인터뷰어도 깊이가 있어 참으로 많이 준비했겠다 싶다. 노고에 감사드리고 싶어진다. 지식의 흐름과 사상의 지도를 독서를 통해 감지하시는 박교수님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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