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지나온 길이
이제 막 지나온 길이
뻣뻣이 굳는다
나는 이 길의 근성을 알고 있다
옛날에도 나는 몇 차례
빠른 걸음으로
이 길을 지나갔다
하늘고 맞닿은 이 길을 돌아 나오며
내가 흘린 눈물을
나는 알고 있다
협곡을 지날 때면 들려오는
슬픈 메아리
가지 못할 세계로 유골처럼 굴러가는
위태로운 생각들
멈추면 그 순간
서늘한 이끼가 몸을 덮는다
낙 지
몸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얼마나 된다고
접시 속 낙지의 몸이
사방으로 기어나간다
죽음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신의
몸은 힘차다
몸으로 다다를 수 있는 세계도
무궁무진하다는 듯
죽은 정신이라도 이끌고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것은
몸뿐이라는 듯
믿음이 나를 썩지 않게 한다
씨앗 속에 드는 세상의 이치처럼
오늘도 나는 삶을 믿으며 잠자리에 든다
꽃들이 고봉으로 차오르기도 하는
잠 속으로 찾아오는 것들은
내 몸을 돌며 울부짖기도 하지만
내가 보는 세상은
아직은 싱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