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시중이에요^^

 

 

 

 

 

 

 

 

진배의 축하시

 

나는 그림자가 잘 생겼습니다

 

내가 당신을 생각하며 가로등 아래를 걸어가면 내 그림자가 켜집니다

 

내그림자는 당신을 닮았군요

내 그림자는 염주나무의 키와 바람의 목소리를 가졌군요

 

당신의 머릿결이 푸른 색으로 변해갈 때 내 그림자의 머릿결이 푸른 색으로 변해갑니다

 

빛은 왜 나를 통과하지 못할까요

사람도 시간도 나를 부르는 목소리보다 빠르게 나를 통과해 가는데 말이에요

 

비를 맞는 가로등 불빛이 내 얼굴에 젖어들 때

몸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요

 

빛이 몸 안 누군가의 테두리에 걸려 통과하지 못하는 소리

 

그 소리를 쫓아

가로등을 우산처럼 쓰고 밤의 끝까지 걸어가고싶어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의 그림자는 그리워하는 누군가를 닮는다, 합니다

 

그래요, 나는 그림자가 잘 생겼습니다

 

나는 연애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나의 애인들은 내 그림자를 사랑합니다

 

저녁이 와도 돌아갈 집이 없는 나의 애인들이 가로등이 켜지길 기다랍니다

 

지난 밤에는 발밑 그림자를 걸을 때마다 잘박잘박 젖은 소리가 났습니다

당신 울었습니까

 

그런 날에는 그림자의 이마를 짚어주고 싶어 내 이마를 짚어줍니다

 

그런 날에는 나는 그림자를 안아주고 싶어 벽 쪽으로 걸어갑니다

 

벽 쪽으로 걸어가면 벽을 짚고 일어서는 그림자

 

나는 벽을 끌어안습니다

 

아무리 끌어안아도 가슴이 텅- 빈 듯해 더 꼭 끌어안습니다

 

끌어안을수록 내가 나를 끌어안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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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1 2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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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5 16: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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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1 2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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