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화 속 백수 이야기>


백수 캐릭터의 의미 찾기
1960년대: 분노의 시대
1970년대: 만화의 대중화
1980년대: 변혁의 투사 혹은 아웃사이더
1990년대: 백수, 잔치는 준비되고 있었다
2000년대: 신개념의 백수 시대
만화와 백수, 그 아름다운 조화


 
 
 
 
 
 
 
 
 
 
2.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무엇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변천
우리의 위대한 선각자들
미국의 기부영웅들
우리들 희망의 싹 - 새로운 기부자들의 등장
새로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정착시키려면

 

 

 

 

-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에 건전한 기부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의 기부를 기업중심에서 개인중심으로, 일회성 기부에서 정기기부로, 비자발적 기부에서 자발적 기부로, 다액소수에서 소액다수로 바꿀 수 있을까?

-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팝콘을 먹는 것과 유사하다. 팝콘으로 배를 채울 수는 있지만 만족을 느끼기는 어렵다. 만족을 얻기위해서는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 필요가 있다 -터너-

- 최부자 집  6연(자처초연/대인애연/무사징연/유사감연/득이담연/실의태연) -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마라 - 재산은 만석 이상을 모으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 흉년기에는 재산을 늘리지 마라 -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 최씨 가문의 며느리들은 시집 온 후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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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7-05-0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70427 서울 출장길, 살림책 세권을 챙겨 오고가며 보다.

1. 츄리닝, 슬리퍼, 엉클어진 머리 , 저자는 백수가 곧 무직자라는 등식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쓴 것 같다. 무엇보다 백수의 조건은 의지를 가진자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한다. 일하지 않는 자와 일하지 못하는 자가 구분되어야 한다고 한다. 진화하는 백수는 첫째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갈 길을 찾아갈 수 있는자 이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시간에 쫒기지 않아야 진정한 백수라 할 수 있다한다.

 여유에 대해 불안을 느기는 일상인들과 다르게 세상에 쫒기지 않으며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고, 홀로 독야청청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노닐면서 유유자적할 수 있는 여유가 그 전제조건이라 한다. 이런 연유로 건달과 '개인에, 개인에 의한, 개인을 위한' 시간 소비행태에서 벗어나 진화한 어울림의 조건이 형성되었다. 오버해서 백수와 일반인으 경계를 직업의 유무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으로 갈려야 한다고 한다.

2. 부제는 세상을 비추는 기부의 역사이다. 미국의 갑부들은 경쟁적으로 기부를 하려고 난리들인데,  우리부자들은 대가 끊긴 듯하다. 노블리제만있고 책임이란 오블리주는 없으니말이다. 신의 아들이어서인가? 조폭의 힘까지 소유하려할 지경이니, 대단히 갖고 싶은 것이 많은 것은 아닌가? 하물며 문화의 힘이나 윤리를 이야기해서 무엇할까? 독립운동하느라 명문가들은 문화마저 소멸한 듯하다. 그렇게 씨까지 말라버린 우리 문화에 권력에 붙어 이룬 재산의 문화는 어이없이 자기 배불리기에 혈안이 된 것 같다. 얼마나 생명을 연장할지? 의문이 든다. 그런 구차한 돈을 받아야 하는지도 말이다.

다행스런 일들은 중소기업...이들은 사회적기업으로 여기는 듯하다. 사회적책무와 나눔을 같이하는 배려때문에 장수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부자들의 문화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역사와 전통이 전무한 대기업갑부들의 등떠밀린 돈?? ... ...

3. 정규직인 이상 부자다. 그런면에서 나도 부자다. 부자는 씀씀이, 어떻게 쓸 것인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힘으로 축적하며 만들어가야한다. 가진 자는 어떻게 나눌까하는 씀씀이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나의 행동반경에 물쓰듯 쓰는 것이 아니라, 아끼고..그 남는 공간의 쓰임새를 어떻게할 것인가가 몸에 배여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이상, 천만금을 벌어도 늘 가난할 것이다. 로또나 꿈꾸며 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부자들을 저주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에 이책들은 단순한 사고에 일침이다. 두시간에 얻은 깨우침이다.  '백수와 부자'를 다른 각도로 보고 몸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기도 하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