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 6. 정치 무대 - 포퓰리즘의 부상: 포퓰리즘적 국면이란 포퓰리즘이 뻗어 갈 수 있는 상황으로, 특정한 사회 분열이 시작되는 역사적 국면을 말한다. 정치, 경제, 문화의 균형이 흔들릴 때, 사람들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통합이 더 이상 굳건하지 않을 때 생겨나는 국면이다. 이때 전 국민은 ˝사회적 홈리스˝ 신세가 된다. 186/감정들은 고정된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진보적인 감정도, 퇴행적인 감정도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순전히 민주주의적인 감정도 전체주의적인 감정도 없다.....불의에 대한 분노는 좋다고 할 수 있더라도, 외국인을 향한 야만적인 분노는 부정적인 격저이다. 활동하게 하고 연결해 주며 참여하게 하는 긍정적인 감정도 없고, 늘 선동하거나 반대로 늘 움추러들게 만드는 명백히 부정적인 감정도 없다. 감정은 본래 정치적 실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감정은 처음부터 정치적인 것에서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 않았다. 감정은 어느 방향에서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감정은 원료이자 위험이다. 189/슬로터다이크가 분노은행이란 개념을 제시해서 분노라는 원료가 사회 변화를 위한 핵심 원료이자 동력임을 표현했고, 그 분노를 좌파정당에게 맡겼지만, 그 예금을 탕진했다고 한다....좌파 정당만이 감정의 저장고가 아니라, 모든 정당이 감정 은행이다. 그리고 그곳에 분노와 격노만 저장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공포, 희망, 아픔까지 더 많은 감정들이 저장된다. 감정은 채굴을 기다리는 지하자원처럼 그냥 거기 있는 것이 아니다. 감정은 또한 생산되고 재생산되며 갱신되거나 약화된다. 그러므로 감정의 집하와 유통만이 아니라 감정의 생산도 있다. 하나의 온전한 감정 경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감정 경제는 위기에 처했다. 감정을 관리하는 모든 은행들이 예금을 탕진한 것처럼 보인다. 190-191/

사회적 갈등은 단순하지 않고 과잉으로 규정되는데, 왜냐하면 이 갈등들은 나눌 수 있는 것과 나눌 수 없는 것, 이성과 감정, 합리와 비합리로 명확하게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민주주의 정치는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결국 나눌 수 없는 갈등은 나눌 수 있는 갈등으로 완전히 번역되지 않는다. 정치적 평화는 개입을 감소시킬 수 있다. ˝그러나 개입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언제나 나눌 수 없는 나머지가 남아 있게 되고, 이 나머지는 끝나지 않을 정치 논쟁을 반복해서 요구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정치는 나눌 수 있는 갈등으로 번역되는, 즉 나눌 수 있는 문제의 해답일 뿐 아니라 또한 특별히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감정이 걸려 있는 확신, 가치, 정체성, 문화와의 관계 맺기이며, 이 해결할 수 없는 나머지와 관계 맺기다. 198

/2차 세계대전이후 복지국가는 사람들에게 돈만이 아니라 사회적 권리가 있는 시민으로서의 정체성도 제공했다. 얼마나 대단한 권한과 권리 부여인가 가장 약한 사람들도 사회적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되었다. 사회적 안전은 그들의 권리였다. 경제적 통합이 이렇게 상징적 통합이 되었다. 정체성을 제공하는 대단히 거대한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권리를 보증받게 되었고, 이 권리를 통해 존엄성을 갖게 되었다. 199포퓰리즘은 정확히 나눌 수 없는 것에 집중한다. 잃어버린 나눌 수 없는 것, 오늘날 정치적인 것의 중심에 자리 잡은 바로 그 나눌 수 없는 것, 곧 정체성에 집중하는 것이다. 포퓰리즘 전략은 왜 효과가 있을까? 우리가 정체성들이 더 이상 옛 안전 체계를 통해 보장받지 못하는 포퓰리즘적 국면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202/포퓰리즘이 욕망을 실제로 충족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굴욕이 정당화되는 것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익 포퓰리즘이 바로 여기에 들어와서 감정에 상처받은 자들의 변호인을 자처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위로는 엘리트에 대한 공격적인 분노와 아래로는 공격적인 인종 차별을 부추기는 변호인이다. 204

/찰스 테일러가 말했듯이 3세대 개인주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감정을, ‘충만의 경험‘을 추구하고 있다. 이 상황에 맞는 예외적인 인물은 우리에게 충만의 순간을 살 수 있다고 말해주는 인물이다. 우리를 위해 그렇게 살 수 있다고 말해 준다. 이 전형적인 유형이 바로 팝스타다. 정치인 중에도 이런 스타가 있다. 그러한 지위를 자기 소유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스타들은 바로 우리의 대리인이다. 팝스타는 우리를 대리하여 우리를 위해 산다. 우리를 대리하여 우리를 위해 우리가 살지 못하는 삶을 산다. 팝스타는 우리를 대리하여 우리를 위해 즐긴다. 어쨌든 팝스타는 우리가 모든 것을 승인해 준 자다. 208/ 정치에서 심오한 능력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치 경험도, 정치 기획도 필요 없다. 단지 음란한 나르시시즘이 필요할 뿐이다. 공적 공간에서 실현되는 나르시시즘, 트럼프는 자신의 청중을 대리하여 즐긴다. 그들이 실행할 수 없는 것, 그들이 실행하면 안 되는 것을 대리하며 즐긴다. 트럼프는 ‘그들을 위해‘ 어떤 부끄러움도 없이 자기애에 빠진 권능이라는 환상을 향유한다. 208/트럼프에 대한 환호는 단순한 권위에 대한 환호라기보다는 기생하며 즐기는 향유다. 트럼프가 공공의 영역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낼 때, 사람들은 그의 향유를 향유한다. 209

/포퓰리즘은 이 상처받은 이들의 관심 어린 호소에, 나뉠 수 없는 굴욕 같은 감정에 무대를 제공한다. 나뉠 수 없는 것들이 이상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무대를 제공해 준다...이 무대를 우리는 감정공간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210/포퓰리즘 우파는 감정 공간들을 상처, 두려움, 거부감에 맡겨 두고, 이 부정적 열정들이 사회에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바로 우익 포퓰리즘이 이 열정들, 특히 일상에 존재하는 인종주의와 결합시켜서 이를 가장 먼저 정치적인 것으로 생산한다. 왜냐하면 포퓰리즘은 ˝거부감과 정서에 안정된 논의 틀과 사회적 정당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211/가상의 위협에 대항하며 포퓰리즘이 가져오는 것은 파시즘의 경우와는 다르다. 초월적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한 약속도 없다. 포퓰리즘의 모든 것은 오직 지금 여기에서만 작동한다. 이렇듯 타자를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본질적인 포퓰리즘적 상황, 즉 사회적, 정치적 예외 상황을 정당화하고 지속성을 유지한다. 이 상황에서 내면성을 넘어서지 않는 새로운 권위주의 권력이 번성하여, 지금 여기에서 사회를 지속적으로 동원한다. 219

/다원화는 형태와 영향권을 주조할 뿐 아니라 다원화가 거부되는 곳에서도 존재한다. 다원화는 다원화의 저항형태도 주조하여, 저항 형태들에도 다원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렇게 포퓰리즘은 다원화에 반대하는 특별한 방어 형식이 된다. 다원화된 주체들, 감소된 자아들을 통한, 그리고 그들을 위한 방어 형식이다. 222/민주주의 정치는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더해 감정적 합의도 생산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감정을 다루는 정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방식은 긍정적이어야 한다 또한 정체성을 제공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정체성 제공이 단순히 절대자를 규정하는 반대편이 아니다. 포퓰리즘 수업의 결론은 정치가 정체성을 제공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체성을 제공하느냐인 것이다. 225

공유공간 만남광장; 외면적 안전은 더 이상 시대와 맞지 않다. 주의는 개인의 행동 안에 도달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통 참여자들의 개혁이 필요하다. 참여자들은 배려와 주의의 원칙 그리고 함께라는 원칙을 내면화해야 한다...변화는 탈규제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배려심을 가지라는 호소로는 변하지 않는다. 탈규제는 주체의 불안감이 의도적이고 목적의식적으로 만든 생산물이다. 공간 기획자들은 모든 것이 열려 있다고 말한다. 공간의 형성을 통해, 예를 들어 분명하게 편입된 도로 공간을 누락시키면서 개인에게 완전히 의도된 불안감을 생성시킨다. 왜냐하면 이 불안감이 변화된 행동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개인들의 불안함이 보다 안전한 전체 상황을 만든다. 이것이 도로교통법의 역설적 효과다. 230


7.

[ ] 7. 정치적 올바름의 무대- 좌파와 우파의 정체성 정치: 너는 어느 편인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없다. 새로운 질문은 더 나아간다. 너는 누구냐?.....오늘날 우리는 아주 위급한 상황에서 살아간다. 지금은 따라서 사회적 분열 상황을 정확히 규정해야 할 정치적 요구의 시간이다. 냉전과는 달리 지금의 전선은 분명하지도 선명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전선은 단순히 우리 사회의 가장자리에 있지 않다. 전선은 우리 사회를 관통하여 놓여 있다. 더욱이 현재의 전선은 우리 사회를 관통하여 놓여 있다. 더욱이 현재의 전선은 분명하거나 선명하지 않고 또한 극단적으로 복잡하기 때문에, 바로 그래서 상황을 정확히 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240/어떤 피해자의 개념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지에 따라 사회를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회가 어떤 동사와 연결되는지에 따라 분류될 수 있다. 바치다, 인정하다, 그리고 있다. 예컨대 ‘희생양으로 바치다‘라는 표현으로 신이나 조국을 위한 자기희생...전쟁이후 긍정적으로 점유된 피해자 개념이 등장했다. 내가 피해자다라는 발언을 하는 주체의 주체성 회복..페미니즘에서부터 반인종주의까지, 해방으로 가는 왕도라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이 둘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피해자가 있다. 이런 동사 결합은 결코 긍정적 함의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 욕이 특별한 정체성적 특징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이때 피해자는 실존적, 순수한 자신의 존재를 통해 피해자가 된다. 이런 피해자는 인권을 가진 포괄적인 인간-존재의 지위를 얻지 못한다...사회에 이런 피해자 자리가 있다는 것을 이 청소년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확신한다. 더 나아가 이 청소년들에게 피해자의 자리는 개인에게 그냥 배정될 수 있음이 확실해 보인다. 252-254

/사회문제는 순전히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사회 문제의 제기가 숫자를 말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았다. 사회 문제는 처음에 오히려 정체성 제공과 연결되었다. 계급 문제 또한 정체성 문제였다. 단순히 사회 복지의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권리를 갖는 것이 중요했다. 사회 국가와 분배는 처음에는 사람들을 자선의 수혜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리와 자부심이 있고, 사회적 인정을 받는 시민을 만드는 일을 의미했다. 예전에 좌파 정치와 사회 민주주의 정치는 한 사회 안에서 물질적 그리고 상징적 통합을 의미했다. 그러나 나중에 이 가르침은 망각되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 후로 사회 민주주의는 온전히 나눌 수 있는 것에만 집중했다...좌파가 잊은 것은 물질적인 차원이 가져온 그 정체성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것을 포퓰리즘이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274-275 프로레타리아가 사라지고 백인 프랑스인으로, 백인 독일인으로, 백인 오스트리아인으로, 백인 남성으로 다시 돌아가는 전이 과정이다. 아직 백인 남성들의 굴욕 경험의 끝에 도달하지 않았다. 교육, 노동 그리고 엘리트 이외에도 백인 남성들은 반대편에서 또 다른 본질적 의미 상실을 경험한다. 권력자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피해자를 통해서도 그들은 굴욕감을 맛보는 것이다. 281

/다원화된 사회의 만남 구역에는 분명한 정체성을 지닌 헌법 애국주의자들이 아니라 제한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이들은 추상적인 시투아앵이 아니다. 시투아앵이 되기에 이들의 차이는 너무 구체적이다. 이들은 스마트폰을 손에 쥔, 본질적으로 고립된 단자들도 아니다. 이들은 만남을 통해 서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남 구역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하나의 감소가 추가되는 존재‘로 경험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감소의 추가는 자기 정체성이 타인의 정체성에 의해 제한된다는 뜻이다. ‘긍정적인 함께가 아닌 오히려 부정적인 함께에 본질이 있는 새로운 방식의 전체‘로 사회를 완전히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 이 결합은 특수주의들이 서로서로 상대화 하는 곳에 존재한다. 다원화된 주체들의 결합은 그들이 서로서로 경험하는 빠짐 혹은 공제 속에 존재한다. 290


볕뉘.

감정 공간은 늘 생겨나며 그 감정과 유사한 삶의 데이터를 모으고 그리 쏠린다. 감정 경제 역시 변증법의 사유 맥락에서 출구를 찾아 간다. 그 흐름들이 향하는 곳들에 예민해져야 하며 구별되지 않는 갈등을 미리 해결하는 것이 정치이기도 하다. 그 길목에 서성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불안을 체험해서 서로 다른 나를 경험하게 만드는 일이다. 서로 다른 나가 되게 하는 일이다. 차별에 명민해지는 것, 차이는 낳는 불합리가 아니라 차이나 낳는 감정들에 밝아지는 것 닫힌 나가 아니라 하나 빠진 나로 관계맺기를 하거나 또 다른 사건들이 생겨야 감정도 이야기도 그 사이에 오밀조밀....또 다른 길을 걸어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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