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

[ ] 사과나무 아래 펼쳐놓은 보자기에는 사과만 떨어지듯, 별 아래 펼쳐놓은 보자기에는 오로지 별의 가루만이 떨어질 뿐이다. 205

[ ] 첫 장을 읽는 동안 아무런 매력을 발견할 수 없어 책장에 꽂아둔 채로 오래 묵은 책들, 흥미진진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두번 세번 읽고 싶은 문장이 없는 책들, 저자의 말투가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인문사회학서들, 그런 책들은 이 방 바깥으로 밀려나가 현관에 놓였다가 사라진다.....어떤 책을 남기고, 어떤 책을 버릴 것인가. 기준은 한가지다. 두번 읽고 싶은가? 207

[ ] 어른은 부끄러움 뒤에 온다. 232

[ ] 1962년생 고객, 그는 김소리에게 부끄러움을 가지라고 말했지만 당시에 김소리가 가진 것은 수치심이었고 경멸감이었지. 그는 김소리에게 어른을 요구했지만 그 자신도 김소리에게는 어른이었으면서, 그는 김소리의 아무것에도, 김소리의 어른 됨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비난만 하고 갔어. 그의 어른 됨은 김소리를 관찰하고 김소리를 판단하고 사후에 다가와 비난할 때에만 유용하게 작동했는데, 어른 됨이 그런 것이라면 너무 편리하고 야비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느라고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결국엔...240

[ ] 우리가 무슨 관계인가.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를 마중 가는 사람. 20년째 서로의 귀가를 열렬히 반기는 사람, 나머지 한 사람이 더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순간을 매일 상상하는 사람, 서로의 죽음을 가장 근거리에서 감당하기로 약속한 사람. ...질문을 받을 때마다 ‘친구‘나 ‘친척‘이라고 대답한다. 그 대답이 가장 간단하고 간편하기 때문은 아니고 그것이 우리 이웃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260

[ ] 토요일 오전 열한시라는 묵자의 세계를 사는 사람은 묵자를 읽지 못하는 누군가가 용산역 1번 플랫폼에도 있을 수 있으며 그가 동행인 없이 홀로 서서 열차를 기다릴 수도 있는 상황을 가정하지 않는다. 보는 이는 보지 못하는 이를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는 이가 왜 거기 있는가? 그는 고려되지 않는다 275

[ ] 그것이 기본값이라는 것을 알게 된 칸나미 유이찌의 전생은 공허에 시달리다 자살하지만 칸나미 유이찌라는 현생은 티처를 죽이러 돌아간다.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티처에게 응전하는 것은 탈출할 수 없었기 때문 아니겠느냑 서수경은 말했다. 탈출이 불가능한 세계의 파일럿은 파더/티처/기본값을 죽이러 돌아갈 수밖에 없다. 탈출이 불가능하다면 여기서 날 수밖에, 여기서 마찰하는 수밖에 없어. 292

[ ] 혁명이란 무엇인가. 황정은은 그것이 번개처럼 크고 단절적인 절대적 힘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진공관 속의 빛과 소음을 발견하는 일이라 말한다. 어떤 사소한 사물조차 ˝세상에 그거 한대뿐˝이라는 유일성을 담고 있음을 인지한 자라면, 그 안에는 결코 우습게 볼 수 없는 뜨거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325, 326

볕뉘.

까뮈, 시지프스가 읽힌다. 무리하지 않고 층층히 켜로 있는 이야기의 심지를 제대로 밝혀낸 듯하다. 책 속의 책들도 마음길이 많이 간다 싶다. 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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