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반대한다

[ ] 운동에 반대한다: 일상적인 운동에 대해 덜 점잖지만 더욱 강력한 정당화는 날씬함이다. 인체 기계의 건강과 그것이 지닌 자본을 유지할 의로운 책임보다는 비열한 의지를 훈련하는 것과 연관된 활동이다. 26/ ˝당신은 저주받았다. 저주받았다. 저주받았다.˝ 요란한 헬스장에서 끝도 없이 계속되는 리듬으로 기계들이 내는 소리다. 한때는 건강의 권위와 우리 몸과 생물학적 과정의 전시가 친절해 보이고 심지어는 해방해주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질병을 이겨내고 내숭 떠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 사람들을 몰아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화살은 과녁에서 돌려지고 일부는 우리 사생활를 관통해버렸다. 33

[ ] 섹스 아이들의 오후: 개혁가들이 성을 삶에서의 중요성이 때문이 아니라 그 사소함 때문에 해방했다면 더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 성은 생물학적 기능이고, 그 까닭으로 누구를 핍박할 근거가 못 된다. 성은 진리와 무관하니, 기초적이고 생물학적이고 사적인 것으로 사람들에게 압박을 가하면 안 된다. 그렇게 우연적인 근거로 사람을 핍박하면 안 된다. 사람들이 자기 성을 부정하도록 강요하거나, 그것을 밝히도록 강요하지 않고 그들을 내버려 둬야 한다.˝50/섹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하는 것이다. 60 섹스를 덜 부각하고 젊음을 폄하하는 일이 계획적인 재평가 조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의보다는 지성, 모험보다는 자율성, 활력보다는 기품, 순수보다는 세련미, 그리고 어쩌면 참신한 경험들보다는 경험에 대한 확인 또는 반복에 대한 추구처럼 성년기의 가치들을 선호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62

[ 1 ] 삶의 의미 1: 경험이라는 개념; 급진적 방안은 경험의 개념에 대항해 특별한 종류의 경험을 확장시켜 이용하는 것이다. 끝없음과 자발적 개시를 새롭게 보장함으로써 경험의 양에 대한 필사적인 추구를 극복한다. 이 방안들은 특별한 사건의 우연한 발생으로부터 경험을 풀어줄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낸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신이 살고 있는 매 순간에 경험이 일어나도록 노력한다. ‘인생‘이 그냥 발생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원해서 발생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대는 우리에게 유효한 급진적 방안 한 쌍을 남겼다. 바로 심미주의와 완벽주의이다. 131/심미주의는 모든 대상을 예술 작품 대하듯 보라고 요구한다. 예술이 근본적으로 감정과 열정을 각성시키기 위한 기회라고 믿는다. 당신은 예술 작품을 경험한다. 그 속으로 들어간다. 그림 속의 인물들을 상상하고, 내용만큼 형식도 경험의 대상이 되어 그 색채와 형태를 음미한다. 당신은 모든 것을 느끼거나 맛본다. 그것을 갈망하고, 그것에 압도당하고, 자신을 자극시키거나 만족시키거나 역겹게 하기 위해 그것을 증폭시킨다. 캔버스를 끝까지 짜내려고 머릿속에서 그것을 꼭 비튼다. 수련법은 바로 이런 방법으로 나머지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134/심미주의에 숙달된 사람에게 경험은 드물지 않다. 늘 가능하다. 경험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가장 추한 사물에서도 경험을 가져오는 것이 플로베르식 심미주의의 특징이다. 추한 것을 갖고도 그런 경험을 끌어낼 수 있다면 당신에게는 결단코 경험이 부족할 날이 없을 것이다 . 아름다운 사물이라면 덤이다...˝어떤 추함 속에 발견되는 도덕적 밀도가 있다.˝ 그 누구도 감히 그런 것들을 파괴하거나 바꾸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이 플로베르식 심미주의자의 독특한 도덕이다. 136 완벽주의 역시 간단한 단계가 있다. 모든 것을 하나의 예인 듯 바라보라. 예라 함은 그저 그것이 구현하는 생활 방식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줄 뿐이다. 이 각각의 예들이 경험하게 되면 당신의 자아를 소환한다는 것을 이해하라....어떠한 예로든 당신 삶을 변화시키라는 부름을 받고 자아가 반응한다면 당신은 삶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일단 변하면 다시 바꿔라.....고로 완벽주의에 완벽은 없다. 경험과 상응의 과정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139/심미주의와 완벽주의는 우리가 경험의 세게에 들어가는 방식을 개발하여 그것에 마음을 쓰게 하고, 알고 있는 불활성 물질에 직접 과도함을 추가하게 한다. 폭넓은 우리 정신에 진정으로 상응하는 것에 이르는 그 너머로 가는 유일한 방도는 위로 높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그 안으로, 그 바로 위로 가는 것이다.143

[ ] 삶의 의미 2: 직감적 법제화 또는 재분배; 프로프리움proprium 진정한 재산은 당신에게 고유한 것이다. 당신이 손을 댄 것, 꼭 당신에게만 고유한 것으로, 다른 사람이 소유한다면 그 상태가 변하는 것을 뜻한다. 당신 옷, 당신 거주지, 당신이 만지고 쓰는 물건들, 당신이 개인적으로 밟는 땅, 소유물은 속성처럼 되어버리는 소유 상태 242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에 쓸 수 있는 금액보다 연간 수입이 더 많을 때, 그럴 때 우리는 더 이상 진정한 재산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프로프리움이 아니라 부적절하고 낯선 것을 다루고 있다. 243/부자들이 부자일수록 모두가 형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세상의 딕 체니 같은 이들이 자기 말고 다른 모든 사람들의 저녁을 먹어버리기 때문에 비만한 것이다. 경제 하향 침투설은 부양의 철학이다. 부자들이 먹으면 먹을수록, 입안에 빵 조각을 처넣으면 넣을수록, 그들 밑에 있는 나머지 사람들인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걸 더 많이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것이 효과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 자격 없는 자들의 위를 통과하고 그들을 먼저 살찌우며 그들에게 과다한 영양분을 전달하는, 이미 소화가 반쯤 되어 있는 거라는 사실은 잊을 수 없다. 우리가 놀라워하는 그들의 기념비들도 노폐물로 구성되어 있다. 왜 배설물로써 세상을 얻는가? 돈이 우리한테 올 때 부자를 거쳐 오지 않아도 된다면 왜 우리가 세상을 원래의 도덕적인 형태로 취하지 못하겠는가? 248

[ ] 삶의 의미 3: 마취적 이데올로기; 에피쿠로스는 쾌락이 삶의 목표지만 그 쾌락을 고통의 끝과 부재로 정의했다. ˝우리는 쾌락이 부재하여 고통스러울 때만 쾌락이 필요하고, 고통스럽지 않으면 더 이상 쾌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에피쿠로스학파의 이상은 아타락시아, 평정, 즉 태연함과 무심함이었다. 이러한 태연함은 피한다고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할 수 없는 경험에 대해 올바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는 것이었다. 322/금욕주의에서 욕구를 통제하는 방법은 쾌락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쾌락에 대한 느낌을 정신이 경험을 단련하는 뿌리로서 생각한다. 에픽테토스의 금욕주의는 세상을 당신에게 달린 일과 달려 있지 않은 일로 나누라고 한다. 그리고 남의 일,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결코 욕망도 혐오도 없도록 욕망과 혐오감을 제어해야 한다. 당신은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절대로 욕망해서는 안 된다. 명예도, 사건도,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이나 반응도, 자기 몸이 겪은 모든 좋은 경험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질병, 죽음, 또는 자기 몸이 겪는 나쁜 경험처럼 자신의 선택 없이 당신에게 닥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정신적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 아파서 신음할 수 있지만, 그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 사태의 운명은 당신이 아닌 자연에 달려 있다. 324

볕뉘.

1. 맘껏 먹고 건강을 유지하면 안될까. 살을 빼려고 굳이 운동할 시간을 들여야 하는가. 카프카의 단편소설 자신의 몸에 죄목을 새겨 사라지는 인간들. 숫자강박에 시달리는 건강좀비를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조금 속을 비워 정신을 또렷하게 하려고 두끼를 먹은지 한 달이 지나간다. 마음 껏 먹는다는 점에서. 아무튼, 비건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 책도 이렇게 시작하는 거라한다. 또렷해지고 싶다.

2. 예술로서의 삶. 완벽주의 함께 설명을 해낸다. 말미 비경험까지 섞어 읽어볼 만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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