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와 대화

[ ] 현재는 언제나 현재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네. 시인의 마음속에 날마다 솟아오르는 사상이나 느낌은 그 모두가 표현되기를 원하고 또 표현되어야만 하네. 그러나 보다 큰 작품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가득 차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모든 사상을 등지고 생활 자체의 안락함까지 잃어버린느 걸세. 단 하나의 커다란 전체를 정리하고 완성하는 데 필요한 긴장과 정신력의 소모를 생각해 보게. 게다가 그것을 막힘없이 흐르는 시냇물처럼 적절하게 표현하자면 또 얼마만한 정력과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생활환경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일단 전체를 잘못 파악하면 모든 노고는 허사가 되고 말지. 더 나아가서 그처럼 규모가 큰 대상의 경우에는 개별적인 부분에서 그 소재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전체적으로 여기저기 결함투성이가 되고 마네. 그러면 비난을 받게 되겠지. 그리하여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시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많은 노력과 희생에 대한 보상과 기쁨이 아니라 불쾌함과 정력의 쇠퇴일 뿐이네. 반면에 시인이 날마다 현재를 염두에 두면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을 한결같이 신선한 기분으로 다룬다면 무언가 좋은 걸 만들 수 있고, 때로는 잘 안 된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모든 것을 잃지는 않는다네. 57, 58

[ ] 세상은 너무나 넓고 풍부하며 인생은 너무도 다양하기때문에 시를 쓸 계기가 모자라는 일은 결코 없어. 하지만 모든 시는 어떤 계기에서 쓰여야 하네. 말하자면 시를 쓰는 동기와 소재가 현실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거지. 그 때마다의 특수한 경우가 보편적이고 시적이 되는 것은 시인의 손길을 거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네. 이런 의미에서 나의 모든 시는 그 어떤 일을 계기로 쓰였으며, 그 모두가 현실에서 자극을 받고 현실에 그 뿌리와 기반을 두고 있어. 그러므로 나는 허공에서 지어낸 시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네. 59

[ ] 근래의 비극 작가들에게서 심혼과 어느 정도의 문학성마저 부정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경쾌하면서도 생생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런데도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게 아닌가.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 나는 그들을 ‘주제 모르는‘ 작가라 부르고 싶네. 74

[ ] 시와 관련하여 자네에게 두 가지만 말하지. 자네는 지금 개별적인 것을 포착하기 위해 예술 본연의 높이와 무거움으로 돌진해야 하는 그런 지점에 서 있네. 이념으로부터 벗어나자면 반드시 그래야만 해. 자네는 재능도 있고 상당히 발전된 단계에 있으니 이제는 의무적으로 반드시 그래야 하네. 80/특수한 것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것 또한 예술 본연의 생명이라네. 보편적인 것에 머무른다면 누구나 우리를 따라할 수가 있어. 하지만 특수한 것은 그 누구도 모방하지 못한다네. 왜냐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특수한 것이 공감을 얻지 못할까 염려할 필요는 없어. 모든 특징은 그것이 아무리 고유한 것이라 할지라도 보편성을 가지며, 돌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표현대상도 마찬가지로 보편성을 가진다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반복되며, 이 세상에 단 한 번만 존재하는 건 없기 때문일세. 81

[ ] 대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나. 대상이 없는 예술론은 아무것도 아니네. 대상이 적합하지 않다면 그 어떤 재능이라도 허사야. 그리고 현대 화가들에게 품위 있는 대상들이 부족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현대의 회화가 모두 정체되고 있는 걸세. 우리 모두가 그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 자신도 이 현대성이라는 걸 부정할 수가 없었네. 85

[ ] 이렇게 하시면 안 될까요.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마치 그림을 설명하면서 그동안 거쳐왔던 단계들을 보여줌으로써 지금 눈앞에 완성되어 있는 것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방식 말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하고 괴테가 말했다. 그림의 경우와 사정이 다르다네. 왜냐하면 시라는 것도 역시 말로 되어 있는 이상, 말을 덧붙인다면 다른 말이 죽고 마는 걸세. 89

[ ] 이 시는 전체적으로 독특한 구석이 많아서 선생님의 어떤 시와도 비슷하지가 않습니다. 그러자 괴테가 말했다. 그것은 그런 연유네. 말하자면 나는 한 장의 카드에 거금을 걸 듯이 현재에다가 모든 것을 걸었네. 그러고는 그 현재를 과장 없이 가능한 한 높이려고 한 것일세. 98

[ ] 생각한다는 일이 이렇게 어렵지만 않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모든 생각은 생각 그 자체에게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아. 다만 천성적으로 정직하다는 것이 중요하네. 그래야만 훌륭한 착상들이 마치 신의 아들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언제나 우리들 앞에 나타나서. ‘우리 여기 있네!‘하고 소리쳐 부를 걸세. 119

[ ] 불멸이라는 이념에 몰두하는 것은 고상한 신분의 사람들이나 할 일이며 특히 아무 할 일도 없는 여자들의 일이라네. 그러나 이미 이 세상에서 무언가 제대로 된 것을 이루려고 하면서 날마다 노력하고 투쟁하고 영향을 미쳐야만 하는 유능한 사람은 내세의 세계는 되는대로 내버려 둔 채 이 현세에서 유용한 일을 찾아 활동하는 법이지. 더군다나 불멸성이라는 관념은 현세에서의 행복이라는 점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한 것이네. 내 감히 말하지만 그 선량한 티트게의 운명이 보다 좋았더라면 그는 보다 나은 사상을 가졌을 걸세. 126

볕뉘

니체가 최고의 교양서라고 한 괴테와의 대한 1편을 읽고 있다. 시와 예술에 대한 대목을 읽고 있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대목들이 많다싶다. 쭉 읽어나가게 될 듯 싶다. 좋은 참고서이다.

그리고 토마스 만의 중편 베네치아의 죽음도 읽었다. 예술가의 삶. 구스타퍼 말러를 주인공으로 한 내용인데 미세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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