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감정의 철학

[ ] 차이의 소멸. 이 질서의 위기를 맞아 하나의 숨겨진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전원 일치의 폭력을 위한 공물. 분신처럼 너무도 닮아 버린 구성원들 속에서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미미한 징후를 근거 삼아, 한 사람의 제물(희생양)을 가려낸다. 분신과도 같은 서로를 향하던 악의와 폭력이, 순식간에 이 불행한 제물에 쏠린다. 이렇게 전원 일치의 의지에 따라 공물이 성립한다. 공물을 계기로 집단은 새로이 차이의 체계를 재편하고, 위기를 교묘하게 모면한다. 58

[ ] 현실 사회는 권력 구조로 점철되어 있고, 너희는 이미 그 사실을 깨닫고 무의식적으로 그 예행연습을 하고 있노라고,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인간은 평등하다느니 기본적 인권이라느니 하는 입바른 소리를 그저 이념에 불과하며 (이념적으로는 훌륭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동떨어진 아수라장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가해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내 몸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에 결국 가해자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가르쳐 주는 것이다.; 열 살쯤 먹었으면 이런 가혹한 권력관계는 알고도 남는다. 60

[ ] 차별 감정으로서의 혐오가 강한 사람은 주어진 상황에 둔감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몹시 민감한 사람들이다. 그중에서 ‘정상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이 강하고, ‘의례적 무관심‘을 가장해 자기 주위에 이상한 사람이 없는지 탐색해서 찾아내고 고발하는 사람이다...... 관련 요소는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차별 감정이 심한 사람도 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에게 혐오감을 가진 사람들 이상으로 ‘정상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이 강하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도덕적 욕구가 높고, 그렇기에 타인의 부(비)도덕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공격적으로 비난을 가한다. 61

[ ] 차별 감정이 강한 사람이란, 일반적으로 남을 싫어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감정에 따라 남을 미워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고 하겠다. 또한 관념적으로 사람을 싫어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이며, 어떤 사람을 향한 자신의 혐오감에 대한 자기비판 정신이 없는 사람이다./ 선량한 약자들 역시, 약자 특유의 지극히 비열한 방법으로 차별 문제를 흐리고 있다. 그들은 상처 받기 쉽고 약한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맞추라고 요구한다. 자신도 가급적 타인을 싫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는 오로지 자신이 타인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아서이다. 이들은 미움을 받으면 더 이상 살아갈 기력도 없을 정도로 침울해진다. 그래서 어떻게든 미움 받고 싶지 않다는 강한 바람을 품고, 자신은 미움 받고 있지 않다고 필사적으로 믿는다. 그래서 이곳에는 자기기만이 꿈틀댄다. 71,72

[ ] 미움 받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 극단적으로 강한 사람은 반성해야 한다. 이는 미덕이 아니라 그저 인간으로서 미성숙할 뿐이며, 오히려 사회에 끊임없이 해악을 끼친다. 인간이란 부조리하게 남을 미워하는 존재이니,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우리는 타인으로부터 (부조리하게) 미움 받는 것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야하며, 그러한 저항력이 있는 사람만이 현실적으로 차별 감정에 맞설 수 있다./인간의 위대함은 악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선을 갈구하는 데 있으며, 남을 속이고 상처주고 이용하고 파괴할지언정 ‘상냥함‘과 ‘배려‘를 완전히 버릴 수 없는 데 있다. 이러한 인간의 다이너미즘을 가르쳐야 한다. 72

[ ] 나치스가 대중의 마음을 조작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유대인의 의지가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과대 선전한 덕분이었다. 이는 유대인에 대한 ‘공포‘와 연결된다. 경멸의 배후에는 공포가 있다. 75

[ ] 권위주의적 성격과는 반대되는 요인을 가지면서도 차별의식이 강한 사람이 있다. 차별 문제에 몰두하며 피차별자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듣는 사이에 ‘무슨 수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가해자와 피해자로 양분하는 지극히 단순한 이항 대립을 적용하고 그 생각을 구축해 나간다. 그들 역시 ‘역차별‘이라는 차별 의식이 강한 사람이다. 복수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으며, 논리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대단히 공격적이다. 80

[ ] 마녀재판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마녀‘를 장작불에 던졌던 사람들, 히틀러 정권 아래에서 유대인 박멸 연설을 들으며 환희로 가득 찼던 사람들, 그들은 극악무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놀랄 만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자기비판 정신‘과 ‘섬세한 정신‘이 철저히 결여된 ‘선량한 시민‘이었다. 81

[ ] 왕따의 구조를 살폈을 때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균질적인 사람들의 집단으로 이루어진 현대 일본에서는, 고상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고상하지 않은 타자를 만들고, 그 사람들과 비교함으로써 자신의 불안정한 고상함을 확고히 하려고 한다. 90

[ ] 자기 안에 깃든 악을 타인에게 투영하는 치밀한 투영이 선행되어 차별하는 이들의 죄책감을 없앰으로써, 차별은 양심의 가책 없이 당당하게 실행도고 한층 가혹해진다. 극악무도한 사람이 아닌, 모든 도덕관념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퇴폐주의자가 아닌, 오히려 죄책감이 강하고 소심하고 선량한 시민이기에, 차별 감정으로서의 경멸에 매달린다. 91

[ ] 차별 문제의 어려움은자기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싶고, 우월감을 느끼고 싶고, 더 좋은 집단에 소속되고 싶다는, 즉 ‘보다 나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단단히 결합되어 있는 것처럼 ‘좋은 점이 나쁜 점을 뒤에서 받치고 있다‘는 데 있다. 차별을 없애려면 악을 없애면 된다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 차별 문제는 인간의 마음속에 깃든 ‘악‘을 잘 파악해서 퇴치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차별 문제는 우리 인간의 발전하고자 하는 마음과 맞닿아 있다. 105

[ ] 칸트는 자신과 타인 안에 있는 ‘인간성‘을 존중하라고 했다. 인간의 동물적 측면을 포함한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그 자체로 존중하라는 말이다.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존중하라는 뜻이 아니라, 이성적 존재이면서 동물이기도 한, 대단히 불안정한 인간 존재를 존중하라는 말이다. 배설이나 성교 같은 동물성이 그대로 노출되는 상황일수록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117

[ ] 지적장애인이라면 약자이자 피차별 후보자이기에 현대사회에서는 정중하게 보호 받는다. 그런데 단순히 학습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다. 이러한 부조리 앞에서 어쩔 수 없다며 포기하는 수밖에는 없다. 철학자는 이러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이 거대한 부조리를 건너뛴 채, 장애인 차별이나 여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같은 전형적인 차별 문제만을 다루는 한, 그 문제에 아무리 열정을 쏟는다 한들 섬세한 정신을 지녔다고 할 수 없다.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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