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수석 입학·졸업 → 서울대 의대 편입

[중앙일보   2007-02-27 04:12:55] 
[중앙일보 권호 기자] 부산 과학고 재학 때부터 각종 과학경시대회 금상을 휩쓴 재원, 고등학교 2년 만에 조기 졸업, 포항공대 수석 입학.수석 졸업(화학과), 제1기 대통령 과학 장학생….

14일 열린 포스텍(옛 포항공대) 졸업식에서 학부 수석 졸업자의 영예를 차지한 김영은(22.여.사진)씨. 22년의 짧은 이력만 봐도 '한국 과학계의 미래'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김씨는 졸업과 함께 실험실을 뛰쳐나왔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다. 그는 서울대 의대 편입시험에 합격해 다음달부터 본과 수업을 듣는다.



왜 '잘 나가는 과학자'의 꿈을 접었을까. 기자는 포스텍 수석 졸업자가 서울대 의대로 옮겼다는 얘기를 듣고 김씨를 접촉했다. 26일 낮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날 수 있었다. 김씨는 "이공계에선 박사 학위를 따도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공계 위기는)우수한 인재가 오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비전을 제시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진단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지금까지의 경력만 보면 과학자로 대성할 가능성이 큰데.

"교수님께서 유학만 가면 어렵지 않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고, 교수직도 개런티(보장)가 되는 길이라고 말해주셨을 때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초과학자가 되겠다는 미련을 버린 지금은 인체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과학자 꿈은 어떻게 가지게 됐나.

"중학교 때 만난 과학선생님 영향이 컸다. 칠판에 쓰고 외우는 과학이 아니라 비커와 스포이트를 이용해 직접 실험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던 호기심이 과학자의 길로 이끈 것 같다."

-대학생활은 어땠나.

"1학년 때부터 3학년까진 생화학 공부에 빠지면서 과학자의 길을 차근차근 밟았다. 그러던 중 연구실의 선배들을 보면서 회의가 들었다. 유명 저널에 논문을 실으려고 연구하는 것 같았다. 뛰어난 과학자가 아닌 유수 대학의 교수가 목표였다. '연구는 수단에 불과하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실망하기 시작했다."

-이공계의 위기라고 하는데.

"우수 학생이 몰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학부 졸업하고 일반 기업에 취업하면 허드렛일이나 한다. 화학과는 설거지(실험기구 청소), 공대는 공장 관리를 맡는다고 자조 섞인 말들을 한다."

-박사가 되면 다르지 않겠나.

"박사를 따도 마찬가지다. 진급에 한계가 있고, 이른 나이에 잘릴까봐 걱정하는 선배가 많다."

-실험실의 분위기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의 실험실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놀아도 연구실에서 놀아야 한다' '아파도 쉰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게 불문율이다. 효용과 창의성을 기대하기 힘든 풍토다."

-교수들은 어떤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교수가 왕'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된 것 같다. 학생을 '내가 성장시켜야 할 인재'라고 감싸는 게 아니라 부리는 존재로 보는 듯하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며 가르쳐 주기보다 복종을 강요할 때가 많다. '대학원생은 군인과 똑같다'는 말도 있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권호 기자의 블로그
홍세화칼럼
한겨레 홍세화 기자
» 홍세화 기획위원
인터넷 토론의 댓글에서 익명성이 주는 솔직함은 대부분 이유 없는 반대로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자주 듣는 말은 “그렇게 한국사회를 비판하려면 프랑스로 돌아가라”는 것인데, 아내도 은근히 돌아가기를 바란다. 아이들과 함께 살려는 희망도 담겼지만, 사람 관계가 차갑고 팽팽한 것에, 소유로 삶을 평가하는 물신주의 가치관에 질린 탓이 크다.
 
대부분의 한국사회 구성원이 일생 동안 대학입시와 취직시험 때 두 번만 긴장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물신주의 가치관에 영합한 결과다.
내면세계를 풍요로우면서 정교하게 하려고 긴장하지 않으며, 사회와도 긴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물질세계에 관심을 두며, 그것으로 다른 사회 구성원과 비교하고 경쟁한다.
핵가족 단위의 가족 사이를 벗어난 사적 인간관계가 차갑고 팽팽한 것은 다른 사회 구성원이 서로 연대하면서 더불어 사는 대상이 아니라 비교·경쟁의 대상으로만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가 강요하는 긴장에서 자유롭게 해준다고 믿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물질이며 소유다. 이제 돈은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대신 유일한 해방자가 되었고 초등학생들이 거침없이 장래 희망을 부자라고 말한다.
 
청소년들은 사적 이해관계에서 영리함을 넘어 영악하다. 반면에 사회에 대해서는 거의 바보 수준이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몰이해는 주체적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없다는 뜻인데, 그런 문제의식조차 갖고 있지 않다.
내가 겪은 유럽 청년들은 이와 반대다. 사적 인간관계에서는 무척 소박하지만, 사회에 대해서는 비교적 비판적 안목을 가졌다. 그들이 토론을 즐길 수 있는 것도 각자 나름의 생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교육과정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사회 안전망이 허용한 사회 분위기,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과도 연관된다.
 
지난 여름 한 고등학생이 스페인 여행을 떠났다가 병원 신세를 졌다. 수술을 받아야 했고 일주일이나 입원했다. 모든 게 무상이었는데, 의사와 간호사들이 무척 친절했다고 전했다. 무상인 곳에서 사적 인간관계가 따뜻한데, 유상인 곳에서 사적 관계가 따뜻하지 않다. 이 모순 같은 점은 예컨대 어떤 과정을 거쳐 의사가 되는가를 살펴보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의사들은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승리하고 오랜 수련 기간에다 많은 돈을 들여야 하므로 그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특권의식과 보상의식이다. 스페인 의사는 교육과정에서 형성된 연대의식과 함께 스페인 사회의 비용으로 의사가 될 수 있었기에 사회환원 의식을 가질 수 있다. 이처럼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는 서로 맞물려서 사회에 작용한다.
 
가끔 시(詩)에서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찾을 수 있을 뿐, 대학이나 종교 부문에서도 소인배들이 판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사회 구성원의 의식이 바뀌어야 제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만, 제도 변화는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계층간 소득편차가 심한 위에 국민 부담률이 25% 수준인 나라에서 가증스러운 세금 폭탄론을 넘어 사회 공공성의 가치를 구체화하는 임계점은 언제 도달할 수 있을까? 민주공화국의 새 대통령을 뽑는 대선의 해, 정치의 계절은 또다시 찾아왔고 누구나 2만달러 시대를 말하는데,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이 오래 전부터 실현해 온 제도를 새삼 제기하는 것은, 그것이 민주공화국 정신의 기본 요구이기도 하지만 이 천박하기 짝이 없는 사회의 가치관을 바꾸어야 한다는 간절함 때문이다.
기획위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