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수집가의 여행
[ ] 어머니는 어디든 다시 돌아올 사람처럼 여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을 다 보려고 안달하기 쉬운데 그러면 오히려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다음에 볼 것을 남겨 둬야 해. 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를.> 19

[ ] 가끔 평범한 목격자가 정책 분석가보다 더 귀하다. 선입견 없는 아마추어가 진실을 더 제대로 본다. 맞춤 양복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21

[ ] 나는 영국에서는 교육이 야망에 떼밀린 필수 활동이 아니라 즐겁게 누리는 사치로 간주되곤 한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깨우쳤다. 계급으로 나뉜 사회에서는 실력주의의 지배력이 미묘하다는 사실을 이전에는 몰랐다. 푹푹 끓인 음식이 왜 그렇게 많은지도 몰랐다. 한 땅에서 수백 년을 이어 노동해 온 집안들이 품는 자신감을 몰랐고, 영국인은 다급한 진심을 반쯤 가리고자 유머를 우아하게 사용하곤 한다는 사실도, 나라 전체가 영속성이라는 든든한 습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영국인 친구들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을 읽지 않았다는 데 놀랐고, 나는 친구들이 좋아하는 시인들을 이름도 몰랐다는 데 놀랐다. 우리는 정녕 내 예상보다 공통점이 더 적은 공통의 언어로 나뉜 두 나라였다. 나는 영국의 모든 곳에 스민 위풍당당함을 사랑하게 되었고, 즐거움이 성공만큼 중요하다는 새 신념을 사랑하게 되었다. 뱅크 홀리데이와 오후의 티타임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종교가 심판하는 것이자 늘 재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고상하고 의례적인 것이라는 점이 좋았다. 영국인은 미국인보다 훨씬 더 열심히 여행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여행지에 흠뻑 녹아들 줄 아는 영국인의 태도는 나로 하여금 이 책에 기록된 여정을 시작하게 만든 한 요인이었다. 25

[ ] 희망이란 행복한 유년기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 수혜자에게 불가피하게 뒤따를 트라우마를 견딜 힘을 갖춰 준다. 그것은 또한 원초적 사랑처럼 경험된다. 이전까지 비교적 비정치적이었던 내 삶은 모스크바에 체류하는 동안 궁지에 몰린 진실성이 갖기 마련인 절박함을 띠게 되었다. ..비록 근거없는 희망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어도, 그때 그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후 내 모든 생각을, 내 모든 그림을, 내 모든 존재를 결정지었어요...32

[ ] 집에서는 하루하루가 경계 없이 흐릿하게 이어지기 쉽지만, 낯선 환경에서는 하루하루가 삶을 또렷하게 만들어 준다. 테니슨의 시 속에서 율리시스는 이렇게 말했다. <여행을 그만둘 수는 없다: 다 마셔 버리리라/삶의 마지막 찌꺼기까지> 나는 여행이 시간을 멈추게 하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현재에 머물도록 만들기 때문에 좋아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상은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한 쪽만 읽는 것이다.>라고 말했다는데, 나는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다 읽고 싶었다. 나는 길을 나섰다. 이 세상에 벌어진다면 좋을 것 같은 변화들을 목격하고자. 34

[ ] 나는 개입과 상호성이라는 문제를 갈수록 더 유념하게 되었다. 모든 새로운 관게는 양쪽 모두에게 혼란을 준다. 그것을 피하거나 최소화하려고 애쓰는 대신, 그 혼란에 자신을 더 활짝 열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이례적인 상황에 적응하는 일은 본디 잘하는 편이지만, 그러면서도 그들과 내 차이를 인식해야 했고 그들도 그 차이를 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들과 같은 척 꾸며서는 그들에게 녹아들 수 없다. 서로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그리고 우리 삶의 방식이 그들의 방식보다 어떤 면에서든 더 낫다는 가정을 접어 둘 때, 비로소 녹아들 수 있다. 36

[ ] 여행은 자신을 넓히는 연습인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알아보는 연습이다. 여행은 우리를 증류하여, 맥락을 떠난 본질만을 남긴다. 완전히 낯선 장소에 몸을 담갔을 때만큼 자신을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경우는 또 없다. 39

[ ] 장소를 알아 가는 것은 사람을 알아 가는 것과 같다. 그것은 심리를 깊이 이해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나눈 소통을 이해하려면, 먼저 상대를 이해해야 한다. 내게는 조리 있는 논리가 상대에게는 부조리할 수 있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려면,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 맥나마라는 말했다. <우리는 전쟁의 언어로 논쟁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보편 언어인 줄 착각했던 거죠.> 42

[ ] 원초적이면서도 진정성이 없기는 쉽지만, 거친 것을 두려워하면서 진정성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빅토리아 시대의 위대한 에세이스트 존 러스킨은 열차 여행의 효율성이 여행의 즐거움을 없앴다고 불평하면서 이렇게 썼다. <열차 여행은 다른 장소로 그냥 <<보내지는 >> 것이다. 짐짝이 되는 것과 별다를 바 없다.> 내가 불편함을 즐기는 취향을 기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불편함을 즐기는 것보다는 모험을 즐기는 편이 좋았지만, 후자라면 멋진 시간을 보내게 되고 전자라면 이야깃거리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차츰 어느 쪽에든 마음을 열게 되었다. 44, 45

[ ]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개인이 각자 야망을 이룰 기회가 있지만 자유롭지 못한 사회에서는 그런 선택지가 없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더 거창한 야망이 허락되기도 한다.47 자유가 정체와 연관되는 경우는 드물다. 자유는 거대한 변화의 시기에 단발적으로 등장한다. 자유의 한 구성 요소는 낙관주의인데, 낙관주의는 앞으로 벌어질 일이 지금 벌어지는 일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동반한다. 변화는 종종 무모하다. 종종 끔찍하게 잘못된다. 분위기에 짜릿한 자극을 가하지만 종종 그 짜릿함이 실현되지 않고 소실되는 결과만을 낳는다. 민주화의 전제 조건은 모든 구성원들이 의사 결정의 무게를 나눠서 짊어지기로 동의하는 것이다....정부만 바뀌면 되는 것이 아니라 억압에 길들었던 국민들의 마음도 바뀌어야 한다. 이 일에는 한 세대가 걸릴 수도있다. 나는 사람들이 자유를 좇아 구속을 떨치는 모습을 보면서 변화란 참으로 영광스럽지만 참으로 힘들 수도 있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자유를 획득한 뒤에는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자유로워진 자신을 되찾고...자유는 배워야 하는 것,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49

[ ] 부르카를 쓰고 와서 도착하자마자 벗었는데.. 법도 더 이상 여자들을 옭아매지 않았는데..첫 번째 여자는 ˝세상이 바뀌면 당장 벗어던지겠다고 늘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는 변화가 안정적이지 못할까 봐 걱정스러워요. 혹 탈레반이 권력을 되찾게 되면, 난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몰라요.˝ 두 번째 여자가 말했다. ˝나도 벗고 싶지만, 사회의 기준이 아직 바뀌지 않았어요. 이걸 쓰지 않고 나갔다가 강간이라도 당하면, 사람들은 다 내 탓이라고 말할 거예요.˝ 세 번째 여자는 말했다. ˝나도 이 쓰개가 싫어요. 탈레반이 물러나자마자 벗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니, 남들에게 나를 내보이지 않는 데 익숙해졌어요. 그게 내가 되어 버렸어요. 다시 남들 눈앞에 드러낼 걸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너무 커요.˝ 먼저 개개인으 마음속에서 많은 것이 변해야만 뒤따라 사회가 변하는 것이다. 49

[ ] 위대한 진전이 비극과 함께 벌어질 때도 있다. 그런데도 사회가 새롭게 재탄생하는 기분을 느끼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상시적 불확실성으로 혼란스러운 사회라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변화는 점진적인 침식의 결과가 아니라 빈발하는 부정 출발의 결과일 때가 많다. 실패한 시작이 두 번, 세 번, 혹은 열 번쯤 쌓인 뒤에야 비로소 돌파구가 열리고 변화가 오는 것이다. 거꾸로, 변화에서는 즉각 노스탤지어가 따라 나온다. 현재가 더 낫다고 해서 흠 있는 과거를 지울 수는 없는 법이고, 그 어떤 과거라도 대단히 아름다웠던 요소를 조금은 갖고 있는 법이다. 우리가 이제는 말소된 과거의 정체성을 기억하면서도 현재를 살아가려면,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52

[ ] 어떤 것이 변할 수 있는 소수의 것에 속하고 어떤 것이 변하지 않는 많은 것에 속하는지 패턴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진단은 덜 내리고, 질문은 더 잘 던지고, 답은 성급히 내지 않으려고 애쓰게 되었다. 과거에는 변혁적 혁명을 믿었지만, 지금도 믿는 것은 개선적 진화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순진했던 듯한 그런 확신 덕분에 내가 다른 문화들을 더 많이 탐구했던 것은 사실이다. 54

[ ] 선의로 의도되었더라도 강요된 통제보다는 공개된 담론이 더 쉽게 정의로 이끈다. 금지된 발언이라는 개념을 거부하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고, 금지된 것을 말하여 그것을 말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것은 대단히 멋진 일이다. 61

[ ] 어릴 때 나는 용기보다 안락을, 안락보다 안전을 우선하라고 배웠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그 위계를 뒤집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릴케는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연습할 것은 하나뿐, 서로를 놓아주는 것이다. 서로를 붙잡는 것은 쉽게 되는 일이니 따로 배울 필요가 없다.>....내가 거듭 밖으로 나가 본 뒤에야 집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작별은 친밀함의 필수조건이다. 71

볕뉘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각하는 무엇이 다를까. 일상 가운데...끊임없이 일어나는 것 가운데 변화. 그것은 무엇일까. 지난 겨울 독서를 그 실마리를 조금 마련해주었다싶다. 그렇게 해서 어쩌다 손에 들린 책이다. 경이롭고 놀랍고, 어쨌든 그 놀라움을 추적해 가다보면 저자의 유년에 실마리가 있다. 게이인 저자는 결혼을 했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어쩌면 그의 감정의 촉수는 그가 경험한 많은 대륙들의 일상에 끊임없이 접속되어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아는 것이 괴로움일지도 모르겠지만, 가끔 스스로 무지가 재미도 없고 스스로를 무디게 만든다 여긴다. 좀더 다른 방식으로 삶을 접속하는 이들의 흐름에 녹아 산다는 것. 제법 부러운 일이라는 생각들에 잠겨있다. 당분간..어쩌면 분위기의 톤으로 잠잠히 읽는 독서가 이어질 것 같다. 영국 단편소설 가든파티도 주문을 넣었다. 러시아 단편소설에서 좀더 색다른 맛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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