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 ‘나라면 이 화보에서 이 사람을 이렇게 했을 것 같다‘(생산적 시선): 잡지가 아니어도 좋구, 인스타그래만 봐도 매거진마다 만든 패션 필름들이 있어요. 그럴 보고도 생각할 수 있어. 똑 같은 브랜드인데, 아니면 똑 같은 스타인데 여기는 왜 이렇게 찍고 여기는 왜 다르게 찍었을까? 왜 이 영상은 저 영상보다 더 반응이 좋지? 왜 ㄱ 잡지가 재미있고 ㄴ잡지는 멋있는데 조회수는 ㄷ이 더 높지? 이런 것들을 분석해. 사람들이 보는 시각적 결과물의 대부분은 협업이에요. 그 뒤에서 사람들이 한 일은 잘 보이지 않죠. 에디커를 하고 싶다면 그걸 보고 복기할 줄 알아야 해요. 내 생각을 되감기하듯 계획을 짜. 그걸 일주일 안에 해낼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해. 250. 잡지의 사생활에서

2.

[ ] 스피노자는 데카르트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 가톨릭 신자였던 데카르트는 우주의 일반적 목적성에 대해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초월적인 신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신을 자연과 동일시한다. 신의 자연의 광대한 힘이다. 자연은 스스로 산출되며 그런 자기 산출 외에 다른 어떤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자신 이후에도 라이프니츠가 계승해온 서구 전통 철학의 관점, 즉 여러 다른 세계들 가운데 한 세계를 선택하는, 또는 인간을 위해 세계를 실현하는 창조신의 개념을 선명하게 공격한 것이다. 431

[ ] 목적론은 주관적 경향에 따라 판단하는 인간적 상상에서 비롯되는 착각일 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은 신에게서 자신의 절대적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 즉 자기 고유의 내적 법칙에 따라 전개되는 최고 능력을 귀속시키기는커녕, 마치 신이 판사나 왕인 것처럼 인간의 의지와 유사한 의지를 귀속시키는 것이다....이런 내재적인 무지의 상태를 유지하는 쪽이 전체 구조를 파괴하고 새로운 구조를 생각해내는 것보다 쉬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의 판단이 인간의 파악력을 훨씬 능가한다고 확신하였다. 434-435 자연물에 대한 원인의 탐구는 무지에 기초한 자유와 목적 개념에 의거함으로써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가 자유롭게 욕망하는 목적은 자연물의 인식을 위한 유일한 원천이 된다. 이로부터 인간은 자신의 욕망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유일한 원인으로 간주하며, 반면 자연물은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생각할 뿐이다. 435

[ ] 스피노자의 욕망의 윤리학은 실존적이고 행복주의이다. 욕망의 윤리학은 인식이고 여정이며, 구조이고 지혜이며, 엄격함이고 기쁨이다. 욕망의 완성은 완전한 기쁨이며 극도의 존재 의식이다. 이런 욕망의 여정은 지극히 험준하지만 도달할 수 있는 길이다. 그러나 모든 고귀한 것은 드문 만큼 어려운 것이다. 445 이상 스피노자 서간집에서

3.

[ ] 시를 쓰려하니: 시를 쓰려하니/기억마다 말끝마다/살았던 뼈들이 부스럭거린다.// 냉수처럼 수런대며/죽음의 뒤꼍들이/바닥의 면목을 드러낸다.//

[ ] 불멸의 노래: 총알 받은 몸이사/콩알처럼 나뒹굴었지// 마침내 비가 올 게야/ 그 젖은 땅에서/콩이 싹트듯// 내가, 우리가 날 거야.// 죽기 전 저항의 노랠 불렀으니/모두 영원이 되고/불멸이 될 거야.// 그래, 그래,/새벽의 어둠이 우릴 피워 올리기 위해/ 마구 수런거리겠지.// 마침내 너끈히 세계의 상공에/ 꽃들 뽑아 올려질 거야.// 이상 이하석 천둥의 뿌리에서

4.

[ ] 경고, 민들레: 지난겨울 매설했다/초록의 톱니를 두른// 밟히고 밟혀 문들어진/문들레 민들레// 잔디밭 가로지르는 발꿈치 뒤로/ 수백 개 해가 뜬다// 째깍, 째깍,/ 조심해라! 밟으면 터진다. 노-란/발목을 날려버리는 대인 지뢰// 하늘에도 피었다/흰 구름 폭발하는 곳 꽃,/ 절름거린다/목발 짚은 봄 서영처, 말뚝에 묶인 피아노

[ ] 토마스 만의 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에는 예술가의 고독과 심오한 고뇌가 담겨져 있다. 그는 ˝예술가의 고독은 과감하고 낯선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지만 또 한편 불균형적이고 금지된 것들을 야기시키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탈리아의 구키노 비스콘티 감독은 1971년 영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만들었다. 오래된 영화지만 아름답고 탐미적인 영상과 정교한 구성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될 정도이다. 감독은 대작가의 직업을 작곡가로 바꾸었고 어린 딸을 읽고 상심하는 에피소드를 추가했는데 이는 구스타프 말러의 실제 모습이기도 했다. 170 폴 발레리는 ˝아름다움은 사람을 절망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아름다움은 마약처럼 중독성을 지니기 때문일 것이다. 중독이란 어떤 병리적 상태를 말한다. 말러의 음악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과 죽음의 긴장은 그의 음악을 제의적인 모습으로까지 극대화시키고 있다. 172 토마스 만의 단편 [트리스탄]은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주인공 클뢰터얀 부인은....작가 슈피넬의 간청에 못 이겨 피아노를 치게 되는데...쇼팽의 야상곡 Op.9 No.2 내림 마장조를 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녀는 <야상곡>을 한 곡 더 연주했고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곡까지 연주했다.....처음 몇 대목만 치고 나서도 그녀는 확실한 감각을 가지고 그 피아노를 다룰 줄 알았다. 미묘한 차이를 나타내는 음색을 다루는 대목에서는 신경질적인 감성을 드러냈지만, 거의 환상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리듬의 변화를 유쾌하게 다룰 줄 알았다. 건반을 치는 솜씨는 단호하고도 섬세했다. 그녀의 손을 거친 선율은 그지없이 달콤한 소리를 냈고, 장식음들은 머뭇거리듯이 우아하게 그녀의 손가락에 휘감겼다. 연주를 하는 동안 얼굴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입술의 윤곽이 훨씬 더 선명해지고 눈가에 패인 그늘도 더 깊어진 듯했다. 174 장시간에 걸친 연주로 남아 잇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버린 부인은 결국 허약 증세에 빠져 엄청난 각혈을 하고 죽게 된다. 177 서영처, 지금은 클래식을 들을 시간에서

볕뉘

설. 오고가는 길 짬짜미 읽다. 친구들이 하룻 밤을 묶고 갈 때 권해준 작가나 책친구들을 만나 건넨 이들이 함께 출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안타깝지만 슬픔이 목에 메이는 독서이기도 한 순간이었다. 두 시인은 우연히 얼굴을 뵙고 인상, 아니 풍기는 아우라가 잔영처럼 목에 차올라 읽게 된 것이다. 그게 잘못인게다. 첫 시구부터 막혀 어쩔 줄 몰랐고, 읽기가 겁이 나 두려움이 몰려와 더 서성거렸다. 아직도 열에 넷은 남아 있다.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것. 감히 엄두에 낼 수 없는 일이다 싶다. 몇 편씩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눈물이 자꾸 흘러내렸다. 글은 칼이라는 말. 삶의 행간을 발라낼 수 있다는 두려움.....문득 두려워지는 나날. 어쩌면 칼날 위를 걷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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