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일기.아침의 피아노

1. 애도일기

[ ] 주체는 (이건 점점 분명해지는 사실인데) ˝인정을 받으려는˝ 목적을 따라서 행위를 하는 (애를 쓰는) 존재다. 143

[ ] 애도의 슬픔을 (비참한 마음을) 억지로 누르려 하지 말 것(가장 어리석은 건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이 없어질 거라는 생각이다), 그것들을 바꾸고 변형시킬 것, 즉 그것들을 정지 상태(정체, 막힘, 똑같은 것의 반복적인 회귀)에서 유동적인 상태로 유도해서 옮겨갈 것.

[ ] 이 슬픔은 절대적 내면성이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65

[ ] 영혼을 믿지 않는다는 건, 영혼들의 불멸을 믿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야만적인 일인가! 유물론은 진리이지만 그러나 그 진리는 또 얼마나 어리석은 진리인지! 169

[ ]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 172

[ ] 마망은 내게 가르쳐 주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을 절대로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179

[ ]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유형. 그러니까 우리가 상상으로 눈앞에 떠올리는 어떤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상상해볼 수 없는 어떤 새로운 유형. 그러니까 실제가 직접 우리에게 드러내는 어떤 것이다. 프루스트, 생트-뵈브 193

[ ] 마망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지금까지는 추상적이기만 했던 사실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으므로, 이 논리를 따라서 나 또한 죽어야만 한다는 확신은 어쩐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216

[ ] 사진은 어떻게 성스러워지고 모범이 될 수 있는지를 ..> 사진으로 기억되는 건 동일성이 아니다. 그건 그 동일성 안에 들어 있는 믿기 어려운 표현, ˝덕성 virtus˝이다. 230

[ ] 슬픔의 자기순환적인 길 안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한권의 책을 씀으로써 하나의 작별을 마무리짓곤 했었다. 그것이 나의 방식이었다. - 집요함, 은밀함. 241

[ ] 머리가 뛰어나다는 게 무엇이겠는가. 자기와 함께 지내는 사람에게 아무런 거리낌도 느끼지 않게 해주는 것, 그것보다 더 높은 지능이 어디 있을까. 262


2. 아침의 피아노

[ ] 사랑은 한 단계 더 높아져서 정신이 되어야 한다. 정신으로서의 사랑. 사랑은 정신이고 그럴 때 정신은 행동한다. 27

[ ] 사는 건 늘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이었다. 남겨진 시간, 흐르는 시간, 새로운 시간, 그 한가운데 지금 나는 또 그렇게 살아 있다. 28

[ ] 누군가는 말했었다. ˝음 하나를 더하면 기쁨이 되고 음 하나를 빼면 슬픔이 되는 것, 그게 인생이야.˝ 33

[ ] 생의 명랑성 - 우렁찬 정신은 야채 장수처럼 목청으로 제 존재를 보여준다. 그 목청의 정신을 배울 때다. 35

[ ] 사진은 마술이다. 찍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사건이 된다. 45

[ ] 물들은 급한 곳에서는 우렁차고 평평한 곳에서는 잠시 머물러 조용히 파문을 만든다. 그러면서도 낮은 곳으로 흐르른 걸 잊지 않는다. 정신이 무엇이고 마음이 무엇인지 알겠다. 정신과 마음이 만나면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알겠다. 생이 음악이라는 것도 알겠다. 48 흐르는 것만이 살아 있다. 흘러가는 ‘동안‘의 시간들. 그것이 생의 총량이다. 51

[ ] 사건은 그런 책들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위기를 만난 마음속에서 태어나는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은 놀랍고 귀하다. 정신과 몸이 함께 떨리는 울림. 이 울림은 모호하지 않다. 종소리처럼 번지고 스미지만 피아노 타음처럼 정확하고 자명하다. ....마음의 사건 - 그건 문장과 악보의 만남이기도 하다. 53

[ ] 정확한 때 정확한 곳을 베어야 합니다. 그러면 칼은 춤이 됩니다....나의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타자들의 것이기도 하다. 79 나의 몸은 관계들 속에서 비로소 내 것이기도 하다. 80

[ ] 환자의 주체성은 패러독스의 논리를 필요로 한다. 생의 근원적 덧없음과 생의 절대적 존재성, 그 사이에서 환자의 주체성은 새로운 삶의 영토를 연다. 83 투병이라는 말은 옳지 않다...사랑이 그렇듯 병과도 잘 이별하는 일이 중요하다. 잘 헤어지고 잘 떠나보내는 일이 중요하다. 미워하지는 않지만 함께 살 수는 없는 것이 있다. 그것들과의 불가능한 사랑이 필요하다. 90 환자는 투명한 주체다. 그는 그에게 일어나고 다가오는 모든 것을 통과시킨다. 환자의 주체는 종결을 각오한다. 그러나 그 종결에게 항복하지 않는다. 환자의 주체는 사랑의 주체다. 그는 사랑의 마음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 환자의 주체는 미적 주체다. 그는 자기와 세상의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101

[ ] 하모니는 관계다. 관계는 모두가 음악이다. 105

[ ] 삶의 향연이다. 너는 초대받은 손님이다. 귀한 손님답게 우아하게 살아가라. 119 생은 과정이지 미리 결정된 시스템이 아니다. 121

[ ] 롤랑바르트의 애도일기: 슬픔의 셀러브레이션이다. 이 텍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건 명확하다. 그건 무력한 상실감과 우울의 고통이 아니다. 그건 사랑을 잃고 ‘비로소 나는 귀중한 주체가 되었다‘는 사랑과 존재의 역설이다. 186

[ ] 선한 사람이 된다는 건 온전히 기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선함이 사랑하는 정신의 상태라면 기쁨은 사랑받는 육체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194

[ ] ˝...허리가 아픈데 어떻게 바다 일을 하시나요? ˝늙은 해녀가 말한다.˝물질을 사람 힘으로 하는가. 물 힘으로 하는 거지....˝ 216

[ ] 그래. 나는 사랑의 주체다. 사랑의 마음을 잃지 말 것. 그걸 늘 가슴에 꼭 간직할 것. 268


볕뉘. 철학아카데미 대표의 작고소식을 듣다. 검색하다보니 그가 번역한 롤랑바르트의 애도일기. 그리고 아침의 피아노가 들어왔다. 두 권의 애도일기. 가까운 지인을 보낸지 해 반이 가까워온다. 아직도 여진이 있어 울컥거리기도 하고, 그 시장통을 지나면 못내 그립다. 벗의 말 가에 그가 걸리기라도 하면 그만.... 제목은 김진영고인의 책의 마지막 대목이다. ‘내 마음은 편안하다.˝ 삶은 죽음 부근에서 점점 더 선명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두 편의 일기는 그 자장 속에 있는 슬픔이 삶을 얼마나 애잔하게 하고, 흔히 잊혀지는 삶의 농밀함을 다시 불러낸다. 어머니에 대한 간절함. 아니 분신이기도 했던 아들 바르트 역시 몇 년 뒤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게 된다. 그렇게 죽음은 불쑥불쑥 다가오기도 한다. 마음을 여미며 밑줄을 옮겨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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